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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2
첼리 두란 라이언 글, 아놀드 로벨 그림, 정대련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밤을 몰아 내기만 한다면, 해님이 언제나 우리 오두막을 비춰 줄 텐데. 왜 여태 아무도 밤을 몰아 낼 생각을 하지 못했나 몰라.”
그림책을 보기 시작한지 5년, 나와 아이의 취향의 간극이 요즘 들어 가장 근접하게 좁혀지고 있음을 느낀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게 아무리 많더라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일러스트로 사로잡더라도 아이가 외면해 버리면 그 책은 그대로 버려지는 거다. 여러 시행착오들을 거쳐 이제 얼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그림책을 보면 적어도 아이의 호불호 정도는 느낌이 온다. 요즘은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내 맘대로 책을 골라도 80%이상은 성공할 정도다. 게다가 서로의 취향을 닮아가기까지 한다.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을 수많은 책들이 꽂혀져 있는 책꽂이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아놀드 로벨이라는 그림 작가 이름에서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의 그 고전적인 그림들이 떠올라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책을 꺼내 앞 뒤표지를 살피니 흑백의 거친 펜화임이 짐작됐다. 습관처럼 서너 장 넘겨보다가 그대로 꽂을 심산이었다. 그림은 예상대로 흑백의 펜화였다. 사실 그냥 펜화로 넘기기엔 그림작가가 억울한 면이 있을 것이다. 아놀드 로벨이 누구던가. 칼데콧 상과 칼데콧 아너상을 여러번 받은 인기작가가 아닌가. 이 책 <힐드리드 할머니와 밤> 또한 칼데콧 아너상 수상작이다. 그림책에 무지했던 시절에는 칼데콧 상에 의존해서 책을 골라본 적도 있지만 나름대로 취향이란 게 생겨서인지 요즘은 절대적으로 신임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텍스트가 기발한 상상이 가득하고 유쾌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탄탄한 텍스트는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몇 가지 기준에 속한다. 이 책은 우리 아이 마음에 쏙 들 게 분명했다. 책을 읽어주며 아이의 반응을 살핀다. 읽어주기가 끝나자마자 한 번 더 읽어달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책은 마음에 쏙 든다는 뜻이다. 예상 적중!!! 뿌듯해진다.
밤을 너무 싫어해서 달빛마저도 싫어하는 힐드리드 할머니의 밤을 몰아내기 위한 노고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잔가지를 꺾어 빗자루를 만들어 언덕 너머로 밤을 쓸어버리려고 하고, 튼튼한 삼베 자루를 만들어 깜깜한 밤을 자루 안에 쑤셔 넣어 언덕 너머로 갖다 버리려고도 하고, 가마솥에 불을 지펴 밤을 펄펄 끓여 김으로 날려 보내려고도 한다. 밤을 친친 덩굴로 묶어서 시장에 내다 팔려고도 하고 양털 깎듯 가위로 찰칵찰칵 잘라보려고도 하고, 앞치마에 한가득 퍼 담아 와서 늙은 사냥개에게 먹이려고도 하고 자장가로 밤을 달래보기도 하고 우유로 유혹하기도 한다. 그러다 밤을 향해 주먹질도 하고 침도 퉤~뱉어보지만 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힐드리드 할머니의 밤이 참 유쾌한 글에 녹아들어 쉽게 잠들지 못해 밤을 싫어하는 할머니의 고통은 이미 할머니만의 고통이 되고 ‘멍청한 힐드리드 할머니 그게 아니거든요.~’를 외치는 내 아이와 같은 심정이 된다. 어리석은 힐드리드 할머니는 날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잠에 빠져들고 다시 밤이 되면 또 밤과의 사투를 되풀이 할 것이다.
힐드리드 할머니가 밤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마을과 외떨어진 언덕 위 오두막집에서 늙은 사냥개 한 마리와 쉽게 잠들지 못하는 힐드리드 할머니의 외로움이 할머니의 오두막집 모습을 통해서 그대로 전해져 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그림책은 그렇게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다. 그냥 엉뚱한 할머니의 밤을 상대로 한 유쾌한 싸움이야기라고 즐기는 게 이 책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의!!! 혹시라도 몰려오는 잠을 쫓으며 밤에 잠을 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에게 힐드리드 할머니의 사례를 들어 일찍 잠들기를 종용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베드타임 스토리로 읽어준다면 아마도 아이의 밤잠은 우주 밖으로 달아나버릴 위험이 있음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