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
페터르 페르헬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칼 크뇌트 그림 / 해와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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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그림의 『나이팅게일(웅진주니어)』이 안데르센 원작의 사실적 무대를 보여줬다면 지금 소개할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서양인들 눈에 비친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로운 동양을 만날 수 있다. 김동성의 그림이 편안하고 익숙한 아름다움이라면 칼 크뇌트 라는 벨기에 작가는 꿈꾸듯 환상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은밀하고 마법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는데 화면을 가득 채워 채색한 그림은 대체로 탁하고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서 더욱 은밀하고 폐쇄적이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벨기에 가장 아름다운 책표지로 선정됐다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표지 그림에 이끌려 이 그림책을 보게 됐다. 그림책 속 중국 황제의 정원을 전면에 담은 그림은 색채나 형태가 주는 분위기가 꿈을 꾸듯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 모두 벨기에 사람들인데 중국에 대한 이해와 노력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중국의 변발이나 전족의 풍습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했고, 천하를 호령하는 중국황제의 위엄과 권력에 대한 이해도 일그러지지 않고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적정 수준의 과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제가 손가락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눈살 찌푸리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놀라 무릎 꿇게 할 수 있고 한 번의 미소로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고 한 번의 하품으로 황궁의 모든 커튼이 드리워진다는 표현들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낸다. 황제의 슬픔은 병이 되고 온 나라를 깊은 슬픔 속으로 몰아넣고, 황제의 웃음은 창문을 타고 넘어 온 나라로 퍼져 슬픔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서 바닷속에 빠트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나이팅게일을 잃은 슬픔에 병을 얻는다. 황제의 생명과 활기를 찾아주고 슬픔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아이는 ‘머리를 다리 사이에 집어넣는’ 유연하고 작고 민첩하고 작은 소녀다. ‘중국 기예단’의 상상초월 묘기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신비한 분위기의 그림에 끌려 시작했는데 글이 너무나 시적이고 아름답다. 나이팅게일을 잃어버린 황제의 슬픔을 나타낸 부분을 옮겨본다.


사람들은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게 되면, 그 뒤에도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아픔을 느끼곤 해요. 여러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아픔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답니다. 아픔은 슬픔과도 같아요. 슬픔은 자라나 우리를 끝없이 지치고 또 지치게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너무나 커져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 아픔이 너무나 커지면, 그것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돼요.


황제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는 황제가 마음속 깊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눈물은 황제의 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머리에서 흐르고 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머리는 눈물로 꽉 차게 될 거예요. 그리고......그다음에는......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져 버리겠지요. 


안데르센 원작의 기본적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진 않지만 이야기는 훨씬 풍성하다. 웅진주니어의 『나이팅게일』이 6,7세 정도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라면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글이 많고 시적 표현들도 넘쳐서 초등 2,3학년 이상이 읽으면 괜찮을 그림책이다. 비슷한 주제나 원작이 동일한 다른 그림책들을 정리할 때 내가 즐겨 사용하는 '그림책 vs 그림책'으로 두 권을 묶어 버리기엔 두 권 모두 할 말이 넘치는 그림책들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타로 리뷰를 올리게 됐다. 나는 「나이팅게일」을 이 두 권의 그림책으로 읽는다. 더 환상적으로 멋진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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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안데르센 걸작그림책 3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김서정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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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예술가들의 눈에 비친 동양은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동양인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것들은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노력의 가상함을 넘어서 다른 각도의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동화「나이팅게일」은 중국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 19세기 안데르센 원작의 「나이팅게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그림책들로 재탄생하고 있는데 우리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책으로는 웅진주니어의 『나이팅게일』이 가장 탄탄하다는 느낌이 든다. 동화작가이기도 하면서 아동문학 평론가로 동화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서정의 글과 한국적인 정서를 잘 살리는 그림으로 팬층을 넓혀가고 있는 김동성의 그림이 만나서 만든 그림책이라 역시 글이나 그림 모두 버릴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이 깔끔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수세기 동안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역사의 많은 부분이 우리와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한 나라이기도 한만큼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김동성의 그림은 보기에 거부감 없이 편안하다. 그림책은 그림 작가에 의해서 분위기가 좌우되는데 국내 작가의 글에 일본 작가가 그림을 그린 한림출판사의 『나이팅게일』은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기모노 입은 여인네들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화적 열등감이라 해야 할지 뭐라 부를지 모를 일본인들의 이런 뻔뻔한 들이댐은 늘 신경에 거슬린다. 완벽하게 멋진 김동성의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특별한 관심보다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동양의 먼 나라를 택한 것일 수도 있는 안데르센의 의도가 김동성의 그림으로 인해 너무나 사실적인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이어 빠른 시일 내에 소개할 서양의 그림책(『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과 비교해 보면서 동서양의 시선을 따라다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이팅게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줄거리를 소개하고 넘어가자. 먼 옛날 중국 황제의 궁궐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행자들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 황제에게도 몇 권의 책이 전해졌는데 전 세계 여행객들이 칭송하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의 노래를 황제 자신은 들어본 적이 없음에 노여워하며 시종장에게 당장 그 새를 데려와 노래를 시키라고 명령한다. 황제의 엄명에 궁궐을 뒤져 나이팅게일을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지만 궁궐 안에는 나이팅게일을 아는 신하가 없었다. 그때 황제의 숲이 끝나는 지점 바닷가에 살다가 궁궐에 들어온 부엌데기 여자 아이가 바닷가에 살고 있는 나이팅게일을 알고 있다고 나선다. 부엌데기 여자 아이를 앞세워 궁궐의 신하들이 나이팅게일을 찾으러 바닷가로 떠나는 긴 행렬이 이어진다. 드디어 만난 나이팅게일과 함께 궁궐로 돌아와 황제 앞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래가 퍼지는데 아름다운 노래에 황제는 눈물을 흘리며 감탄한다.


어느 날 황제는 온갖 보석이 박힌 조각품 새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그 노랫소리가 나이팅게일과 닮았다. 조각품 새의 노래에 빠져있는 사이 나이팅게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제멋대로 노래하던 나이팅게일에 비하면 원하면 언제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조각품 새로 황제를 위로한다. 궁궐에 사는 사람들에게야 나이팅게일의 노래나 조각품 새의 노래는 비슷하게 들리겠지만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늘 들어왔던 가난한 어부들은 조각품 새의 노래에는 뭔가 빠졌다고 생각한다. 뭔가 빠져있는 인위적인 조각품 새는 그마저도 고장이 나서 일 년에 한번 밖에 노래를 부를 수가 없게 되고 황제는 큰 병에 걸리고 만다. 권력을 따르는 무리들은 다음 황제가 될 사람 주위로 몰려가고 병에 걸린 권력자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나이팅게일은 황제의 방 창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그 소리에 황제는 기운을 차린다.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비는 황제에게 오래 전 첫 만남에서 노래를 듣고 황제가 흘린 눈물만큼 큰 선물을 없노라고 나이팅게일은 대답한다.


사실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안데르센이 짝사랑하던 여가수 예니 린드에게서 영감을 얻어서 쓴 동화이다. 예니 린드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오페라 가수다. 꾸밈없고 소박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던 예니 린드가 활동하던 시대에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이태리풍의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동화 속 나이팅게일은 예니 린드, 조각품 새는 당시 유행하던 이태리풍의 노래를 의미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에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풍자가 곳곳에 배어있다. 궁궐에서 화려하게 살면서 궁 밖의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나이팅게일을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암소의 울음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장면, 조각품 새의 노래에 뭔가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난한 어부와 조각품 새의 노래를 칭송하는 궁궐안의 사람들을 대비시킨 것에서도 안데르센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덴마크에서 말년의 안데르센에게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 안데르센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화작가 말고도 시와 소설 희곡 등에 다방면으로 활동한 그가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에 한정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화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이들은 단지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오늘도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읽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건만 150년도 넘은 동화가 바로 오늘의 우리 이야기인양 생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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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0
폴 젤린스키 그림, 앤 이삭스 지음,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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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동화 속 거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은둔하거나 무시무시하고 난폭한 이미지에 갇혀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다. 몸집은 다른 거인들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하지만(세상에서 가장 크니까..) 안젤리카의 부모님도 안젤리카의 특별함에 걱정과 염려로 호들갑떨지 않고, 마을 사람들도 놀림감이나 구경감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저 몸집이 좀 큰 여자아이로 살아간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머리도 땋아 늘어뜨리고 뜨개질을 하고 꽃을 좋아하는 안젤리카지만 범상치 않은 힘으로 홍수의 물길을 앞치마로 막기도 하고 이웃집에 불이 났을 때는 구름을 끌어다 불을 꺼주기도 하고 길잡이를 잃은 새들을 돕기도 한다. 열두 살에는 늪에 빠진 마차 행렬의 마차를 번쩍 들어 올려 땅에 올려준 사건이 있은 후부터 안젤리카는 ‘늪의 천사’라고 불렸다.


어느 여름날 마을의 곳간을 죄다 습격해서 겨우내 먹을 양식들을 해치워버리는 큰 곰 ‘벼락’ 때문에 마을에는 곰 사냥대회가 열렸다. 안젤리카의 거대한 몸집만 봐도 기가 죽을 만도 하다만 사냥대회에 참가한 남자들은 늪의 천사 아가씨는 집에서 빵이나 굽고 이불이나 꿰매라면서 비아냥거린다. 안젤리카를 비웃던 남자 참가자들은 하나둘 나가떨어지고 결국 마지막 안젤리카와 곰 ‘벼락’과의 한판승부만 남았다. 벼락이 하늘로 던져지고, 회오리바람을 붙잡아 꼬아서 거대 밧줄을 만들어 벼락을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패대기치기도 하고, 안젤리카 또한 벼락의 재채기에 날아갔다 돌아오기도 하면서 일주일 가까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은 계속된다. 어떤 무기에도 죽지 않고 30일 동안 목을 조르고 있어야 죽는 네메아의 사자를 제압하는 헤라클레스가 떠오른다. 결국 곰 벼락을 죽이고 벼락의 가죽을 차지하게 된 안젤리카가 가죽을 걸치고 테네시 주에서 몬테나 주로 옮겨가는 장면에서는 네메아 사자의 가죽 옷과 사자머리 투구가 상징이 된 헤라클레스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외모가 남다르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과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 즐거운 모험과 유쾌한 상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안젤리카와 벼락이 산들을 떼굴떼굴 구르며 휩쓸고 다녀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라 ‘회색 연기 산’이라 불린다는 테네시 주와 벼락의 가죽을 통나무 집 앞에 깔개로 깔았던 곳을 ‘짧은 풀 언덕’이라고 불린다는 몬테나 주에 실제로 이런 전설이나 비슷한 지명이 존재할까 살짝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늘의 ‘큰곰자리’에 안젤리카에 의해 던져진 벼락이 남긴 자국이라는 상상 하나가 더 추가된다. 황당하지만 묵인되는 신화나 전설 이야기를 읽는 듯 즐거운 책읽기다.


그림을 그린 폴 젤린스키는 이 책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로도 칼데콧 아너상을 받았지만 그 외 여러 작품으로 칼데콧 상과 칼데콧 아너상을 수상한 작가다. 『룸펠슈틸츠헨』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작품인데 아쉽지만 국내에 소개된 책은 두 권이 전부인 것 같다. 글이 알려주지 않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것이 그림의 몫이다. 안젤리카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해낸 용감한 일들이나 큰 곰 ‘벼락’의 사나운 발톱들이 어떻게 활용되는 지에 대한 유쾌한 이야기가 그림 속에 들어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체리나무와 은행나무 베니어 판 위에 오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나뭇결이 살아있고 나무판 위에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다. 하인츠 야니쉬의 글에 그림을 그리는 젤다 마를린 조간치의 그림에서도 이런 기법을 만난 적이 있다. 보편화된 방식인지 전통방식인지 전문가가 아니니 알 길이 없다. 『황소 아저씨』의 정승각님이 동물과 물건들의 부조를 뜨고 모시를 풀칠해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을 선보인 것처럼 그림 작가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새로운 시도가 계속될수록 그림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눈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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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빈 2013-05-3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밋겟어요.
 
꿀벌 나무 국민서관 그림동화 35
패트리샤 폴라코 글 그림,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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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다. 아이가 목도 가누지 못할 때부터 줄기차게 책을 읽어주고 장난감처럼 책을 갖고 놀도록 던져주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얻고자 함보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진정 책과 평생 벗할 수 있는 책을 즐기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은 부모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지식 습득의 수단으로 책을 읽는다면 재미도 없을뿐더러 흥미를 계속 이어가기가 어렵다. 책을 좋아하는 것과 즐기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책을 대하는 아이의 자세가 수동적인지 자발적인지 미세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부모가 함께 할 수 있는 단계는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다. 즐기는 단계로의 나아감은 순전히 아이의 몫이다. 조바심을 내서도 하루 독서량을 강요해서도 독서기록장을 들이밀어서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책이 주는 즐거움을 아이가 영영 찾지 못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책’이나 ‘도서관’의 키워드로 무수한 책들을 검색해서 아이에게 책의 가치와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내 마음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클로드 부종의 『아름다운 책』처럼 책의 가치를 웃음을 매개로 풀어보기도 하고, 『책 먹는 여우』나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처럼 책을 읽는 행위를 책을 직접 먹어치우는 풍자로 그린 책들을 권해주기도 하고, 도서관에 간 생쥐 사자 고양이 개구리 심지어 유령과 도깨비 이야기까지 들려주며 은근하게 유혹을 하곤 했다.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숱한 책들 중 마음에 드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 사라 스튜어트의 『도서관』과 패트리샤 폴라코의 『꿀벌 나무』다. 『도서관』의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책과 함께 하는 삶은 책벌레들의 완벽한 자화상이자 미래다. 『꿀벌 나무』를 넘어서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역동적으로 보여준 책은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꿀벌 나무』의 패트리샤 폴라코는 훌륭한 어린이책 작가가 될 수 있는 토양에서 자라는 행운을 누렸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정착한 패트리샤 폴라코의 집안은 많은 작가들을 배출했다 한다. 그녀의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할머니, 유태인, 가족, 러시아와 유태인의 전통 등은 그녀의 가족들에게서 자연스레 소재를 얻은 것들이다. 세대 간의 공감과 가족간의 사랑이 대부분인 그녀의 이야기는 따스하고 감동적이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에서는 본인의 난독증까지도 작품 속에 녹여내 진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어린이책 작가인 패트리샤 폴라코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본격적으로 『꿀벌 나무』로 들어가 도대체 책읽기의 즐거움을 어떻게 얘기해 줄 것인지 살펴보자.


할아버지는 책 읽기는 싫고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다는 손녀 초롱이에게 밖으로 나가서 벌들이 집을 짓는 나무인 꿀벌 나무를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할아버지는 우선 꽃가루를 모으고 있는 벌 몇 마리를 유리병 안에 가두고 한 마리씩 놓아주며 벌들이 꿀벌 나무를 찾아가는 뒤를 쫓기 시작한다. 날아가는 벌을 쫓아가려니 당연히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뛰어갈 수밖에...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둘씩 어릴 때 해본 놀이라며 너도나도 할아버지와 초롱이의 뒤를 따라 꿀벌 나무를 찾는 행렬에 합류한다. 복조리 아줌마와 유모차에 탄 샛별이, 천둥소리 아저씨, 멋진수염 씨와 매력적인 자매 연두 양 완두 양, 탐험에서 돌아온 금반짝 양, 목동인 산노래군과 염소들, 떠돌이 악사들이 줄지어 벌의 뒤를 쫓는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놓아준 벌은 드디어 이 모험단을 꿀벌 나무로 안내하고 할아버지는 불을 피워 연기를 내서 벌들을 잠잠하게 한뒤 벌집을 뜯어내 꿀을 얻는다. 달콤한 모험을 떠났던 사람들이 모두 할아버지네 집에 모여 부드러운 빵과 차와 벌꿀을 나눠 먹으며 시끌벅적한 파티를 즐긴다.


한낮의 꿀벌을 쫓는 이 모험이 어떻게 책의 즐거움이라는 주제에 안착하는지 신나는 모험 뒤에 할아버지가 초롱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꿀을 한 숟갈 떠서 초롱이의 책표지에 얹어주고 맛을 보라는 할아버지는 바로 책 속에도 그렇게 달콤한 게 있다는 말을 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고 꿀벌 나무를 찾기 위해서 벌을 쫓아 가듯 책장을 넘기면서 책 속에 담겨있는 모험, 지식, 지혜... 그런 것들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책 읽기 싫고 놀고만 싶다는 아이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이런 조언을 한다면 짜증만 유발했을 것이다. 달콤한 꿀벌 나무를 찾아 한바탕 신나는 모험을 하고 나서 책읽기는 바로 그렇게 신나고 달콤한 것이라고 들려주시는 할아버지는 조급해 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하는 지혜로운 어른이다. 어쩌면 눈이 빠져라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좋은 책을 찾아 아이 앞에 놓아두는 것도, 책과 도서관이라는 키워드로 책읽기의 즐거움에 대한 은근한 유혹을 펼쳤던 것도 꿀벌 나무를 찾아 떠난 모험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아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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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소원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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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책이건 도서관 책이건 죄다 자신의 책이라 여기는 아이는 책 욕심이 많다. 유아기에 읽던 책을 팔아서 중고샵에서 요즘 읽을 책과 바꿔보자고 살살 꼬드겨 정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넣자 빼자 실랑이를 벌인 끝에 보니 초라한 책 몇 권이 달랑 있었다. 아이가 책을 다루는 손끝은 정갈하다. 집에 있는 책들은 사서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처럼 흔적이 없고 도서관의 책도 낡고 지저분한 책은 빌리지 않는다. 다행히도 지금 이용하는 어린이 도서관은 개관한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책상태가 아직까지는 양호한 편이다. 집에 있는 책은 기분 내키는 대로 반복해서 읽고,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도 다시 빌려다 읽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즘은 독서기록장을 쓴다며 폼을 잡으니 다시 읽기를 하는 책들이 더 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그림책들 죄다 꺼내놓고 읽고, 기분에 따라 아이가 좋아하는 양 그림책들을 다 꺼내서 읽기도 한다. 가끔 이렇게 테마별 책읽기를 하는데 지난 주말에 아이가 정해놓은 주제가 바로 ‘블랙&까마귀’였다. <까마귀의 소원>, <여섯 마리의 까마귀>, <까마귀 소년>, <까만 아기 양>,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까지 쏙쏙 빼오더니 주말엔 이 책들을 읽겠단다. 아이가 읽을 책은 권하기는 해도 강요는 하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 알아서 주제까지 정해서 읽겠다고 하는데 내 눈에 탐탁지 않은 디즈니 애니 무비북 한두 권 끼워 넣는 것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블랙&까마귀’ 테마 중 한권을 골라본다.


『까마귀의 소원』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동화의 정석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깃털도 낡아빠지고 윤기도 흐르지 않는 늙은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모으길 좋아한다. 반짝이는 것을 찾아 초원을 헤맸지만 소득이 없었던 까마귀는 사냥꾼의 덫에 걸린 백조를 구해준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백조는 까마귀에게 파란 상자를 하나 건네고 상자 속에서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별가루가 들어있다. 지금까지 모아온 반짝이는 것들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갖게 된 까마귀는 어떤 소원을 빌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초원을 거닐던 중 곤경에 처한 친구들에게 별가루를 조금씩 나눠준다. 마지막 남은 별가루마저 울고 있는 토끼 아가씨에게 나눠준 까마귀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거짓말처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알의 별가루를 발견하고 다시 젊고 활기찬 까마귀로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소원을 이룬다.


나뭇결이나 깃털 하나까지 세세하고 꼼꼼하게 정성들여 그린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책 중에는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 형식도 많고 그중에는 사람처럼 의복을 갖춰 입고 등장하는 동물들도 많지만 유독 이 책의 그림이 눈에 도드라지는 이유는 바로 까마귀와 백조를 제외한 초원 동물들의 의상 때문이다. 궁정 무도회에서 갓 튀어나온 듯 우아하고 고급스런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글쎄... 늙고 초라한 까마귀와 대비를 이루기 위함인지 질감까지 짐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려진 드레스에 빵 웃음이 터졌다. 

 

이 그림책과 비슷한 구성의 이야기책은 많이 있지만 오늘은 백석의 동화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개구리네 한솥밥』을 나란히 놓아본다.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개구리는 양식이 떨어져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선다. 형네 집으로 가는 길에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리켜 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 주고, 풀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주느라 형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버렸다. 왔던 길을 어둔 밤에 되짚어 가려니 깜깜하고 짐은 무겁고 길은 장애물에 막혀버리고 형네서 얻어 온 것은 쌀이 아니라 벼 한 말이니 어찌 찧어야 하나 장작 없이 밥은 어찌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개구리 앞에 개구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들이 나타나 서로 도와가며 한 솥 그득하게 밥을 지어 행복하게 나눠먹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동양적 정서인 보은에 중점을 둔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과 너무나도 쿨하게 도와주고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까마귀의 소원』. 우리네 정서에는 아무래도 복이든 화든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는 심리가 있는 모양이다. 은혜를 입은 친구들이 개구리에게 뭔가의 보답을 해줘야 얘기가 깔끔하게 끝나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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