팥쥐 일기
이향안 지음, 배현주 그림 / 현암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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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세상 앞에 주눅 들게 만들고 숨기고 싶은 결격사유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 골목에서 자라던 친구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커서야 알았을 정도로 이혼은 부모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던 비밀이었다. 친구 아버지가 타지에서 근무하신다거나 중동으로 외화벌이 하러 가신 정도로 스리슬쩍 넘기면서 또래 아이들에게서 받는 상처만이라도 줄이자는 의도의 거짓말에 아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뭐 있냐는 동네 어른들의 암묵적 동의였을 것이다. 이혼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이들 앞에서 말을 조심했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 사람들만 어림잡아도 이혼한 사람들이 꽤 되고 그들은 혼자서 혹은 다시 가정을 꾸려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이혼이 새삼스레 사람에 대한 평가를 뒤엎는 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으로 큰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원수처럼 잡아먹을 듯 싸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뭐 있냐며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의 길이었다고 택한 방법이지만 설사 그게 최선이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선택권조차 없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게 이혼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 게 이혼이다. 결혼을 하고 몇 번쯤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혼에 대한 생각에서 내려앉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아이가 아닐까 싶다. 1년 평균 몇 쌍이 이혼을 하고 하루에 몇 명꼴로 이혼을 한다느니 하는 통계는 자신의 부모의 이혼을 지켜본 아이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신중을 기해 선택한 이혼이라도 아이의 상처를 보듬는 일에 우선 마음을 써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에 아이를 중요한 위치에 놓고 생각해야 함도 그렇다.


<팥쥐 일기>는 ‘명아주’의 이혼한 엄마가 ‘채송화’의 상처한 아빠와의 재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룬 ‘채아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쁘장하고 공부도 잘하고 심성도 착한 송화에 비해 단춧구멍 눈에 찐빵 볼을 가진 그리 예쁘지 않은 얼굴의 아주는 재혼한 엄마가 자신보다 송화를 더 챙기는 모습에 심통이 난다. 팥쥐를 위해서라면 온갖 악행을 일삼아야 할 팥쥐 엄마가 팥쥐보다 콩쥐를 더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은 송화를 상대로 종종 심술로 풀어내지만 번번이 송화의 착한 모습에 비교당하기만 할 뿐이다. 이득 없는 심통만 부리고 자신을 빼놓고 모두 만족스럽고 행복한 줄만 알았던  아주의 눈에 차츰 가족들의 마음이 보인다. 엄마는 송화의 고모 말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늦은 밤 웅크리고 앉아 실내화를 빨며 숨죽인 울음으로 달래고 있었고, 송화는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 몰래 울곤 했고 새아빠와 엄마는 경영하던 음식점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아이들 학원비 걱정을 아이들 몰래 하고 있었던 거다.

가족들의 숨겨둔 아픔들과 마주친 순간에도 아주는 가엾고 보듬어 주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손길을 잽싸게 거두고 만다. 그들의 아픔을 먼저 돌보기엔 아주는 아직 어리고 자신의 상처 또한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만 빠져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 가정에 스스로를 골치 아픈 ‘덤’이라고 생각하고 가출을 결심한 아주는 가출을 감행하기로 한 날 이 모든 치기어린 마음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큰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해결해보려고 지방에 내려가셨던 엄마와 새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도 없는 상황이라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울기밖에 할 수 없는 아주에 비해 송화는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아주를 위로했다. 병원과 가까이에 사시는 고모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도 송화였다. 그동안 아주가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래층 꽥꽥 할머니의 도움으로 아주와 송화는 엄마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가게 되고 이야기는 극적 화해와 가족 간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행복하게 끝난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할 것 같아 보였던 송화에게 엄마마저 빼앗겨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심술을 부렸던 아주는 송화에게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불안과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된 뒤로 가시처럼 세운 마음들을 누그러뜨린다.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고 있는 꽥꽥 할머니네 강아지 콩쥐와 고양이 팥쥐가 서로 딴판이라 틈만 나면 으르렁대던 녀석들이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 장난도 치고 핥아주기도 하면서 닮아가는 것처럼 콩쥐와 팥쥐처럼 정반대 성향의 아주와 송화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들 닮아갈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을 끌어놓지 않더라도 어려운 고비를 큰 산을 함께 넘은 아주네 가족들은 조심스럽고 위태로워 보였던 발밑이 견고해졌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향안 작가의 두 번째 창작동화 <팥쥐 일기>는 아주와 송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상처받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동화다. 잔잔하게 무한감동을 줬던 작가의 첫 그림책 <광모 짝 되기>처럼 넘쳐나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담백한 글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숨넘어갈 듯한 울음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도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착하거나 공부를 월등히 잘하지도 못하고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뱉어버리는 ‘팥쥐’ 아주의 시선을 쫒아가는 방식으로 상처받은 속내를 그악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표출해서 오해만 더해갔던 팥쥐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콩쥐가 우대받고 콩쥐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팥쥐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을까? 이보다 더 이쁜 팥쥐가 세상에 없을 정도로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준 배현주님의 그림도 글과 잘 어우러진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팥쥐’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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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짝꿍 드리타 아이스토리빌 6
제니 롬바드 지음, 신정숙 옮김, 최정인 그림 / 밝은미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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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이 사람들한테 숨어 있는 것 같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친구란 성격상의 유사함이나 취향의 비슷함으로 시작해서 서로의 가슴 깊이 숨겨둔 이야기들을 공유하게 되는 계기를 통해서 깊어지는 관계라고 생각된다. 보이는 모습이 부족함이 없이 완벽한 모습일지라도 어찌 한 조각의 슬픔이나 아픔이나 고민쯤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어느 순간 그 친구의 아픔을 보면서 아물었던 내 상처의 아픔이 떠오를 때 서서히 마음을 내보이며 가까워졌던 친구가 오래도록 내게 위안이었던 기억이 있다.

드리타의 가족은 말이 이민이지 죽음의 전쟁터인 코소보를 탈출해 뉴욕에 도착하게 된 이민자 가정의 아이다. 코소보를 탈출하는 과정은 책의 말미에 맥시의 사회탐구 연구과제 발표에서 생생하게 전해진다. 일 년 전 먼저 미국으로 탈출해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떠났던 아빠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언제든 짐을 싸두고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는 드리타 가족의 생생한 이야기에서 긴박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생사를 넘나들며 코소보를 탈출한 드리타 가족은 열흘 만에 뉴욕에 있는 아빠를 만났다. 하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코소보의 친척들의 안위와 아직도 번듯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아빠가 최선을 다해 마련했지만 어딘지 초라한 집과 탈출과정에서 겪은 공포와 긴장감으로 인해 드리타의 엄마는 병이 나서 일어나질 못하게 된다. 그런 엄마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드리타는 자신이라도 적응을 잘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힘을 낸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친구들은 드리타에게 냉담하고 드리타는 그런 친구들의 태도에 상처받는다.

맥시는 겉으로는 자신감 넘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은 아이지만 맥시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 있다. 맥시는 3년 전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 중 누구에게도 엄마가 돌아가신 사실을 말한 적이 없다. 아직 마음으로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에 아빠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할머니와 아빠는 이제 그만 엄마를 보내주라고 하지만 그냥 모두가 미울 뿐이다. 그런 마음의 상처를 가끔 학교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로 풀어내고 있던 맥시였다. 그런 맥시에게 맥시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선생님은 사회 과학 연구 과제로 최근에 전학 온 드리타를 주제로 삼아보는 게 어떻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아이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드리타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맥시를 소개해줘서 드리타의 학교 적응도 돕고 새로운 친구 드리타를 통해 맥시도 어린 마음 안에 묵직하게 간직하던 아픔을 덜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배려였을 것이다.      

‘쇼체 테 누쉬테’는 알바니아 어로 가장 친한 친구라는 뜻이다. 낯선 미국 땅에 와서 드리타가 가장 절실하게 원했던 것은 바로 마음을 나눌 친구 ‘쇼체 테 누쉬테’였다. 농구장에서의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진 맥시와 드디어 친구가 된 것이다. 서로의 집을 방문하면서 드리타의 아픈 엄마는 맥시의 할머니의 도움으로 차츰 기력을 회복해가고 맥시는 드리타 앞에서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게 되고 아빠의 여자 친구와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죽음에서 탈출해 낯선 환경에 떨어진 아이와 엄마를 잃은 상심의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몰랐던 아이가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우정이야기...

적어도 자라는 아이들만이라도 편견을 갖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그 국적이나 피부색이나 겉모습의 초라함이나 화려함처럼 눈에 보이는 차이를 차별의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단일민족이라는 자긍심은 단결로 그 힘을 무한대로 발휘하기도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그만큼 무자비하게 배타적인 칼날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에도 외국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친구가 있고 우리 가족과 가까이 교류하는 가정 또한 외국인 엄마를 둔 가정이다. 우리 사회는 이들을 ‘다문화가정’이라 부른다. 그냥 이웃이라 부르면 될 것을 따로 떼어내 ‘다문화가정’이라는 또 다른 범주 안에 넣어 부르기가 사실 주저된다.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 간에 노동자로 결혼 이민자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제 2의 나라에서 새롭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아이들이 적어도 그 겉모습으로 차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바람도 말만 번지르르한 공염불로 날려버리지 않도록 ‘내 짝꿍 드리타’와 같은 책으로 지속적인 자극을 줘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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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 모 윌렘스의 비둘기 시리즈
모 윌렘스 글.그림 / 살림어린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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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로 읽어본 몇 장은 대화체로 비교적 단순했고 그림 또한 밋밋해서 특별할 게 없는 책이었다. 게다가 평화의 상징에서 뒤룩뒤룩 게으름이 잔뜩 붙어 도시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는 비둘기 이야기라니...오래도록 리스트에만 담겨있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받아들이는 아이의 모습은 왜 진작 이 책을 소개해주지 않았을까 싶은 정도다. 근래에 그림책을 읽는 아이의 얼굴이 이렇게 밝은 적이 없었던 듯하다. 이유가 뭘까?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금방 답이 나온다. 이 비둘기는 다름 아닌 바로 아이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놀다가 늦게 자려고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담고 있는 <비둘기를 늦게 재우지 마세요!>,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서 끈질기게 졸라대는 모습을 담은 <강아지가 갖고 싶어!>, 맛난 음식을 혼자 먹고 싶은 모습을 담은 <비둘기야, 핫도그 맛있니?>, 버스 운전기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버스를 운전해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담아낸 <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은 맡기지 마세요.>가 바로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모 윌렘스의 ‘비둘기 시리즈’다.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면서 자리를 비운다. 돌아올 때까지 버스를 잘 지켜 달라면서 비둘기에게 버스 운전을 맡기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는다. 비둘기가 그동안 오죽 귀찮게 졸라댔기에 그랬을까. 아니나 다를까 책 귀퉁이에서 살짝 고개만 들이밀며 운전사 아저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비둘기는 본격적으로 졸라대기 시작한다. 자신의 사촌 허브는 매일 버스 운전을 한다면서 비둘기도 운전을 능숙하게 잘 할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하고, 버스를 조금만 움직이게만 하고 싶다고 부탁하기도 하고, 버스를 운전하게만 해주면 좋은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하고, 고함지르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하고 순간 포기하는 듯싶다가도 버럭 화를 내기도 하고...귀엽고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애교와 막무가내로 투정을 쏟아놓는다.

이 비둘기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막무가내로 떼를 쓰며 화를 돋우는 상황에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 그 화를 다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혼자 핫도그를 먹으려는 비둘기 옆에서 직접적으로 달라는 말은 안 하지만 계속 깐죽거리며 말을 거는 아기 오리에게 이건 ‘그냥’ 핫도그가 아니라 ‘내’ 핫도그임을 강조하다가 결국엔 아기 오리와 사이좋게 나눠먹는 비둘기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비둘기야, 핫도그 맛있니?) 강아지가 갖고 싶다 떼를 쓰다가 실제로 털이 북슬북슬하고 이빨도 뾰족뾰족하고 침도 질질 코도 질질 흘리는 덩치가 큰 강아지를 보더니만 이번엔 해마가 갖고 싶다고 금방 마음을 돌리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강아지가 갖고 싶어!) 반쯤 감은 눈으로 연실 하품을 해대면서도 하나도 졸리지 않다고 딱 오 분만 더 놀다가 자겠다고 부탁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내 아이의 모습이다.(비둘기를 늦게 재우지 마세요!)    

비둘기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입장이 된 아이는 그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동지를 만난 듯한 느낌이 우선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일에는 여러 가지 할 수없는 이유들이 가로막고,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먼저 배우게 되는 아이들은 이렇게 막무가내로 요구하고 뻔뻔하게 부탁하며 시원하게 고함을 내지를 수 있는 비둘기를 통해서 짜릿한 대리만족을 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렇게 하트 눈망울로 애교 섞인 부탁을 해온다면 들어주지 않고 버틸 재간이 내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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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해요 사계절 성장 그림책
전미화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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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밤에 터진 아이의 울음은 아무리 달래도 끝나지 않았다. 조숙한 여섯 살이랄까,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로 나름대로 죽음이란 것에 대한 궁금증을 내 앞에서 쏟아내더니 결국 서럽게 울고 만다. 토미 드 파올라의 ‘위층 할머니, 아래층 할머니’를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이란 것에 대해서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확실하게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 늙음에 대해서 사실적인 설명을 나름대로 충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서 얘기를 해도 아이의 울음은 더 높아만 갔다. 아이는 엄마가 세상에 없으면 자신은 살 수 없다는 주장의 되풀이였다. 엄마는 아들이 죽을 때까지 꼭 같이 살겠다는 답을 달라는 울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엄마가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냐고 묻기에 몸에 좋은 음식들도 골고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무엇보다 가족끼리 마음 다치게 하는 일 없이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했더니 아빠를 불러다놓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낸 후에야 겨우 울음을 그쳤다. 한편으로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견하기도 했고, 자기 혼자 큰 줄 알게 될 만큼 자라게 되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에피소드지만 아이에게 부모의 자리란 그만큼 절대적이라는 뜻이리라.   

<씩씩해요> 책속에 등장하는 아이의 슬픔이 남일 같지 않게 느껴진다. 그 슬픔과 상실감과 치유의 과정들이 내게도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달려든다. 이 책은 온통 붉은 배경에 자동차 두 대가 충돌하는 그림으로 시작한다. 차 한 대는 공중에 붕 떠서 한 바퀴를 돌고 있는 듯한 자세다. 그리고 몸에 무수한 호스들을 연결하고 누워있는 아빠의 모습과 수술실 앞 엄마와 아이의 기다림도 붉은 바탕색에 거친 먹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련된 기교를 부린 그림도 아니고 글 또한 과장되게 흐르지 않고 잔뜩 멋 부린 흔적이 없다. 그렇게 담아낸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떠난 빈자리가 아이에게는 너무나 컸다. 아빠의 자리뿐만 아니라 엄마의 자리마저도 변화가 생겼다. 아빠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엄마 또한 아이의 슬픔을 위로해줄 여유가 많지 않다. 등을 닦을 수가 없는 혼자 하는 목욕, 혼자 타는 그네, 깜깜할 때가 되어서야 돌아오는 엄마를 향한 기다림. 제 색깔을 내지 못하고 그저 배경색 안에서 선으로만 존재를 확인하는 집안의 가구들처럼 아이와 엄마 또한 그냥 그렇게 슬픔 속에 던져져 있다. 아이의 꿈속에서만 알록달록한 풍선 속에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급변한 환경에 힘들어하던 아이는 이부자리에 오줌을 싸게 되고 아이처럼 힘들었을 엄마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아이를 꼭 끌어안아 준다. 그리고 이어진 아이와 엄마의 산행, 산에서 바라본 세상은 아이의 꿈속처럼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고 있다. “이제부터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엄마의 말 한마디는 엄마와 아이를 조금씩 씩씩하게 만들어간다. 아이와 엄마의 집도 제 색깔들을 찾아가고 아이와 엄마는 아빠의 부재마저 끌어안으며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다.

느닷없이 닥친 죽음이나 병상에서 몇 년간의 병치레 끝에 맞이한 죽음이나 그 상실감과 슬픔의 무게를 저울질 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대비책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도 따뜻한 미소로 내게 웃음 짓던 가족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는 그 느닷없음의 충격이 조금 더 크다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아빠가 2년여의 시간동안 병원과 집을 오가며 투병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병이 점점 아빠를 갉아먹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들이 잠든 깊은 밤에 부둥켜안고 숨죽여 우는 부모님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집 안 곳곳에 스며드는 죽음의 냄새를 느끼면서 그렇게 맞이한 아빠와의 이별이었는데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수시로 쑤시고 아픈 상처다. 그런데 이 책, <씩씩해요>을 만나면서 내게도 뒤늦은 치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누구의 위로도 차단시켜 버렸고 스스로 상처가 아물 거라고 믿으며 덮어두려고만 하지 말았어야 했다. 슬픔은 충분히 슬퍼했어야 했고 그 상처를 다양한 방식의 치유 과정을 통해서 달래줬어야 했다.

책과 책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는 모양이다. 이 책 <씩씩해요>를 읽을 즈음에 읽은 어느 작가의 산문집을 읽게 됐다. 10년도 훌쩍 넘게 이삿짐에 얹어서 끌고 다니던 추억의 상자를 정리하는 마음을 담은 글이었다. 자잘한 기념품들과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물건들과 기억도 나지 않는 수집품들과 쓰다만 재떨이 같은 별로 소용되지 않는 잡다한 추억의 물건들을 보관했던 상자들이었다. 몇 시간에 걸쳐 지난 추억들을 쓰레기처럼 정리하고 산책을 핑계 삼아 배회하다 문득 든 생각.
‘오늘 난 상자에 가둬뒀던 내 과거의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준 것이다. 오늘 버려진 것들이 앞으로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게도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이제는 자유롭게 풀어줄 묵은 감정이 있음을 느꼈다. 웃자란 애어른 같은 모습으로 그대로 멈춰버리게 만들었던 아빠의 죽음. 아빠의 기일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가끔씩 들춰서 상처들을 확인하고는 도로 덮어두곤 했던 그 마음을 꺼내서 맘껏 다독여 주려고 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풀어주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씩씩한 척이 아니라 진짜 씩씩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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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 비룡소의 그림동화 211
밸러리 토머스 지음, 코키 폴 그림,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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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위니 시리즈의 신간은 아이의 레이더에 반드시 걸려들게 되어 있기도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실패할 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그림책이다. 공들여 고른 책이 아이에게 외면당하면 마음이 쓰려서 자꾸 들이밀어 보는 그 기분을 아는 사람이라면 안정적인 이런 이야기들을 무시하기 어려워진다.

마녀 위니 시리즈의 열한번째 그림책 <마녀 위니와 우주 토끼>. 뒤표지에는 앞서 출간된 열권의 마녀 위니 시리즈의 표지그림이 나와 있다. 시리즈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니 딱히 재미없다고 빼놓을 책이 없다.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 꼽으라면 <마녀 위니의 겨울>이다. 겨울이 오기도 했고 우리 아이가 ‘12월=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하듯 아이들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가 들어있는 12월이기도 하니 그림책 속에 숨어있는 산타할아버지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추천의 이유다.  


요술지팡이와 마법주문만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릴 것 같은데 위니는 알고 보면 허점투성이 마녀다. 아이들도 다 알만한 황당한 사고를 저질러 놓는다. 요술지팡이를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리기도 하고 컴퓨터에 마법 주문을 저장해놓고는 마녀의 상징인 요술지팡이와 마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통에 버리기도 한다.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윌버를 알록달록 고양이로 만들어버리는 고약을 떨기도 하지만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용의 엄마를 찾아주느라 밤을 세기도 한다. 종잡을 수 없는 악동의 이미지 혹은 건망증에 자주 깜빡깜빡하는 내 모습을 보는 듯도 해서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마녀 위니다.

“윌버야, 나도 우주에 가 보고 싶어. 정말 신날 것 같지 않니?”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고 있던 위니의 이 말 한마디로 위니와 윌버의 우주여행이 시작된다. 요술지팡이 하나면 안되는 게 없으니 금방 뚝딱 로켓을 불러낸다. 로켓이 대기권을 벗어나 마음에 드는 별에 내려앉는데도 지구와의 어떤 교신이나 과학기술도 필요가 없다. 마녀 위니니까..^^ 그렇게 아담하고 예쁜 별을 골라 내려앉아 소풍 바구니까지 꺼내놓고 즐기려는 순간 괴상한 식성을 가진 우주토끼들이 등장한다. 위니의 소풍 바구니 안의 맛난 간식거리들을 죄다 뱉어낸 우주 토끼들이 드디어 입맛에 딱 맞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위니의 우주선이다. 놀라서 다급해진 위니는 토끼들이 좋아하는 당근과 상추 비를 내리게 하지만 우주토끼들의 식성은 지구토끼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침내 우주토끼들이 좋아하는 쇠붙이들을 만들어 시선을 돌린 후에 쇳조각들을 모아서 ‘삐걱삐걱 철겅철겅’로켓을 만들어 지구로 귀환한다. 위니네 정원에 내려앉으며 “역시 집이 최고야.”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위니와 로켓에 딸려온 우주토끼가 로켓을 먹어치우고 있는 모습을 걱정스레 바라보는 윌버의 모습은 바로 마녀 위니식의 엔딩이다. 물론 뒷수습은 위니가 하겠지?^^

그동안 지구 안에서 마녀 위니가 펼치는 마법의 세계만으로도 성에 안 찼을까? 이번에는 시선을 우주로 돌려서 태양계 행성들도 사이드 메뉴처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2006년에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까지 친절하게 올려주신 이유는 뭘까? 한번 준 마음을 쉽게 거둘 수가 없었을까? 이제 우주까지 날아갔으니 다음 마녀 위니 이야기의 무대는 어디가 될까 궁금해진다. 위니가 이야기의 무대를 무한상상 영역인 우주를 택하면서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니길 바란다. 위니, 굳이 우주까지 날아갈 필요는 없었잖아.~  


쇠붙이들을 모아서 만든 위니의 귀환 로켓을 보니 또 다른 우주선 하나가 떠올랐다. <조르주의 마법 공원>에 매일 밤 출몰하는 xXx 행성에 사는 크자르볼로그들의 우주선이 바로 그것이다. 국자 숟가락 포크 프라이팬 거품기 토스터기 냄비 양념통들로 만들어진 이 우주선이 사실 위니의 우주선보다 더 탐이 난다.



<마녀 위니의 귀환 로켓 '삐걱삐걱 철겅철겅'>  <조르주의 마법공원에 출몰하는 우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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