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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
페터르 페르헬스트 지음, 유동익 옮김, 칼 크뇌트 그림 / 해와나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김동성 그림의 『나이팅게일(웅진주니어)』이 안데르센 원작의 사실적 무대를 보여줬다면 지금 소개할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서양인들 눈에 비친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로운 동양을 만날 수 있다. 김동성의 그림이 편안하고 익숙한 아름다움이라면 칼 크뇌트 라는 벨기에 작가는 꿈꾸듯 환상적이고 드러나지 않은 은밀하고 마법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했다는데 화면을 가득 채워 채색한 그림은 대체로 탁하고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그래서 더욱 은밀하고 폐쇄적이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벨기에 가장 아름다운 책표지로 선정됐다는 문구가 무색하지 않은 표지 그림에 이끌려 이 그림책을 보게 됐다. 그림책 속 중국 황제의 정원을 전면에 담은 그림은 색채나 형태가 주는 분위기가 꿈을 꾸듯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글 작가와 그림 작가 모두 벨기에 사람들인데 중국에 대한 이해와 노력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중국의 변발이나 전족의 풍습에 대해서도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했고, 천하를 호령하는 중국황제의 위엄과 권력에 대한 이해도 일그러지지 않고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적정 수준의 과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황제가 손가락 하나로 많은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눈살 찌푸리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놀라 무릎 꿇게 할 수 있고 한 번의 미소로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고 한 번의 하품으로 황궁의 모든 커튼이 드리워진다는 표현들은 황제의 권위를 나타낸다. 황제의 슬픔은 병이 되고 온 나라를 깊은 슬픔 속으로 몰아넣고, 황제의 웃음은 창문을 타고 넘어 온 나라로 퍼져 슬픔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서 바닷속에 빠트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다. 하지만 나이팅게일의 노래 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나이팅게일을 잃은 슬픔에 병을 얻는다. 황제의 생명과 활기를 찾아주고 슬픔에 빠진 나라를 구하는 아이는 ‘머리를 다리 사이에 집어넣는’ 유연하고 작고 민첩하고 작은 소녀다. ‘중국 기예단’의 상상초월 묘기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신비한 분위기의 그림에 끌려 시작했는데 글이 너무나 시적이고 아름답다. 나이팅게일을 잃어버린 황제의 슬픔을 나타낸 부분을 옮겨본다.
사람들은 한쪽 팔이나 다리를 잃게 되면, 그 뒤에도 잃어버린 팔이나 다리가 있던 곳에서 아픔을 느끼곤 해요. 여러분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아픔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답니다. 아픔은 슬픔과도 같아요. 슬픔은 자라나 우리를 끝없이 지치고 또 지치게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 슬픔은 너무나 커져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정도로 말이에요. 아픔이 너무나 커지면, 그것 말고는 그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게 돼요.
황제는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는 황제가 마음속 깊이 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눈물은 황제의 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머리에서 흐르고 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머리는 눈물로 꽉 차게 될 거예요. 그리고......그다음에는......나라 전체가 슬픔에 빠져 버리겠지요.
안데르센 원작의 기본적 이야기 구조를 벗어나진 않지만 이야기는 훨씬 풍성하다. 웅진주니어의 『나이팅게일』이 6,7세 정도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그림책이라면 『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은 글이 많고 시적 표현들도 넘쳐서 초등 2,3학년 이상이 읽으면 괜찮을 그림책이다. 비슷한 주제나 원작이 동일한 다른 그림책들을 정리할 때 내가 즐겨 사용하는 '그림책 vs 그림책'으로 두 권을 묶어 버리기엔 두 권 모두 할 말이 넘치는 그림책들이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연타로 리뷰를 올리게 됐다. 나는 「나이팅게일」을 이 두 권의 그림책으로 읽는다. 더 환상적으로 멋진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