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세상 앞에 주눅 들게 만들고 숨기고 싶은 결격사유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한 골목에서 자라던 친구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커서야 알았을 정도로 이혼은 부모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던 비밀이었다. 친구 아버지가 타지에서 근무하신다거나 중동으로 외화벌이 하러 가신 정도로 스리슬쩍 넘기면서 또래 아이들에게서 받는 상처만이라도 줄이자는 의도의 거짓말에 아이들이 알아서 좋을 게 뭐 있냐는 동네 어른들의 암묵적 동의였을 것이다. 이혼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었으니 아이들 앞에서 말을 조심했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물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주변 사람들만 어림잡아도 이혼한 사람들이 꽤 되고 그들은 혼자서 혹은 다시 가정을 꾸려서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이혼이 새삼스레 사람에 대한 평가를 뒤엎는 일로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으로 큰 불이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로 원수처럼 잡아먹을 듯 싸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서 좋을 게 뭐 있냐며 아이들을 위해서도 최선의 길이었다고 택한 방법이지만 설사 그게 최선이었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선택권조차 없었던 고통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게 이혼이다. 그래서 신중해야 하는 게 이혼이다. 결혼을 하고 몇 번쯤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혼에 대한 생각에서 내려앉게 만드는 결정적 이유는 바로 아이가 아닐까 싶다. 1년 평균 몇 쌍이 이혼을 하고 하루에 몇 명꼴로 이혼을 한다느니 하는 통계는 자신의 부모의 이혼을 지켜본 아이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신중을 기해 선택한 이혼이라도 아이의 상처를 보듬는 일에 우선 마음을 써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에 아이를 중요한 위치에 놓고 생각해야 함도 그렇다.
<팥쥐 일기>는 ‘명아주’의 이혼한 엄마가 ‘채송화’의 상처한 아빠와의 재혼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이룬 ‘채아주’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쁘장하고 공부도 잘하고 심성도 착한 송화에 비해 단춧구멍 눈에 찐빵 볼을 가진 그리 예쁘지 않은 얼굴의 아주는 재혼한 엄마가 자신보다 송화를 더 챙기는 모습에 심통이 난다. 팥쥐를 위해서라면 온갖 악행을 일삼아야 할 팥쥐 엄마가 팥쥐보다 콩쥐를 더 살뜰하게 챙기는 모습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은 송화를 상대로 종종 심술로 풀어내지만 번번이 송화의 착한 모습에 비교당하기만 할 뿐이다. 이득 없는 심통만 부리고 자신을 빼놓고 모두 만족스럽고 행복한 줄만 알았던 아주의 눈에 차츰 가족들의 마음이 보인다. 엄마는 송화의 고모 말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늦은 밤 웅크리고 앉아 실내화를 빨며 숨죽인 울음으로 달래고 있었고, 송화는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 몰래 울곤 했고 새아빠와 엄마는 경영하던 음식점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아이들 학원비 걱정을 아이들 몰래 하고 있었던 거다.
가족들의 숨겨둔 아픔들과 마주친 순간에도 아주는 가엾고 보듬어 주고 싶고 다가가고 싶은 손길을 잽싸게 거두고 만다. 그들의 아픔을 먼저 돌보기엔 아주는 아직 어리고 자신의 상처 또한 치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자신만 빠져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이 가정에 스스로를 골치 아픈 ‘덤’이라고 생각하고 가출을 결심한 아주는 가출을 감행하기로 한 날 이 모든 치기어린 마음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큰 사건을 맞닥뜨리게 된다. 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해결해보려고 지방에 내려가셨던 엄마와 새아빠가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도 없는 상황이라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위급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울기밖에 할 수 없는 아주에 비해 송화는 침착하게 대처하는 모습으로 아주를 위로했다. 병원과 가까이에 사시는 고모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도 송화였다. 그동안 아주가 마음으로 의지하던 아래층 꽥꽥 할머니의 도움으로 아주와 송화는 엄마 아빠가 있는 병원으로 가게 되고 이야기는 극적 화해와 가족 간의 사랑스런 모습으로 행복하게 끝난다.
예쁘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모든 면에서 완벽할 것 같아 보였던 송화에게 엄마마저 빼앗겨 버릴 것 같은 위기감에 심술을 부렸던 아주는 송화에게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불안과 아픔이 있음을 알게 된 뒤로 가시처럼 세운 마음들을 누그러뜨린다.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고 있는 꽥꽥 할머니네 강아지 콩쥐와 고양이 팥쥐가 서로 딴판이라 틈만 나면 으르렁대던 녀석들이 한집에서 살면서 서로 장난도 치고 핥아주기도 하면서 닮아가는 것처럼 콩쥐와 팥쥐처럼 정반대 성향의 아주와 송화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들 닮아갈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속담을 끌어놓지 않더라도 어려운 고비를 큰 산을 함께 넘은 아주네 가족들은 조심스럽고 위태로워 보였던 발밑이 견고해졌음을 느꼈을 것이다.
이향안 작가의 두 번째 창작동화 <팥쥐 일기>는 아주와 송화의 이야기를 통해서 부모의 이혼과 재혼으로 상처받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동화다. 잔잔하게 무한감동을 줬던 작가의 첫 그림책 <광모 짝 되기>처럼 넘쳐나거나 요란스럽지 않은 담백한 글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숨넘어갈 듯한 울음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도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착하거나 공부를 월등히 잘하지도 못하고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뱉어버리는 ‘팥쥐’ 아주의 시선을 쫒아가는 방식으로 상처받은 속내를 그악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표출해서 오해만 더해갔던 팥쥐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콩쥐가 우대받고 콩쥐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할 팥쥐 마음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은 풀렸을까? 이보다 더 이쁜 팥쥐가 세상에 없을 정도로 따스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준 배현주님의 그림도 글과 잘 어우러진다.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팥쥐’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