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토끼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28
한호진 지음 / 한솔수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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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라는 이야기를 과학책에서 읽고 난 다음부터 꼬마 지구지킴이가 된 아이는 두 정류장 정도 거리의 도서관은 걸어 다녀야 한다고 해서 한파가 몰아치는 날씨에도 버스를 절대 못 타게 하고, 방마다 돌아다니며 전기 스위치를 끄고, 우리 집 방귀대장 아빠는 지구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가끔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그런 꼬마 지구지킴이에게 그동안 잠시 잊고 있던 고민거리를 툭 건드려주는 <청소부 토끼>. 지구가 오염돼서 오늘도 하나 둘 지구를 떠나는 토끼들이 있다니 어찌하면 좋을까. 게다가 달빛마을의 소문난 청소부 토끼가 달로 떠나서인지 지구는 점점 더 지저분해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달빛마을의 토끼들이 처음부터 지구를 떠날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환하게 비춰주는 달빛을 받으며 튼튼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물론 청소부 토끼도 마을 구석구석을 기분 좋게 깨끗이 청소했고 당근 밭의 당근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의 달이 더러워 보이고 달빛 또한 어두워진 것이다. 달빛이 어두워지자 달빛마을 토끼들도 시름시름 앓았고 당근들도 시들시들 말라갔다. 촌장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모여서 대책회의를 한 결과 달빛 마을 토끼 중 누군가를 달에 보내 달을 깨끗하게 청소해서 예전처럼 환한 달빛을 되찾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지원자는 청소부 토끼였다. 지원자도 결정이 됐으니 이제 달에 갈 방법을 찾는 일만 남았다. 과학자 토끼들의 묘안이 여럿 나왔다. 지렛대를 이용해서 달을 향해 쏘아 올려도 보고, 달을 향한 기다란 사다리를 만들기도 하고, 새털처럼 가벼운 날개를 만들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실패를 거듭할수록 청소부 토끼는 마을과 더 먼 곳으로 떨어져 마을로 돌아오는 시간은 길어지기만 했고 청소부 토끼의 앞니는 하나씩 더 부러지면서 그 몰골에서 고생의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청소부 토끼, 커다란 기구에 올라타고 달을 향해 날아간 청소부 토끼는 한 해가 다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마을과 너무 먼 곳에 떨어져서 아직도 마을로 돌아오는 여정 중에 있는 것일까? 결과를 알 수 없었던 그때 달에서 청소부 토끼가 보낸 편지가 촌장할아버지한테 도착한다. 달빛마을에서 바라본 달빛이 어두워보였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구가 더러워서였다고, 달은 아주 깨끗한 상태고 달에서 바라본 지구가 아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지구의 토끼들은 그날부터 하나 둘 지구를 떠나고 있다는 웃고 있어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얘기가 바로 이 청소부 토끼의 얘기다. 
 

 

펜으로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소리가 좋아서 펜화를 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세밀하고 정성 가득한 펜화로 표현된 토끼들의 다소 과장된 듯한 표정들이 재미있다.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이 간간이 만화 컷을 연상케 하는 연결그림들도 인상적이다. 지구환경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고 이야기 나눠볼 수 있으니 또 고마운 책이다.

아마 지금쯤 달에서는 더러워진 지구를 청소해서 예전처럼 깨끗한 지구로 돌려놓기 위해 자원한 청소부 토끼가 지구로 돌아오는 무한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청소부 토끼야, 얼른 지구로 돌아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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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2
첼리 두란 라이언 글, 아놀드 로벨 그림, 정대련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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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몰아 내기만 한다면, 해님이 언제나 우리 오두막을 비춰 줄 텐데. 왜 여태 아무도 밤을 몰아 낼 생각을 하지 못했나 몰라.”  


그림책을 보기 시작한지 5년, 나와 아이의 취향의 간극이 요즘 들어 가장 근접하게 좁혀지고 있음을 느낀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게 아무리 많더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사로잡더라도 아이가 외면해 버리면 그 책은 그대로 버려지는 거다. 여러 시행착오들을 거쳐 이제 얼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그림책을 보면 적어도 아이의 호불호 정도는 느낌이 온다. 요즘은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 맘대로 책을 골라도 80%이상은 성공할 정도다. 게다가 서로의 취향을 닮아가기까지 한다.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을 수많은 책들이 꽂혀져 있는 책꽂이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아놀드 로벨이라는 그림 작가 이름에서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의 그 고전적인 그림들이 떠올라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책을 꺼내 앞 뒤표지를 살피니 흑백의 거친 펜화임이 짐작됐다. 습관처럼 서너 장 넘겨보다가 그대로 꽂을 심산이었다. 그림은 예상대로 흑백의 펜화였다. 사실 그냥 펜화로 넘기기엔 그림작가가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아놀드 로벨이 누구던가. 칼데콧 상과 칼데콧 아너상을 여러번 받은 인기작가가 아닌가. 이 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또한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이다. 그림책에 무지했던 시절에는 칼데콧 상에 의존해서 책을 골라본 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취향이란 게 생겨서인지 요즘은 절대적으로 신임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텍스트가 기발한 상상이 가득하고 유쾌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탄탄한 텍스트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기준에 속한다. 이 책은 우리 아이 마음에 쏙 들 게 분명했다.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반응을 살핀다. 읽어주기가 끝나자마자 한 번 더 읽어달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책은 마음에 쏙 든다는 뜻이다. 예상 적중!!! 뿌듯해진다. 
 

밤을 너무 싫어해서 달빛마저도 싫어하는 힐드리드 할머니의 밤을 몰아내기 위한 노고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잔가지를 꺾어 빗자루를 만들어 언덕 너머로 밤을 쓸어버리려고 하고, 튼튼한 삼베 자루를 만들어 깜깜한 밤을 자루 안에 쑤셔 넣어 언덕 너머로 갖다 버리려고도 하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밤을 펄펄 끓여 김으로 날려 보내려고도 한다. 밤을 친친 덩굴로 묶어서 시장에 내다 팔려고도 하고 양털 깎듯 가위로 찰칵찰칵 잘라보려고도 하고, 앞치마에 한가득 퍼 담아 와서 늙은 사냥개에게 먹이려고도 하고 자장가로 밤을 달래보기도 하고 우유로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다 밤을 향해 주먹질도 하고 침도 퉤~뱉어보지만 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힐드리드 할머니의 밤이 참 유쾌한 글에 녹아들어 쉽게 잠들지 못해 밤을 싫어하는 할머니의 고통은 이미 할머니만의 고통이 되고 ‘멍청한 힐드리드 할머니 그게 아니거든요.~’를 외치는 내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된다. 어리석은 힐드리드 할머니는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고 다시 밤이 되면 또 밤과의 사투를 되풀이 할 것이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밤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마을과 외떨어진 언덕 위 오두막집에서 늙은 사냥개 한 마리와 쉽게 잠들지 못하는 힐드리드 할머니의 외로움이 할머니의 오두막집 모습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져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그렇게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그냥 엉뚱한 할머니의 밤을 상대로 한 유쾌한 싸움이야기라고 즐기는 게 이 책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의!!! 혹시라도 몰려오는 잠을 쫓으며 밤에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에게 힐드리드 할머니의 사례를 들어 일찍 잠들기를 종용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준다면 아마도 아이의 밤잠은 우주 밖으로 달아나버릴 위험이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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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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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72세의 은퇴한 도서 비평가 오거스트 브릴은 47세 된 딸과 23세 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 소니아는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위는 5년 전에 딸을 버리고 떠났고, 손녀의 남자 친구도 이라크에서 죽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딸 미리엄은 강의와 로즈 호손의 전기를 집필하는 일에 빠져 있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던 손녀 카티아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이라크에서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본 후 그 충격으로 학교도 휴학하고 집에서 영화감상에만 몰두하고 있고, 브릴은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소니아와의 기억 속으로 생각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집필, 영화감상, 이야기 만들기...세 명 모두 각자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마취제 혹은 자가 치료의 방법들을 하나씩 마련한 셈이다.

브릭은 브릴의 불면의 밤에 만들어낸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오언 브릭은 아내 플로라 곁에서 잠이 들었지만 엉뚱한 장소에서 눈을 뜬다. 9.11 테러도 이라크전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연방파와 반대파 사이의 내전에 휩싸인 또 다른 미국이다. 믿기 힘든 상황에서 이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임무가 브릭에게 주어진다.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오거스트 브릴을 암살하라는 지령이다. 이 자가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서 오언 브릭과 이 전쟁을 만들어 냈다는 설명이다. 황당한 상황에서 군인도 아닌 직업 마술사인 자신에게 이런 황당한 임무가 내려졌지만 브릭은 살인을 할 생각도 없고 단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명령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 달의 기한을 얻어 다시 아내가 있는 또 하나의 미국으로 돌아온 브릭은 이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지만 아내는 이 상황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웹사이트에서 암살지령과 일치하는 오거스트 브릴이라는 실존인물을 확인까지 한 상태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었던 브릭 앞에 다시 다른 세상의 존재들이 나타나 총구를 들이댄다. 낯선 사람을 죽일 수 없었던 브릭은 아내를 처가에 보내고 결국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전중인 다른 세상인 미국에서 온 첫사랑 버지니아는 브릴을 찾아가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얘기를 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브릴과의 약속이 잡혀있는 전날 밤, 쾅!! 연방파의 폭격으로 버지니아와 오언 브릭은 죽고 만다. 

<어둠 속의 남자> 이야기 구조의 기초는 16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사상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어쩌면 폴 오스터의 전 작품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야. 많은 현실이 있는 거야. 단 하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상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 세상과 반(反)세상, 세상과 그림자 세상. 각 세상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누군가가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각각의 세상은 마음의 창조물이라, 이 말씀이야. (96쪽)

희망이 있는 방향과 희망이 없는 방향을 놓고 이야기의 결말을 고심하던 브릴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브릭을 죽이면서 자신의 인생은 캄캄한 어둠을 벗어나 회색빛 희미한 희망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죽을 것이냐 이 괴상한 세상과 함께 굴러갈 것이냐를 고민하다 비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괴상한 세상이 굴러가는 동안 살아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고통스런 기억과 슬픔과 자기 비난의 상처만 가득한 이 집의 불면의 밤은 이제 서서히 치유되어 가고 있다. 키티아는 할아버지 곁에서 몇 시간째 귀한 잠을 자고 있고,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는 남편이 내뱉은 ‘끔찍한 사람’이란 말을 자신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인 것 마냥 상처로 끌어안고 살고 있는 미리엄은 로즈 호손의 전기를 끝냈다. 브릴은 오늘만은 함께 외출해서 거한 아침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다고 되뇌어 본다.     

폴 오스터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치는 항상 높다. 상대적 비교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오직 자신의 전작들이 비교 대상이 될 뿐인 그런 작가다. <달의 궁전>으로 그와의 첫 만남 이후로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래, 10년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혀서 어물쩍 넘어가는, 새삼스런 평가도 쑥스러울 정도로 스타일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작가와 독자 사이가 되겠다. 그런데 폴 오스터가 변.했.다. 그 조짐은 <브루클린 풍자극>에서부터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껏 발표했던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을 총출동시켜서 단순히 팬서비스 차원의 fan book이라고 생각했던 <기록실로의 여행>은 한 시대를 총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전환점을 삼으려는 계획된 의도였을까?

천권이 넘는 책을 쌓아두고 한권씩 읽어나가며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아서 연명해나가다 결국 아파트도 잃고 자발적으로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가는 <달의 궁전>의 포그, 유산으로 상속받은 거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남아있던 전 재산을 도박으로 잃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거대한 벽 쌓기 노동에 시달려야했던 <우연의 음악>의 짐 나쉬, 중력에 반하는 공중부양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견뎌야했던 <공중 곡예사>의 원더보이 월트. 하지만 <어둠 속의 남자>의 독특한 인물 브릭을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끈질기게 쫓아가 끝장을 봐야 하는 묘사와 서사의 치밀함은 환상과 실제의 혼동을 가져온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가 폴 오스터를 통하면 왠지 일어날 법하고 그럴듯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된다는 게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힘이다.

<브루클린 풍자극>의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이야기에 이은 <어둠 속의 남자>의 치유와 희망... 인간적이고 따스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폴 오스터 특유의 치열한 글쓰기에 살짝 김빠진 느낌도 든다. 난 반댈세~를 외치고 싶지만 난 아직도 폴 오스터의 소설에 배가 고프다. 다음 작품에서 확인해 볼 일이다. 지금 나는 지난여름에 출간된 폴 오스터의 신간 한글번역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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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1
미겔 데 우나무노 지음, 조민현 옮김 / 민음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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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묵혀뒀던 이 책을 기억해낸 것은 폴 오스터의 <어둠 속의 남자>를 읽는 중이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이 자신의 창조자라 할 수 있는 작가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는 이 이야기와 자살을 원하는 주인공과 자살을 허락할 수 없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 우나무노의 <안개> 사이에 자연스럽게 다리가 놓였다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메타 픽션에 대한 충실한 예를 바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나의 ‘전형적’이라는 단어에 우나무노 선생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겠지만 말이다. 

 

체계화되고 정형화된 장르의 형식에 대한 회의와 소설도 인간의 삶처럼 시간과 공간 속에 노출되어 유기체처럼 성장하고 변화해가야 한다는 우나무노의 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이 <안개>가 아닐까 한다. 장르에 의해 구분지어지고 틀 안에 갇히기를 거부한 혁명가적 글쓰기를 펼쳐 보인 작품이다. 우선 스페인어로 소설을 의미하는 ‘노벨라(novela)라 불리기를 거부한 우나무노는 자신의 이야기를 ’니볼라(nivola)라고 명명한다. 우리말 번역자는 ‘소셜’이라 번역했다. 그 안에 작가 스스로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허구적 인물과 실제 인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유한한 존재인 인간으로서 불멸과 영원성에 대한 갈망을 꾀한다. 세르반테스나 세익스피어가 돈 키호테나 햄릿을 통해서 살아남듯이 말이다.


자, 그럼 ‘소설 구조를 혁명적으로 전복한 20세기 스페인 문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우나무노의 <안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 혁명적인 글쓰기의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책은 빅토르 고티라는 인지도 낮은 작가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 이름 있는 작가가 그렇지 못한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 쓰는 서문의 전례를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게다가 <안개> 속으로 들어가 읽다보면 이 빅토르 고티라는 인물이 <안개>에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인 즉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에 뒤통수를 맞게 된다. 고티의 서문에 이어 능청스럽게 시침 뚝 떼고 우나무노의 서문이 이어진다. 고티의 의견으로 인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면서 고티의 목숨은 자신의 손 안에 있다며 조용히 으름장을 놓는다. 빅토르 고티의 실체를 앍고 보면 정말 살떨리는 협박인 셈이다.^^ 이 소셜의 에필로그는 아우구스토 페레스의 애완견이었던 오르페오가 맡았다. 보편적 소설의 끝부분에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소개하는 관례를 깨고 이 소셜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아우구스토 페레스를 제외한 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다고 공표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아우구스토의 순수한 사랑을 조롱한 두 남녀 에우헤니아와 마우리시오의 댓가를 치루는 결말을 은근히 기대했었는데 말이다. 서문과 에필로그만을 두고는 ‘혁명적’이라는 단어에 미흡하다. 아우구스토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순수한 아우구스토의 사랑이야기는 지루하고 진부하다. 예술혼을 불태우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부모가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직업적인 피아니스트로 일하는 에우헤니아를 스치듯 본 이후로 아우구스토는 사랑에 빠져서 그녀에게 한결같은 구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에우헤니아에게는 마우리시오라는 애인이 있다. 천성적으로 게으른 마우리시오는 결혼을 요구하며 취직하기를 바라는 에우헤니아에게 순간만을 모면하며 단지 붙어있을 뿐인 한심한 인간이다. 아우구스토는 빚 때문에 끔찍하게 싫어하는 피아노를 치는 에우헤니아에게 순수한 의도로 그녀의 빚을 갚아주고 집을 그녀에게 돌려주지만 아우구스토의 진심은 에우헤니아에게 오해를 불러오게 된다. 백수 애인과 결별하고 아우구스토의 진심을 이해하는 듯한 모습으로 아우구스토와의 결혼을 허락한 에우헤니아는 결국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한심한 마우리시오와 도주를 하며 아우구스토에게 절망을 안겨준다. 실연의 아픔과 무엇보다 조롱당한 듯한 모멸감으로 괴로워하던 아우구스토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고 자살에 관해 인상적으로 다뤘던 우나무노 선생의 수필을 떠올리고 살라망카로 우나무노를 찾아온다. 야릇한 미소로 아우구스토를 맞이하는 우나무노는 자살을 실행하려는 문제를 상의하러 자신을 찾아온 아우구스토의 속내를 꿰뚫으며 아우구스토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들려준다. 아우구스토는 살아있지도 그렇다고 죽은 존재도 아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을 수가 없다는 대답이다. 아우구스토는 우나무노의, 혹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환상의 산물일 뿐인 소셜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아우구스토와 우나무노 사이의 설전이 오가고 오히려 허구의 실체인 아우구스토가 자신에게 허구의 존재를 부여한 우나무노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흥분한 우나무노는 아우구스토가 죽도록 결정하고 선고를 내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죽을 것이라는 끔찍한 선고...다시 살기를 간청하는 아우구스토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우나무노...집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토는 우나무노의 선고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소설가이면서 14개 언어에 능통한 석학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한 우나무노의 철학적 사유가 이야기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쑥거린다. 햄릿이 환생한 듯한 우유부단한 사색가 아우구스토에게 색깔을 입혀주는 데 아주 그럴 듯한 옷이 된다. 존재 의지와 불멸에 대한 갈망은 아우구스토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니까 허구의 실체인 나는 죽어야 하는군요? 그렇다면 좋습니다. 저를 창조해 주신 우나무노 선생님, 당신도 역시 죽을 것입니다. 당신 역시도 원래 있었던 무의 세계로 돌아갈 것입니다. 신은 당신을 꿈꾸는 것을 중단할 것입니다. 당신은 죽을 것입니다. 네, 비록 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죽을 거예요.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읽는 모든 사람들도 죽을 것입니다. 모두가, 모두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나와 같은 허구의 실체들! 나와 똑같이! 모두가, (292쪽)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내 생애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만일 내가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환상 속에서 산다면 단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허구적인 삶의 이야기가 저장되어 있는 책 페이지에서 뛰쳐나와, 아니 나의 생애를 읽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에서--지금 이 순간 내 생애를 읽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의 --뛰쳐나와 영원한 영혼으로써 영원히 고통 받는 영혼으로써 내가 왜 존재할 수 없단 말인가? 왜? (294쪽)        

이 작품은 1914년에 출간된 작품이다. 현재의 소설들에 비하면 파격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당시만 해도 ‘전복’이나 ‘혁명’이란 단어가 튀어나올 만큼 획기적인 선구자였을 법하다. 포스트모더니즘, 메타픽션, 상호텍스트성, 하이퍼텍스트...뭐라 부르든지 간에 보르헤스나 마르케스, 존 파울즈, 오르한 파묵, 밀란 쿤데라, 폴 오스터 등과 같은 작가들에 의해 자주 쓰이는 이 기법이 시대가 원하는 자연스런 변화였을지라도 우나무노에게 빚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나는 아우구스토 페레스를 통해서 우나무노를 기억하는 것으로 일부의 빚을 탕감 받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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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벤, 막스 삼 형제의 모험 하늘파란상상 1013 3
초란 드르벵카 지음, 크리스티네 슈바르츠 그림, 김라합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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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일주일 전부를 다 넣으면 딱 맞는 냄비 같아요. 그래서 모든 사건이 똑같이 수요일에 일어나요.」  


‘아들 둘 키우는 엄마는 빨리 늙고, 아들 셋 키우는 엄마는 조폭이 된다.’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사내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높아지는 게 목소리요, 조곤조곤 타이르는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소리는 커지고 행동은 과격해지니 조폭이 따로 없다는 비유다. 아홉 살 얀, 일곱 살 벤, 다섯 살 막스 삼형제의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바로 ‘안식년’이겠지만 엄마의 자리라는 것이 그런 사치를 허락지 않으니 그나마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 딱 한 시간 정도의 혼자만의 조용한 외출을 한다. 미용실을 가거나 장을 보거나 가끔은 아이들 몰래 달콤한 케이크나 콜라를 즐기기도 하는 엄마의 자유시간인 셈이다. 대개의 경우 위층에 사는 메츨러 아줌마가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고 아이들이 최악의 베이비시터라고 부르는 ‘정신 나간 베라’에게 부탁을 하곤 한다.

엄마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을 주는 수요일의 한 시간이 아이들에게는 환상적인 모험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비밀본부로부터 미니 전화기로 지령이 내려오면 아이들은 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모험은 한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것치고는 그 스케일이 엄청나다. 우주선을 타고 달 착륙을 시도하기도 하고 태양의 만유인력에 대항하여 탈출하기도 하고, 시간 여행을 해서 2억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공룡을 만나기도 한다.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해적선에서 보물을 찾고 해적 선장 유령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사막과 북극을 여행하고, 메츨러 아줌마의 몸속을 여행하기도 한다. 급기야는 지구 중심으로 향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리고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어느 곳에도 아이들의 흔적이 없다. 한 시간의 모험이 아니라 사흘 동안의 모험을 끝내고는 사라질 때처럼 갑자기 나타난다. 그리고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이 글을 쓴 작가에게 들려준다. 작가는 그 비밀스런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으로 이 책을 썼노라고, 이 책이 바로 삼 형제의 실화라고 능청스럽게 얘기한다.

사흘 동안의 행방불명 후에 나타난 아이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였다고 한다. 작가에게 비밀을 털어놓으며 ‘요정나라의 흙’을 몰래 보여주기도 한다. 피터 팬을 따라 네버랜드에 다녀온 웬디와 두 동생의 이야기가 겹쳐 보인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유치하다거나 터무니없다고 치부해버리며 점차 잃어버리는 세계에 대한 생각도 슬그머니 살아난다. 작가까지 가세해서 삼 형제의 모험이 실화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 이야기를 실화로 믿어주고 싶다. 사막을 여행한 날에는 온 집안이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 난장판이 되고, 바다 밑 해적선의 보물을 찾아 떠났던 날에는 두루마리 화장지 수십 개가 죄다 풀려서 변기구멍을 꽉 막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난 믿고 싶다. 얀, 벤, 막스는 환상적인 모험을 떠났던 거라고...

덧붙임)))

얀, 벤, 막스와 정반대 성향의 사내아이를 달랑 한 명 키우는 엄마도 나름대로의 고충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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