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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나무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35
패트리샤 폴라코 글 그림,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아이가 목도 가누지 못할 때부터 줄기차게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처럼 책을 갖고 놀도록 던져주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자 함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진정 책과 평생 벗할 수 있는 책을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지식 습득의 수단으로 책을 읽는다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흥미를 계속 이어가기가 어렵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책을 대하는 아이의 자세가 수동적인지 자발적인지 미세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단계는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다. 즐기는 단계로의 나아감은 순전히 아이의 몫이다. 조바심을 내서도 하루 독서량을 강요해서도 독서기록장을 들이밀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아이가 영영 찾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책’이나 ‘도서관’의 키워드로 무수한 책들을 검색해서 아이에게 책의 가치와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내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클로드 부종의 『아름다운 책』처럼 책의 가치를 웃음을 매개로 풀어보기도 하고, 『책 먹는 여우』나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처럼 책을 읽는 행위를 책을 직접 먹어치우는 풍자로 그린 책들을 권해주기도 하고, 도서관에 간 생쥐 사자 고양이 개구리 심지어 유령과 도깨비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은근하게 유혹을 하곤 했다.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숱한 책들 중 마음에 드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과 패트리샤 폴라코의 『꿀벌 나무』다. 『도서관』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책과 함께 하는 삶은 책벌레들의 완벽한 자화상이자 미래다. 『꿀벌 나무』를 넘어서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역동적으로 보여준 책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꿀벌 나무』의 패트리샤 폴라코는 훌륭한 어린이책 작가가 될 수 있는 토양에서 자라는 행운을 누렸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정착한 패트리샤 폴라코의 집안은 많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 유태인, 가족, 러시아와 유태인의 전통 등은 그녀의 가족들에게서 자연스레 소재를 얻은 것들이다. 세대 간의 공감과 가족간의 사랑이 대부분인 그녀의 이야기는 따스하고 감동적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에서는 본인의 난독증까지도 작품 속에 녹여내 진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책 작가인 패트리샤 폴라코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본격적으로 『꿀벌 나무』로 들어가 도대체 책읽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얘기해 줄 것인지 살펴보자.
할아버지는 책 읽기는 싫고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다는 손녀 초롱이에게 밖으로 나가서 벌들이 집을 짓는 나무인 꿀벌 나무를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할아버지는 우선 꽃가루를 모으고 있는 벌 몇 마리를 유리병 안에 가두고 한 마리씩 놓아주며 벌들이 꿀벌 나무를 찾아가는 뒤를 쫓기 시작한다. 날아가는 벌을 쫓아가려니 당연히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어갈 수밖에...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릴 때 해본 놀이라며 너도나도 할아버지와 초롱이의 뒤를 따라 꿀벌 나무를 찾는 행렬에 합류한다. 복조리 아줌마와 유모차에 탄 샛별이, 천둥소리 아저씨, 멋진수염 씨와 매력적인 자매 연두 양 완두 양, 탐험에서 돌아온 금반짝 양, 목동인 산노래군과 염소들, 떠돌이 악사들이 줄지어 벌의 뒤를 쫓는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놓아준 벌은 드디어 이 모험단을 꿀벌 나무로 안내하고 할아버지는 불을 피워 연기를 내서 벌들을 잠잠하게 한뒤 벌집을 뜯어내 꿀을 얻는다. 달콤한 모험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네 집에 모여 부드러운 빵과 차와 벌꿀을 나눠 먹으며 시끌벅적한 파티를 즐긴다.
한낮의 꿀벌을 쫓는 이 모험이 어떻게 책의 즐거움이라는 주제에 안착하는지 신나는 모험 뒤에 할아버지가 초롱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꿀을 한 숟갈 떠서 초롱이의 책표지에 얹어주고 맛을 보라는 할아버지는 바로 책 속에도 그렇게 달콤한 게 있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고 꿀벌 나무를 찾기 위해서 벌을 쫓아 가듯 책장을 넘기면서 책 속에 담겨있는 모험, 지식, 지혜... 그런 것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책 읽기 싫고 놀고만 싶다는 아이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이런 조언을 한다면 짜증만 유발했을 것이다. 달콤한 꿀벌 나무를 찾아 한바탕 신나는 모험을 하고 나서 책읽기는 바로 그렇게 신나고 달콤한 것이라고 들려주시는 할아버지는 조급해 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지혜로운 어른이다. 어쩌면 눈이 빠져라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좋은 책을 찾아 아이 앞에 놓아두는 것도, 책과 도서관이라는 키워드로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은근한 유혹을 펼쳤던 것도 꿀벌 나무를 찾아 떠난 모험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