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상심으로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정말로 심장이 깨져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고 있다.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72세의 은퇴한 도서 비평가 오거스트 브릴은 47세 된 딸과 23세 된 손녀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아내 소니아는 지난해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위는 5년 전에 딸을 버리고 떠났고, 손녀의 남자 친구도 이라크에서 죽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딸 미리엄은 강의와 로즈 호손의 전기를 집필하는 일에 빠져 있고, 영화를 공부하고 있던 손녀 카티아는 헤어진 남자친구가 이라크에서 끔찍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본 후 그 충격으로 학교도 휴학하고 집에서 영화감상에만 몰두하고 있고, 브릴은 매일 밤 어둠 속에 누워 소니아와의 기억 속으로 생각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집필, 영화감상, 이야기 만들기...세 명 모두 각자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마취제 혹은 자가 치료의 방법들을 하나씩 마련한 셈이다.

브릭은 브릴의 불면의 밤에 만들어낸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오언 브릭은 아내 플로라 곁에서 잠이 들었지만 엉뚱한 장소에서 눈을 뜬다. 9.11 테러도 이라크전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연방파와 반대파 사이의 내전에 휩싸인 또 다른 미국이다. 믿기 힘든 상황에서 이 내전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임무가 브릭에게 주어진다. 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오거스트 브릴을 암살하라는 지령이다. 이 자가 스스로를 죽이기 위해서 오언 브릭과 이 전쟁을 만들어 냈다는 설명이다. 황당한 상황에서 군인도 아닌 직업 마술사인 자신에게 이런 황당한 임무가 내려졌지만 브릭은 살인을 할 생각도 없고 단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아내 곁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명령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한 달의 기한을 얻어 다시 아내가 있는 또 하나의 미국으로 돌아온 브릭은 이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지만 아내는 이 상황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웹사이트에서 암살지령과 일치하는 오거스트 브릴이라는 실존인물을 확인까지 한 상태지만 실행에 옮길 생각이 없었던 브릭 앞에 다시 다른 세상의 존재들이 나타나 총구를 들이댄다. 낯선 사람을 죽일 수 없었던 브릭은 아내를 처가에 보내고 결국 자살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전중인 다른 세상인 미국에서 온 첫사랑 버지니아는 브릴을 찾아가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얘기를 하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하지만 브릴과의 약속이 잡혀있는 전날 밤, 쾅!! 연방파의 폭격으로 버지니아와 오언 브릭은 죽고 만다. 

<어둠 속의 남자> 이야기 구조의 기초는 16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다노 브루노의 사상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어쩌면 폴 오스터의 전 작품들이 이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야. 많은 현실이 있는 거야. 단 하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세상이 있는데 그것들이 서로 평행하게 달리고 있어. 세상과 반(反)세상, 세상과 그림자 세상. 각 세상은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누군가가 꿈꾸고 상상하고 저술하는 바 그대로의 세상이라고. 각각의 세상은 마음의 창조물이라, 이 말씀이야. (96쪽)

희망이 있는 방향과 희망이 없는 방향을 놓고 이야기의 결말을 고심하던 브릴은 자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브릭을 죽이면서 자신의 인생은 캄캄한 어둠을 벗어나 회색빛 희미한 희망을 찾으려 했는지 모르겠다. 죽을 것이냐 이 괴상한 세상과 함께 굴러갈 것이냐를 고민하다 비록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이 괴상한 세상이 굴러가는 동안 살아보기로 결정한 것이 아닐까. 고통스런 기억과 슬픔과 자기 비난의 상처만 가득한 이 집의 불면의 밤은 이제 서서히 치유되어 가고 있다. 키티아는 할아버지 곁에서 몇 시간째 귀한 잠을 자고 있고, 자신을 배신하고 떠나는 남편이 내뱉은 ‘끔찍한 사람’이란 말을 자신에게 내려진 최종 선고인 것 마냥 상처로 끌어안고 살고 있는 미리엄은 로즈 호손의 전기를 끝냈다. 브릴은 오늘만은 함께 외출해서 거한 아침식사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다고 되뇌어 본다.     

폴 오스터라는 이름에 거는 기대치는 항상 높다. 상대적 비교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고 오직 자신의 전작들이 비교 대상이 될 뿐인 그런 작가다. <달의 궁전>으로 그와의 첫 만남 이후로 벌써 10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래, 10년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얽혀서 어물쩍 넘어가는, 새삼스런 평가도 쑥스러울 정도로 스타일에 젖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작가와 독자 사이가 되겠다. 그런데 폴 오스터가 변.했.다. 그 조짐은 <브루클린 풍자극>에서부터 조금씩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지금껏 발표했던 작품들 속의 등장인물들을 총출동시켜서 단순히 팬서비스 차원의 fan book이라고 생각했던 <기록실로의 여행>은 한 시대를 총정리하고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전환점을 삼으려는 계획된 의도였을까?

천권이 넘는 책을 쌓아두고 한권씩 읽어나가며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아서 연명해나가다 결국 아파트도 잃고 자발적으로 거리의 부랑자가 되어가는 <달의 궁전>의 포그, 유산으로 상속받은 거금으로 자동차를 구입해서 미국 전역을 떠돌아다니다 남아있던 전 재산을 도박으로 잃고 도박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거대한 벽 쌓기 노동에 시달려야했던 <우연의 음악>의 짐 나쉬, 중력에 반하는 공중부양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문에 가까운 훈련을 견뎌야했던 <공중 곡예사>의 원더보이 월트. 하지만 <어둠 속의 남자>의 독특한 인물 브릭을 너무 쉽게 놓아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끈질기게 쫓아가 끝장을 봐야 하는 묘사와 서사의 치밀함은 환상과 실제의 혼동을 가져온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가 폴 오스터를 통하면 왠지 일어날 법하고 그럴듯하기까지 한 이야기가 된다는 게 이야기꾼 폴 오스터의 힘이다.

<브루클린 풍자극>의 인간미 넘치고 따스한 이야기에 이은 <어둠 속의 남자>의 치유와 희망... 인간적이고 따스한 방향으로의 전환이 폴 오스터 특유의 치열한 글쓰기에 살짝 김빠진 느낌도 든다. 난 반댈세~를 외치고 싶지만 난 아직도 폴 오스터의 소설에 배가 고프다. 다음 작품에서 확인해 볼 일이다. 지금 나는 지난여름에 출간된 폴 오스터의 신간 한글번역본을 기다리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