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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짓궂은 신의 분탕질인가, 이런 조합의 가족이라니...
운명이라 하고 팔자라 부르기도 하는 인간사의 보이지 않는 영역을 관장하는 신은 한번 얕보인 사람에게는 무자비하게 냉정하고 잔인한 힘을 휘두른다. 시련 앞에 나약한 모습으로 주저 앉아있는 사람은 몇 배 더 강력한 시련으로 시험한다. 절벽에서 던져진 새끼들 중 절벽을 기어 올라오는 녀석에게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창을 열어둘 심산으로 가혹하게 군다.
열일곱 살 여울이네 집에 오래도록 짙게 드리운 신의 분탕질이 갈수록 위세가 등등하다. 여든셋의 나이에 남들은 며느리의 따뜻한 밥상을 받을 때이지만 육아와 살림살이에서 놓여날 여유가 없는 할매. 양로원의 예치금을 마련해서 자식과 손주들 뒷바라지에서 해방되기를 꿈꾸며 살아간다. 순경이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멀쩡한 허우대의 남편과 결혼을 했지만 이미 두 명의 여자와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아이까지 낳고 살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린다. 아마도 이 집에 운명의 신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 순간을 되짚어 가면 이 시점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여울의 아빠는 채권추심대행업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지만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위인이다. 그 결과가 엄마에 대한 기억조차 없는 엄마가 제각각인 세 명의 자식이다. 특히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의 엄마에게서 혼외자식으로 태어난 여울이는 이 집안에서 더욱 겉도는 존재다. 정식 결혼으로 태어난 언니와 오빠도 상황은 좋지 않다. 전문대생인 오빠는 다발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스물한 살의 청년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중학교 때 발병한 증세를 바로 치료했더라면 완치도 가능했을 텐데 아빠와 할매는 오빠의 고통을 외면했다. 아마도 병원비가 두려워서 치료의 엄두를 못 내고 무관심으로 포장했을 법하다. 고3 수험생인 언니는 채권추심업체는 늘어나고 일은 줄어드는 바람에 사무실을 정리해버리고 가족들을 동원해서 일을 꾸려나가는 아빠의 일을 돕느라 공부도 제대로 할 상황이 아니다. 수험생이 매일 컴퓨터도 채권자 리스트 작업만 하고 있고 대학은 꿈도 못 꿀 처지다. 명문대를 졸업해 투자자문가로 꽤 성공한 위치에 올랐다가 주식투자로 재산을 탕진하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울이네 얹혀사는 삼촌까지 보태진 여울이네 가족의 우울한 조합은 여기까지다.
이 가족의 ‘불량’함은 결핍과 궁핍에서 비롯된다.
핏줄이라는 연으로 묶이기에 독특한 가족 구성이다. 온갖 궁상과 비루한 삶의 집합소다. 겉보기엔 멀쩡한 40평대의 아파트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형적인 월세를 내며 살고 있는 집은 아슬아슬하게 버텨내고 있는 이 가족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빠는 치료비 걱정에 방치해둔 병이 이제 평생 안고 살아가야할 고질병이 되어버렸고, 언니는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만 갈수록 쪼그라드는 살림에 대학은 꿈도 못 꿀 수험생이다. 위장이혼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집이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삼촌은 결국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술비로 어머니의 노후자금까지 빼먹고 얹혀살고 있다. 자식 둘과 손주 셋의 뒤치다꺼리에서 해방될 마지막 보루였던 양로원 예치금마저 아들 수술비로 털어 넣고 신세 한탄하는 할매와 직원들 밀린 임금과 가족들 생활비를 위해 불법추심을 하다 구속 수감된 아빠. 이런 가족에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원이 된 여울이는 아빠의 주머니를 슬쩍 뒤지고 학교 매점 식권을 복사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근근이 모은 돈을 코스튬플레이에 쏟아 넣으며 살아간다.
‘가난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지 않은 것들을 놓치게 한다.’는 여울이의 말이 깊은 공감을 불러온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조금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가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에게 이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돈이 그어놓은 한계를 뛰어넘을 특출한 재능이 있다거나 세상사의 불편함 쯤은 초월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고서는 단지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에 울화가 치밀어 오를 뿐이다. 가난 때문에 ‘오히려 재능은 우리 집에서 불필요한 개인기일 수 있다’며 꿈조차 꾸지 못하는 여울이와 밀린 월세로 대부분을 대체해버려 얼마 남지 않은 보증금마저 차압당해 길거리로 나가게 된 가족에게 가난은 죄가 아니고 조금 불편할 뿐이라는 말은 사치이고 분노를 촉발하게 하는 언어유희일 뿐이다. 조금씩 잠식해온 가난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다가 결국 가족 해체 상황까지 맞이한 이 가족은 ‘불량’한 가족이 아니라 ‘불쌍’한 가족이 아닐까.
이 ‘불쌍’한 가족을 바닥까지 몰고 간 표면적 원인은 궁핍한 생활에서 찾아야겠지만 엄마의 부재, 아버지의 부재가 이 가족의 근저에 깔려 있다. 모성의 부재는 버려졌다는 상처와 직결되고 절름발이인 마음으로 쩔뚝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아픔을 예고하는 말이다. 이 집안의 금기어 ‘엄마’. 누구도 엄마의 존재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가슴을 짓눌러대는 ‘엄마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묵직한 바위덩어리 하나씩 품고 살아가고 있다. 이십오 년 전부터 부재중인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해봤던 아빠와 삼촌은 아버지의 말소된 주민등록증과 묘연한 행적으로 객사하지 않았을까 추측하며 포기를 했지만 아빠와 삼촌 또한 부성에 목말라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스스로도 ‘부재중인 아버지’인 삼촌과 자기만의 투박한 방식으로 아이 셋의 아버지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구치소에 수감됨으로써 ‘부재중인 아버지’가 된 아빠는 어느덧 자신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게 됐을 것이다. 세 명의 아이들을 버린 세 명의 엄마들 중 한명이라도 엄마의 자리를 지켜줬더라면, 사고만 치고 허황된 꿈만 쫓는 남자였어도 아버지 자리만은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이 가족은 어떠한 고난에도 의식주의 근간을 흔드는 가난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고 견디고 이겨냈을 거라는 측은함이 든다.
지나치게 묵시록적이지도 터무니없이 발랄하지도 않은 학교와 아이들.
이슈화되고 있는 요즘 아이들 문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들을 보면 선생님은 헌신적인 교사와 악덕비리 교사로 캐릭터가 극명하게 나뉘고 아이들은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교묘하고 스스럼없이 영악하다. 과연 학교의 현주소가 이런 상태라면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무섭기까지 하다. 또 어떤 이야기들에서는 현실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상향만을 그리며 작가 혼자 원맨쇼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량 가족 레시피>에서 그려지는 아이들과 학교의 모습은 지나치게 묵시록적이지도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발랄하지도 않다.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세바스찬도 짝사랑의 가슴 졸임이 있고 모두가 선망하는 외고에 다니는 모범생 류은이는 의사인 엄마의 기대가 버거워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기를 꿈꾸며 코스튬플레이로 가끔씩 일탈을 한다. 춤을 좋아해서 나이트클럽에 자주 다니는 참새나 외동딸에 대한 부모님의 과한 기대로 공부를 싫어하는 세영이까지 여울이와 어울리는 친구들의 모습은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그럴듯하게 포장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이다. 열일곱 살 아이들에게 자서전을 써오라는 도덕 꼴통, 희생양 한명 잡아서 서둘러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하려 드는 생활지도 선생님인 광견, 아이들에게 만만하게 보이다 마침내 폭발한 진로 선생님 개동구. 억울함을 호소하는 학생의 진실을 계속 거짓이라 우기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분명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일상적인 일이다. 젠체하는 우월한 집단도 없고 편애하고 동조하는 학교 행정도 없고 겉돌고 따돌림 당하며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는 일탈을 서슴없이 감행하는 겁 없고 무서운 아이들도 없다. 서로 앞 다투어 문제를 제기하고 계도하려 드는 청소년 문학 속에서 <불량 가족 레시피>가 빛나는 이유다.
불량 가족, 헤쳐 모여~~~
몇 년째 아빠의 일을 거들고 있지만 하고 싶다는 공부 얘기를 꺼냈다가 아빠에게 거절당한 뒤 집을 나가버린 언니 유나는 말끝마다 욕을 달고 살지만 할매를 잘 챙기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형과 한바탕 싸운 뒤 집을 나간 삼촌은 엄마에게 버림받은 여울이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힘들게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드릴 홍삼엑기스를 여울이 편에 들려 보낸다. 가출한 뒤 가족들이 없는 틈을 타 물건을 챙기러 들어온 오빠가 끝내 아빠와 할매의 안부를 묻지 않았던 마음에도 가족에 대한 연민이 보인다. 구치소에 수감된 아빠는 여울에게 부끄러운 용서를 빌고 연신 할매 걱정뿐이다. 독설만 퍼붓던 할매는 동생네서 살 수 있는 생활을 포기하고 혼자 남은 여울이의 뒷바라지를 하려한다. 여울이가 그토록 바라던 희망적인 이야기, 여울이와 같은 아이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위로는 할머니의 투박한 말속에 튀어나온다. ‘니라고 만날 눈물 뺄 일만 있지는 않을 끼다. 사람마다 다 지 몫에 지고 갈 짐 보따리는 하나씩 지고 가는 기 세상살이다.’ 라고... 다들 자신의 앞에 놓인 일들이 감당이 안 되어 서로를 괴롭히고 방관하며 살았던 여울이네 가족들이 각자 자신들의 상처들을 다독거려 진정한 가족으로 재탄생되리라는 희망이 보인다.
그 중심에 여울이가 서 있다. 사랑이 자신에게 가장 취약한 영양소라고 하는 여울이는 코스튬플레이라는 마법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많은 시선과 사랑을 받는 주목받는 生이고 싶었을 거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 스스로 마법을 풀어버리고 원래의 못생긴 모습으로 돌아온 피오나는 가장 용감하고 멋진 공주다. 여울이 또한 용감하게 자신의 운명과 세상과 맞선 피오나 공주처럼 세상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가길 바란다. 학창시절을 죽을힘을 다해 버텼던 나에게 보내는 응원처럼 나는 지금 여울이를 응원한다. 여울아 힘내라.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