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글.그림, 이수연 옮김 / 키다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버지니아 리 버튼의 신간 그림책 소식에 깜짝 놀랐다. 1937년에 출간된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를 시작으로 주로 1940년대에 그녀의 작품들이 집중돼있는데다 생존해 있는 작가가 아니니 신간 소식이 의외일밖에...『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의 작품연도를 살펴보니 1952년 작품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탈것 그림책들을 ‘탈것 삼총사’라 이름 지어줬는데 사실은 사총사였던 모양이다. 증기기관차 치치, 증기삽차 메리 앤, 크롤러 트랙터 케이티, 그리고 케이블카 메이벨..^^ 탈것 삼총사에 관한 것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아이는 이 책의 구입을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버지니아 리 버튼은 우리 아이가 최초로 좋아한 그림책 작가다.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 『작은집 이야기』,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 『케이티와 폭설』까지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들은 최소 백번은 반복해서 읽었을 것이다.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후로도 이 책들은 툭하면 꺼내보는 ‘심심풀이 땅콩’책이다. 사내아이라서 탈것이라면 작품성은 전혀 따지지 않고 달려들기 때문에 거쳐 간 탈것 그림책들이 상당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책들이 바로 버지니아 리 버튼의 탈것 그림책들이다. 버지니아 리 버튼이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책읽기를 싫어하고 만화책에 빠져있는 아들의 흥미를 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만화적인 극적 이야기 전개와 생동감 있는 그림을 책으로 옮겨온 시도에 첫 독자인 아들도 열광했다고 한다. 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열광한 그림책이니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상황이 이럴진대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의 한글번역본이 이제야 나왔다는 게 살짝 아쉽다.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샌프란시스코는 돈 프리먼의 그림책 『날아라 함께!』를 통해서 내가 살고 있는 동네처럼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도시다. 금문교와 롬바드 꽃길과 유니언 스퀘어 공원, 안개와 케이블 전차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는 바로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케이블 전차에 대한 이야기다. 도시가 형성되고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며 점점 넓어지는 모습도 지켜봤고, 지진과 화재로 도시가 불타버렸던 모습도 기억하고, 최초의 자동차도 기억하는 케이블카 메이벨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예전과 다름없이 달린다. 도시가 커지고 바빠지면서 메이벨과 친구들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메이벨은 무엇보다 자기 일을 좋아했고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누구보다 이 도시를 사랑했다. 메이벨과 친구들은 하루 일을 마치고 차고에 들어와 매일 밤 ‘그때가 기억나니’ 놀이를 하면서 도시의 옛 모습들을 추억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없애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버스 빅 빌에 의하면 시청 사람들은 너무 오래 돼서 느린데다 안전하지 않은 케이블카 대신에 빠르고 새롭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는 교통수단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 소식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 나갔고 케이블카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케이블카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모임>이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전 세계에서 케이블카를 없애지 말아 달라는 편지가 시청으로 날아들었고, 시민들은 빠르고 효율적인 발전을 원하는 쪽과 도시의 상징인 케이블카를 지켜내자는 쪽으로 나뉘었다. 결국 <시민의 모임>은 투표를 이끌어냈고 투표의 결과는 케이블카의 승리였다. 개발과 성장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던 사람들이 낡고 오래된 케이블카를 지켜내기 위해 힘을 모아 얻은 소중한 승리였다.
‘그때가 기억나니?’는 버지니아 리 버튼 그림책의 주된 테마다. 데이지 꽃과 사과나무에 둘러싸인 시골의 작은 집이 점차 그 범위를 넓혀오는 도시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작은 집 이야기』, 디젤 삽차나 전기 삽차에게 일자리를 내주고 고철덩어리로 전락해 가는 증기 삽차 메리 앤의 이야기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가 대표적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과정에서 함께 잃어버리게 된 소중한 가치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작품 곳곳에 담겨있다. 도시를 피해 한적한 시골로 옮겨간 ‘작은 집’이나 새 시청의 난방기구로 용도를 변경한 ‘증기 삽차 매리 앤’에 비하면 ‘케이블카 메이벨’은 옛 모습 그대로를 지켜냈다. 과거를 밀어내고 현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옛 것과 조화를 이룬 모습이 특별할 수 있음을 증명하듯 오늘도 케이블카 메이벨은 샌프란시스코의 명물로 힘차게 달리고 있다.
글자의 배치 또한 그림의 일부처럼 표현하고, 테두리 그림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이 버지니아 리 버튼 그림책에서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또한 테두리 그림으로 케이블카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케이블카의 세부 구조와 작동법을 설명하기도 한다. 글과 그림의 경계 또한 없다. 글자는 그림과 연결되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배치되어 있다. 색이 화려하거나 그림이 세련되지 않다 해도 6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