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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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은 신의 분탕질인가, 이런 조합의 가족이라니... 

운명이라 하고 팔자라 부르기도 하는 인간사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관장하는 신은 한번 얕보인 사람에게는 무자비하게 냉정하고 잔인한 힘을 휘두른다. 시련 앞에 나약한 모습으로 주저 앉아있는 사람은 몇 배 더 강력한 시련으로 시험한다. 절벽에서 던져진 새끼들 중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 녀석에게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창을 열어둘 심산으로 가혹하게 군다.

열일곱 살 여울이네 집에 오래도록 짙게 드리운 신의 분탕질이 갈수록 위세가 등등하다. 여든셋의 나이에 남들은 며느리의 따뜻한 밥상을 받을 때이지만 육아와 살림살이에서 놓여날 여유가 없는 할매. 양로원의 예치금을 마련해서 자식과 손주들 뒷바라지에서 해방되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순경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멀쩡한 허우대의 남편과 결혼을 했지만 이미 두 명의 여자와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린다. 아마도 이 집에 운명의 신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 순간을 되짚어 가면 이 시점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울의 아빠는 채권추심대행업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위인이다. 그 결과가 엄마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엄마가 제각각인 세 명의 자식이다. 특히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의 엄마에게서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여울이는 이 집안에서 더욱 겉도는 존재다.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언니와 오빠도 상황은 좋지 않다. 전문대생인 오빠는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스물한 살의 청년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중학교 때 발병한 증세를 바로 치료했더라면 완치도 가능했을 텐데 아빠와 할매는 오빠의 고통을 외면했다. 아마도 병원비가 두려워서 치료의 엄두를 못 내고 무관심으로 포장했을 법하다. 고3 수험생인 언니는 채권추심업체는 늘어나고 일은 줄어드는 바람에 사무실을 정리해버리고 가족들을 동원해서 일을 꾸려나가는 아빠의 일을 돕느라 공부도 제대로 할 상황이 아니다. 수험생이 매일 컴퓨터도 채권자 리스트 작업만 하고 있고 대학은 꿈도 못 꿀 처지다. 명문대를 졸업해 투자자문가로 꽤 성공한 위치에 올랐다가 주식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울이네 얹혀사는 삼촌까지 보태진 여울이네 가족의 우울한 조합은 여기까지다.

 

이 가족의 ‘불량’함은 결핍과 궁핍에서 비롯된다.  


핏줄이라는 연으로 묶이기에 독특한 가족 구성이다. 온갖 궁상과 비루한 삶의 집합소다.  겉보기엔 멀쩡한 40평대의 아파트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형적인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 집은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는 이 가족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빠는 치료비 걱정에 방치해둔 병이 이제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고질병이 되어버렸고, 언니는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갈수록 쪼그라드는 살림에 대학은 꿈도 못 꿀 수험생이다. 위장이혼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집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삼촌은 결국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술비로 어머니의 노후자금까지 빼먹고 얹혀살고 있다. 자식 둘과 손주 셋의 뒤치다꺼리에서 해방될 마지막 보루였던 양로원 예치금마저 아들 수술비로 털어 넣고 신세 한탄하는 할매와 직원들 밀린 임금과 가족들 생활비를 위해 불법추심을 하다 구속 수감된 아빠. 이런 가족에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원이 된 여울이는 아빠의 주머니를 슬쩍 뒤지고 학교 매점 식권을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근근이 모은 돈을 코스튬플레이에 쏟아 넣으며 살아간다.

‘가난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지 않은 것들을 놓치게 한다.’는 여울이의 말이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돈이 그어놓은 한계를 뛰어넘을 특출한 재능이 있다거나 세상사의 불편함 쯤은 초월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가난 때문에 ‘오히려 재능은 우리 집에서 불필요한 개인기일 수 있다’며 꿈조차 꾸지 못하는 여울이와 밀린 월세로 대부분을 대체해버려 얼마 남지 않은 보증금마저 차압당해 길거리로 나가게 된 가족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고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은 사치이고 분노를 촉발하게 하는 언어유희일 뿐이다. 조금씩 잠식해온 가난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다가 결국 가족 해체 상황까지 맞이한 이 가족은 ‘불량’한 가족이 아니라 ‘불쌍’한 가족이 아닐까.
 


이 ‘불쌍’한 가족을 바닥까지 몰고 간 표면적 원인은 궁핍한 생활에서 찾아야겠지만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가 이 가족의 근저에 깔려 있다. 모성의 부재는 버려졌다는 상처와 직결되고 절름발이인 마음으로 쩔뚝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아픔을 예고하는 말이다. 이 집안의 금기어 ‘엄마’. 누구도 엄마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가슴을 짓눌러대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묵직한 바위덩어리 하나씩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십오 년 전부터 부재중인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해봤던 아빠와 삼촌은 아버지의 말소된 주민등록증과 묘연한 행적으로 객사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포기를 했지만 아빠와 삼촌 또한 부성에 목말라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스스로도 ‘부재중인 아버지’인 삼촌과 자기만의 투박한 방식으로 아이 셋의 아버지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구치소에 수감됨으로써 ‘부재중인 아버지’가 된 아빠는 어느덧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세 명의 아이들을 버린 세 명의 엄마들 중 한명이라도 엄마의 자리를 지켜줬더라면, 사고만 치고 허황된 꿈만 쫓는 남자였어도 아버지 자리만은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 가족은 어떠한 고난에도 의식주의 근간을 흔드는 가난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견디고 이겨냈을 거라는 측은함이 든다.   

지나치게 묵시록적이지도 터무니없이 발랄하지도 않은 학교와 아이들. 
 

이슈화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을 보면 선생님은 헌신적인 교사와 악덕비리 교사로 캐릭터가 극명하게 나뉘고 아이들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교묘하고 스스럼없이 영악하다. 과연 학교의 현주소가 이런 상태라면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무섭기까지 하다. 또 어떤 이야기들에서는 현실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상향만을 그리며 작가 혼자 원맨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량 가족 레시피>에서 그려지는 아이들과 학교의 모습은 지나치게 묵시록적이지도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발랄하지도 않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세바스찬도 짝사랑의 가슴 졸임이 있고 모두가 선망하는 외고에 다니는 모범생 류은이는 의사인 엄마의 기대가 버거워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기를 꿈꾸며 코스튬플레이로 가끔씩 일탈을 한다. 춤을 좋아해서 나이트클럽에 자주 다니는 참새나 외동딸에 대한 부모님의 과한 기대로 공부를 싫어하는 세영이까지 여울이와 어울리는 친구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그럴듯하게 포장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이다. 열일곱 살 아이들에게 자서전을 써오라는 도덕 꼴통, 희생양 한명 잡아서 서둘러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려 드는 생활지도 선생님인 광견, 아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다 마침내 폭발한 진로 선생님 개동구. 억울함을 호소하는 학생의 진실을 계속 거짓이라 우기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분명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일상적인 일이다. 젠체하는 우월한 집단도 없고 편애하고 동조하는 학교 행정도 없고 겉돌고 따돌림 당하며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는 일탈을 서슴없이 감행하는 겁 없고 무서운 아이들도 없다. 서로 앞 다투어 문제를 제기하고 계도하려 드는 청소년 문학 속에서 <불량 가족 레시피>가 빛나는 이유다.

불량 가족, 헤쳐 모여~~~
 

몇 년째 아빠의 일을 거들고 있지만 하고 싶다는 공부 얘기를 꺼냈다가 아빠에게 거절당한 뒤 집을 나가버린 언니 유나는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살지만 할매를 잘 챙기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형과 한바탕 싸운 뒤 집을 나간 삼촌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여울이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힘들게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드릴 홍삼엑기스를 여울이 편에 들려 보낸다. 가출한 뒤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물건을 챙기러 들어온 오빠가 끝내 아빠와 할매의 안부를 묻지 않았던 마음에도 가족에 대한 연민이 보인다. 구치소에 수감된 아빠는 여울에게 부끄러운 용서를 빌고 연신 할매 걱정뿐이다. 독설만 퍼붓던 할매는 동생네서 살 수 있는 생활을 포기하고 혼자 남은 여울이의 뒷바라지를 하려한다. 여울이가 그토록 바라던 희망적인 이야기, 여울이와 같은 아이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위로는 할머니의 투박한 말속에 튀어나온다. ‘니라고 만날 눈물 뺄 일만 있지는 않을 끼다. 사람마다 다 지 몫에 지고 갈 짐 보따리는 하나씩 지고 가는 기 세상살이다.’ 라고... 다들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이 감당이 안 되어 서로를 괴롭히고 방관하며 살았던 여울이네 가족들이 각자 자신들의 상처들을 다독거려 진정한 가족으로 재탄생되리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 중심에 여울이가 서 있다. 사랑이 자신에게 가장 취약한 영양소라고 하는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라는 마법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많은 시선과 사랑을 받는 주목받는 生이고 싶었을 거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스스로 마법을 풀어버리고 원래의 못생긴 모습으로 돌아온 피오나는 가장 용감하고 멋진 공주다. 여울이 또한 용감하게 자신의 운명과 세상과 맞선 피오나 공주처럼 세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학창시절을 죽을힘을 다해 버텼던 나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나는 지금 여울이를 응원한다. 여울아 힘내라.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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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 - 문자도 우리 문화 그림책 15
박연철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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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엄펑소니 박연철 작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듭 언급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팬이다. 작품이 거듭될수록 좋아하는 작가에게 거는 기대치보다 항상 더 많은 것을 내놓는 작가다. 늦게까지 잠자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협박용으로 시작한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부터 <어처구니 이야기>를 거쳐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로 이어진 작품들은 틀이나 한계를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엿보인다. 조금씩 더 과감해지고 자신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사실,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를 읽었을 때만 해도 아이가 즐겨본다는 것과 독특한 자기소개글 때문에 ‘박연철’이라는 이름만 입력해둔 정도였다. 2005년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의 타이틀로 출간된 <어처구니 이야기>도 작가 소개글을 먼저 읽었을 정도였으니 이 작가의 독특한 자기소개가 호감도를 상승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어처구니 이야기>는 궁궐 기와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어처구니들을 소재로 한 전통창작동화가 전통적 색채의 그림들과 어우러져 꽤 재미있게 읽혔다. 단순히 옛이야기를 현대적인 옷을 입혀 재해석한 게 아니라 전통적인 소재를 끌어들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을 보여주기 시작했던 작품이었다. <개미와 물새와 딱따깨비>라는 옛이야기 그림책도 작가의 작품 목록에 있지만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동물유래담이라서 비슷한 이야기들이 어림잡아 너댓 작품은 될 정도로 흔한 순수창작품이 아니기에 빼놓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최근작품인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는 작가가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맘껏 펼쳐 보인 느낌이 들었다. 다소 위험해 보이는 시도도 서슴지 않았다. 우선 판형부터 국내 그림책에서 보기 드문 세로로 긴 형태다. 이야기의 소재가 여덟 폭 병풍 형태로 된 ‘효제문자도’여서 그런지 병풍책 형식의 미니 병풍 모습이다. 효제충신예의염치(孝悌忠信禮義廉恥)..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나타내는 글자들을 그림으로 그려 집안에 걸어두거나 병풍을 만들어 세워두었던 민화문자도가 이 그림책의 주된 소재다. 단순히 글자의 의미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실었다면 참 재미없는 이야기책이 되었을 것이고, 민화를 비롯한 전통적인 색만을 고집했다면 그저 소장용 그림책으로 먼지만 쌓여갔을 것인데 이야기도 일부러 비틀고 그림 또한 민화문자도를 소재로 했다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로 동서양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뒤섞여 있다. 마그리트,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도’, 내기쟁이 할아버지라는 화자로 나선 알프레드 히치콕까지.. 나에게 현대미술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더 풍성하게 읽어낼 수 있는 장치들이 넘쳤을 텐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림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많을 텐데 나의 한계를 느끼며 과제를 던져준다.

부족한 지식을 작가의 습작노트에서 궁금한 것들을 채웠다. 우선 화자를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을 등장시킨 이유가 있었다. 히치콕 영화에서 유래한 용어 중에 ‘맥거핀 효과’ 라는 것이 있다. 작품의 줄거리에는 영향을 주지 않지만 관객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묶어둠으로써 공포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드는 영화 구성상의 속임수를 말한다. 작가는 이 용어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을 찾아 국어사전을 ㄱ부터 뒤졌다고 한다. 그렇게 찾아낸 말이 ‘엄펑소니’였다. 엄펑소니란 ‘의뭉스럽게 남을 속이거나 골리는 짓, 또는 그런 솜씨.’를 뜻한다. 이런 기법을 영화에 자주 사용한 히치콕을 화자로 등장시켜 책을 읽는 독자와 내기를 제안한 거다. 내기의 상품으로 제안한 것이 바로 커다란 ‘엄펑소니’였으니 독자들은 ‘엄펑소니’의 정체가 뭔지 모르면서 내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엄마 잉어와 아이 잉어가 살았는데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죽순이라는 음식을 한번 먹어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병든 엄마 잉어를 두고 자기 혼자 배부르게 죽순을 다 먹어버린 아이 잉어의 마음을 ‘효(孝)’라고 한다는 식으로 여덟 가지 덕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이야기에 속은 사람은 내기쟁이 히치콕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줘야 하고 속아 넘어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엄펑소니를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펑소니는 피노키오가 꿀꺽 해버렸으니 피노키오의 몸을 잘 살펴보라며 발뺌을 해버린다. 내기에 졌을 경우 내기쟁이 할아버지의 부탁이란 것이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는 것이니 거짓말쟁이 피노키오나 속임수 기법을 즐기던 영화감독 히치콕 보다 박연철 작가가 한수 위 ‘엄펑소니’가 아닐런지..^^

내기쟁이 할아버지의 속임수에 속아넘어가지 않았으니 ‘엄펑소니’라는 것을 받아야 할 텐데  바코드 비슷한 문양의 피노키오의 몸은 도대체가 뭘 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한쪽 눈을 감고 책을 기울여 봐.”라는 친절한 설명서를 따라 이리저리 책을 돌려보고 들어보고 세워보니 오호? 글자들이 보인다. ‘엄펑소니는 의뭉스럽게 남을 속이는 짓을 말해’...이런 제대로 속았다. 이런 그림을 뭐라고 부르는지 또 호기심이 동한다. 물어물어 찾아보니 ‘아나몰포시스’ 라고 부른다 한다. 일상적인 시각에서 볼 때는 그림이 뒤틀려 보이지만 특별한 각도에서 보거나 거울에 비춰보면 정상적으로 보이도록 그리는 그림의 기교를 말한다고 한다. 아이도 신기해서 책을 갖고 한참을 논다. 엄펑소니를 꿀꺽했으니 이제 더 이상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한다. 기특하기도 하지.^^ 우선 그림책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인데 자칫 교훈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이야기들을 반대로 비틀어 놓은 이야기와 시각적인 재미까지 거하게 차려놓은 이 그림책이 내가 원하는 그림책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다. 박연철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작을 하는 작가도 아니고 이 작품도 3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 기다림이 길어질 것 같다.

유쾌한 엄펑소니 작가 박연철이다. 대동여지도 속에 ‘박연철 만세’를 숨겨놓으며 위트를 잊지 않는 작가 박연철이 나는 정말 좋다.^^

이 그림책의 작가 소개글도 옮겨본다.
(다른 작품들의 작가소개글은 여기에 http://blog.aladin.co.kr/706324166/3147304)


박연철

어느 날, 콧구멍을 파다가 문득 깨달았어요.

이 세상에 참 많은 것이 엄펑소니란 것을.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나중에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문득 또 깨달았지요.

엄펑소니를 엄펑소니가 아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난 예술가가 되었고 이 책을 만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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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가부 - 가부와 메이 이야기 여섯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27
기무라 유이치 지음, 아베 히로시 그림,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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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치는 밤에』로 시작한 「가부와 메이 이야기」여섯 편의 이야기가 『안녕, 가부』로 끝나는 순간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아이와 나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이면 크게 힘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외면하는 아들의 눈은 이미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다. 가부와 메이를 향해 추격해 오는 늑대 무리를 향해 몸을 날리는 늑대 가부의 운명을, 가부를 애타게 부르는 염소 메이의 슬픔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앞으로 『안녕, 가부』는 너무 슬퍼서 읽지 않겠다고 하니 책과 한 몸이 된 이 아이를 격려해야 할지 책을 권한 엄마는 난감할 뿐이다.  

「가부와 메이 이야기」여섯 편의 그림책은 아이들 곁에 항상 놔두고 싶은 보물 같은 책이다. 1편 『폭풍우 치는 밤에』는 어느 폭풍우 치는 밤에 세찬 비바람을 피해 들어간 작고 깜깜한 오두막 안에서 처음 만난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는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2편 『나들이』는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암호를 정해서 만날 약속을 했던 두 친구가 드디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바위산으로 둘 만의 소풍을 떠난 이야기다. 3편 『살랑살랑 고개의 약속』에서는 폭풍우 치는 밤과 바위산에서의 소풍을 즐긴 두 친구가 처음으로 통성명을 하고 비밀 우정을 돈독히 한다. 하지만 메이의 친구 타푸의 등장으로 둘의 비밀 만남이 들킬 위기에 처한다. 4편 『염소 사냥』에서는 늑대 가부와 염소 메이의 위태롭고 아슬아슬한 우정에 위험이 닥치기 시작한다. 가부와 메이가 만나기로 한 주룩주룩 언덕에서 가부는 늑대인 바리와 짝귀 기로가 염소 사냥 중임을 알게 된다. 언덕을 올라오고 있는 염소 메이를 발견한 것이다. 가까스로 위험한 순간을 넘긴 가부와 메이의 우정이 이 둘을 어디까지 끌고 갈지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5편 『다북쑥 언덕의 위험』은 살랑살랑 고개에서 늑대의 염소 사냥을 메이에게 알려 위험에서 구한 사건으로 인해 가부와 메이의 우정이 늑대와 염소 무리에게 알려지게 된다. 각자의 무리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혀 메이는 다북쑥 언덕에서 가부는 덥석덥석 골짜기에서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감시를 받고 있다. 결국 무리들은 각자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이 둘의 우정을 이용하기로 하고 가부와 메이는 모두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만나 서로의 우정을 다시 확인하고 함께 살 수 있는 강 건너편을 향해 강으로 몸을 던진다.

마지막 이야기인 『안녕, 가부』는 제목부터가 뭔가 슬픈 결말을 드러내고 있다. 늑대와 염소 무리에 배신자로 찍혀서 쫓기게 된 가부와 메이에게 돌아갈 길은 없다. 다북쑥 언덕도 덥석덥석 골짜기도 이제 가부와 메이에게 따스한 집이 아니다. 가까스로 강 건너편에 도착한 가부와 메이는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산 너머를 향해 갈 뿐이다. 어떤 곳인지 들어본 적도 없는 산 너머를 향하는 길은 험난하고 높이 올라갈수록 눈보라까지 휘몰아친다. 게다가 늑대들은 배신자를 처치하기 위해 추격을 늦추지 않고 있다. 산에는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고 눈보라 속에서 도시락을 잃어버린 가부도 며칠째 굶어서 곧 굶어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 때, 메이는 둘 중 누군가는 살아남아야하니 자신을 잡아먹고 가부라도 살아서 산 너머로 가기를 바란다. 내 목숨을 내줄 수도 있을 만큼 좋은 친구를 만나 정말 행복했었다고...내 몫까지 살아달라고...처음 만난 오두막에서 염소인 줄 알았다면 덥석 잡아먹었을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잡아먹으라고...처음 만난 상황을 재연하며 자신을 잡아먹기를 기다리고 있는 메이를 남겨두고 눈구덩이를 홀로 빠져나온 가부는 메이를 삼킬 생각조차 없다. 힘들어하는 메이를 위해 풀을 찾아 온 산을 헤매고 다닌다. 자신들을 여전히 추격해 오는 늑대무리를 발견한 가부는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던진다. 온 산을 집어삼킨 눈사태 소리에 정신을 차린 메이는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아침 해가 비추는 푸른 숲을 발견한다. 그리고 애타게 가부를 부르는데...

아아...목숨은 끝이 나도 우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니...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그 흔한 진실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슬프고 감동적이어도 되는 건지...도저히 우정이란 것을 논할 수 없을 것 같은 극단의 캐릭터 늑대와 염소를 등장시켜서 우정의 고귀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음을 열고 서로 친구로 받아들인 가부와 메이에게는 먹이사슬의 법칙도 세상의 편견도 협박과 회유도 이미 의미가 없는 단어들이다. 이 세상에 디디고 밟고 쓰러뜨려야 할 적만 우글거린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닐까. 긴장 속에서만 살아야하는 삶은 피폐해질 테고 나는 갑옷으로 무장을 해야 하고 내 집의 담장은 외부와의 차단을 위해 높아만 갈 것이다. ‘나’와 ‘나 외의 것’으로 구분지어 놓은 벽을 만나는 일이 흔해지고 있다. 아이가 세상 속으로 나가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친구와의 사귐이다. 굳이 헬리콥터맘까지는 아니더라도 친구에 대해서 이것저것 따지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기준에 어른들의 편견이 지나치게 개입되어서 씁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아이를 믿고 내 아이의 판단을 존중하며 지켜보는 것 정도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가부와 메이처럼 내 목숨을 내놔도 아깝지 않을 좋은 친구를 만나 진한 우정을 맛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정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고귀하게 대접 받아야 할 가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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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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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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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0 15: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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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1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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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5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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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1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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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바와 사자 1 - 용기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28
티에리 드되 글.그림, 염미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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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강렬하고 인상적인 그림에 먼저 놀라고,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세련되고 시적인 글에 놀란다. 이 강렬한 그림의 실체가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캔버스에 검정색 아크릴 물감을 묻힌 붓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림에 문외한이라 이렇게 그리면 이 그림처럼 강렬한 느낌의 멋진 그림이 나온단 말인가. 처음 이 그림책을 보고는 말을 잃고 그림 감상만 몇 번을 했는지 모를 정도다. 흑백으로만 그려진 이 그림을 처음의 충격에서 벗어나 한참을 들여다보니 도통 그 마음을 읽을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던 ‘야쿠바’와 사자 ‘키부에’의 깊은 눈동자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금까지의 흑백 그림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충격을 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두고 강렬하다, 독특하다, 충격적이다 라는 단어를 남발하게 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내레이션이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멋진 화면을 잘 담아놓고 수다스럽게 설명하려 덤벼드는 내레이션을 들으면 모 통신사 광고처럼 ‘잠시 목소리는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멋진 그림을 주절주절 늘어지는 글이 따라간다면 함께 무덤 파는 격일 텐데 카리스마 팍팍 풍기는 멋진 그림에 글 또한 제격이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면서도 묵직하다. 그림책을 읽어준다면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나지막하게 읽어야 제 맛이 나는 하이톤을 거부하는 글이다. 극도의 긴장상황에서도 설레발  치는 법이 없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글이다.  

 

밤낮으로 잘 살필 것. 한눈팔면 끝이다.

숨 막히는 두려움이 다가오면

그림자는 무섭게 일그러질 것이다.

풀은 따갑게 할퀴고, 바람은 울부짖을 것이다.

아프리카 어느 마을의 축제날, 전사가 될 소년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날이다. 야쿠바는 홀로 사자와 맞서야만 한다. 마을 떠나 험난한 길을 걷고 또 걸어서 긴 시간을 숨어 기다려 드디어 사자와 대면한 순간, 야쿠바는 사자와 눈이 마주쳤다. 사자의 눈동자가 말을 한다. 밤새 사나운 적수와 싸우느라 힘이 바닥났으니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비참하게 죽인다면 뛰어난 남자로 인정받겠지만 살려준다면 스스로 고귀한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는 거라고...그렇게 밤새 사자와 대면하고 있던 야쿠바는 아침이 되자 지쳐 쓰러진 사자를 남겨두고 빈손으로 마을로 향한다. 야쿠바의 친구들은 모두 전사가 되었지만 야쿠바는 마을 외딴 곳으로 보내져 가축을 지키는 일이 맡겨진다. 비겁한 승부로 남들에게 인정받는 전사가 될 것이냐, 마을에서 따돌림을 받더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것이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택한 야쿠바의 눈빛은 진정한 용기를 가진 어른의 눈빛이다. 사자 키부에는 야쿠바가 지키는 가축들을 습격하지 않는 것으로 신의를 지킨다. 

Ⅰ,Ⅱ편으로 구성된 야쿠바와 사자 이야기는 처음 본 순간부터 그 독특함을 직감했었다. 아이와 그림책을 읽고나면 아이에게 질문을 잘 안하는 편인데 엄마에게는 매력적인 이 그림책이 아이에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서 아이의 의견을 꼼꼼히 물었다. “야쿠바가 지키는 가축들은 왜 사자들의 습격을 받지 않았을까?” “쓰러져 있는 사자에게 창을 꽂아야 했을까?” 제법 내용을 이해한 듯한 대답이 나온다. 후속 이야기가 있는데 읽어볼까 물으니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을 보니 아이 마음에도 들었던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Ⅰ편은 1994년에 Ⅱ편은 2007년에 출간된 그림책인데 한글 번역본으로 함께 만나볼 수 있으니 행운이다. Ⅱ편에서는 야쿠바와 사자 키부에의 재회가 그려진다고 한다. 궁금하다. 어서 빨리 손에 넣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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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6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6 17: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이수연 옮김 / 키다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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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리 버튼의 신간 그림책 소식에 깜짝 놀랐다. 1937년에 출간된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시작으로 주로 1940년대에 그녀의 작품들이 집중돼있는데다 생존해 있는 작가가 아니니 신간 소식이 의외일밖에...『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의 작품연도를 살펴보니 1952년 작품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탈것 그림책들을 ‘탈것 삼총사’라 이름 지어줬는데 사실은 사총사였던 모양이다. 증기기관차 치치, 증기삽차 메리 앤, 크롤러 트랙터 케이티, 그리고 케이블카 메이벨..^^ 탈것 삼총사에 관한 것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아이는 이 책의 구입을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우리 아이가 최초로 좋아한 그림책 작가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작은집 이야기』,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케이티와 폭설』까지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들은 최소 백번은 반복해서 읽었을 것이다.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후로도 이 책들은 툭하면 꺼내보는 ‘심심풀이 땅콩’책이다. 사내아이라서 탈것이라면 작품성은 전혀 따지지 않고 달려들기 때문에 거쳐 간 탈것 그림책들이 상당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책들이 바로 버지니아 리 버튼의 탈것 그림책들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이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책읽기를 싫어하고 만화책에 빠져있는 아들의 흥미를 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만화적인 극적 이야기 전개와 생동감 있는 그림을 책으로 옮겨온 시도에 첫 독자인 아들도 열광했다고 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열광한 그림책이니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의 한글번역본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살짝 아쉽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샌프란시스코는 돈 프리먼의 그림책 『날아라 함께!』를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도시다. 금문교와 롬바드 꽃길과 유니언 스퀘어 공원, 안개와 케이블 전차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는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 전차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가 형성되고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며 점점 넓어지는 모습도 지켜봤고, 지진과 화재로 도시가 불타버렸던 모습도 기억하고, 최초의 자동차도 기억하는 케이블카 메이벨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예전과 다름없이 달린다. 도시가 커지고 바빠지면서 메이벨과 친구들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메이벨은 무엇보다 자기 일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이 도시를 사랑했다. 메이벨과 친구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차고에 들어와 매일 밤 ‘그때가 기억나니’ 놀이를 하면서 도시의 옛 모습들을 추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없애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버스 빅 빌에 의하면 시청 사람들은 너무 오래 돼서 느린데다 안전하지 않은 케이블카 대신에 빠르고 새롭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교통수단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케이블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케이블카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모임>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에서 케이블카를 없애지 말아 달라는 편지가 시청으로 날아들었고, 시민들은 빠르고 효율적인 발전을 원하는 쪽과 도시의 상징인 케이블카를 지켜내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결국 <시민의 모임>은 투표를 이끌어냈고 투표의 결과는 케이블카의 승리였다.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낡고 오래된 케이블카를 지켜내기 위해 힘을 모아 얻은 소중한 승리였다.

‘그때가 기억나니?’는 버지니아 리 버튼 그림책의 주된 테마다. 데이지 꽃과 사과나무에 둘러싸인 시골의 작은 집이 점차 그 범위를 넓혀오는 도시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작은 집 이야기』, 디젤 삽차나 전기 삽차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고철덩어리로 전락해 가는 증기 삽차 메리 앤의 이야기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가 대표적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과정에서 함께 잃어버리게 된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작품 곳곳에 담겨있다. 도시를 피해 한적한 시골로 옮겨간 ‘작은 집’이나 새 시청의 난방기구로 용도를 변경한 ‘증기 삽차 매리 앤’에 비하면 ‘케이블카 메이벨’은 옛 모습 그대로를 지켜냈다. 과거를 밀어내고 현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옛 것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특별할 수 있음을 증명하듯 오늘도 케이블카 메이벨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글자의 배치 또한 그림의 일부처럼 표현하고, 테두리 그림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이 버지니아 리 버튼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테두리 그림으로 케이블카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케이블카의 세부 구조와 작동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글과 그림의 경계 또한 없다. 글자는 그림과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배치되어 있다. 색이 화려하거나 그림이 세련되지 않다 해도 6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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