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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ㅣ 안데르센 걸작그림책 3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김서정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6월
평점 :
서양 예술가들의 눈에 비친 동양은 아름답고 신비한 곳이다. 동양인의 시선으로 보면 어떤 것들은 터무니없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노력의 가상함을 넘어서 다른 각도의 시선이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놀랍기도 하다. 안데르센의 동화「나이팅게일」은 중국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 19세기 안데르센 원작의 「나이팅게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그림책들로 재탄생하고 있는데 우리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그림책으로는 웅진주니어의 『나이팅게일』이 가장 탄탄하다는 느낌이 든다. 동화작가이기도 하면서 아동문학 평론가로 동화번역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서정의 글과 한국적인 정서를 잘 살리는 그림으로 팬층을 넓혀가고 있는 김동성의 그림이 만나서 만든 그림책이라 역시 글이나 그림 모두 버릴 것도 없고 더 보탤 것도 없이 깔끔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수세기 동안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역사의 많은 부분이 우리와 서로 맞물려 있기도 한 나라이기도 한만큼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한 김동성의 그림은 보기에 거부감 없이 편안하다. 그림책은 그림 작가에 의해서 분위기가 좌우되는데 국내 작가의 글에 일본 작가가 그림을 그린 한림출판사의 『나이팅게일』은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기모노 입은 여인네들에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문화적 열등감이라 해야 할지 뭐라 부를지 모를 일본인들의 이런 뻔뻔한 들이댐은 늘 신경에 거슬린다. 완벽하게 멋진 김동성의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특별한 관심보다는 신비로운 공간으로 동양의 먼 나라를 택한 것일 수도 있는 안데르센의 의도가 김동성의 그림으로 인해 너무나 사실적인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이어 빠른 시일 내에 소개할 서양의 그림책(『나이팅게일 목소리의 비밀』)과 비교해 보면서 동서양의 시선을 따라다녀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 「나이팅게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줄거리를 소개하고 넘어가자. 먼 옛날 중국 황제의 궁궐과 정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행자들에 의해 책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중국 황제에게도 몇 권의 책이 전해졌는데 전 세계 여행객들이 칭송하는 나이팅게일이라는 새의 노래를 황제 자신은 들어본 적이 없음에 노여워하며 시종장에게 당장 그 새를 데려와 노래를 시키라고 명령한다. 황제의 엄명에 궁궐을 뒤져 나이팅게일을 아는 사람을 수소문하지만 궁궐 안에는 나이팅게일을 아는 신하가 없었다. 그때 황제의 숲이 끝나는 지점 바닷가에 살다가 궁궐에 들어온 부엌데기 여자 아이가 바닷가에 살고 있는 나이팅게일을 알고 있다고 나선다. 부엌데기 여자 아이를 앞세워 궁궐의 신하들이 나이팅게일을 찾으러 바닷가로 떠나는 긴 행렬이 이어진다. 드디어 만난 나이팅게일과 함께 궁궐로 돌아와 황제 앞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래가 퍼지는데 아름다운 노래에 황제는 눈물을 흘리며 감탄한다.
어느 날 황제는 온갖 보석이 박힌 조각품 새를 선물로 받게 되는데 그 노랫소리가 나이팅게일과 닮았다. 조각품 새의 노래에 빠져있는 사이 나이팅게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제멋대로 노래하던 나이팅게일에 비하면 원하면 언제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조각품 새로 황제를 위로한다. 궁궐에 사는 사람들에게야 나이팅게일의 노래나 조각품 새의 노래는 비슷하게 들리겠지만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늘 들어왔던 가난한 어부들은 조각품 새의 노래에는 뭔가 빠졌다고 생각한다. 뭔가 빠져있는 인위적인 조각품 새는 그마저도 고장이 나서 일 년에 한번 밖에 노래를 부를 수가 없게 되고 황제는 큰 병에 걸리고 만다. 권력을 따르는 무리들은 다음 황제가 될 사람 주위로 몰려가고 병에 걸린 권력자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나이팅게일은 황제의 방 창가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그 소리에 황제는 기운을 차린다.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비는 황제에게 오래 전 첫 만남에서 노래를 듣고 황제가 흘린 눈물만큼 큰 선물을 없노라고 나이팅게일은 대답한다.
사실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안데르센이 짝사랑하던 여가수 예니 린드에게서 영감을 얻어서 쓴 동화이다. 예니 린드는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오페라 가수다. 꾸밈없고 소박하고 아름답게 노래하던 예니 린드가 활동하던 시대에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이태리풍의 노래가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동화 속 나이팅게일은 예니 린드, 조각품 새는 당시 유행하던 이태리풍의 노래를 의미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팅게일」에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풍자가 곳곳에 배어있다. 궁궐에서 화려하게 살면서 궁 밖의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던 사람들이 나이팅게일을 찾으러 가는 길에 만난 암소의 울음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장면, 조각품 새의 노래에 뭔가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난한 어부와 조각품 새의 노래를 칭송하는 궁궐안의 사람들을 대비시킨 것에서도 안데르센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덴마크에서 말년의 안데르센에게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상을 세우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 안데르센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동화작가 말고도 시와 소설 희곡 등에 다방면으로 활동한 그가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에 한정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동화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아이들은 단지 이야기의 표면만을 이해하지만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오늘도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나는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읽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도 변했건만 150년도 넘은 동화가 바로 오늘의 우리 이야기인양 생생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