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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의 소원 -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7
하이디 홀더 글.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집에 있는 책이건 도서관 책이건 죄다 자신의 책이라 여기는 아이는 책 욕심이 많다. 유아기에 읽던 책을 팔아서 중고샵에서 요즘 읽을 책과 바꿔보자고 살살 꼬드겨 정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넣자 빼자 실랑이를 벌인 끝에 보니 초라한 책 몇 권이 달랑 있었다. 아이가 책을 다루는 손끝은 정갈하다. 집에 있는 책들은 사서 한 번도 읽지 않은 책처럼 흔적이 없고 도서관의 책도 낡고 지저분한 책은 빌리지 않는다. 다행히도 지금 이용하는 어린이 도서관은 개관한지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책상태가 아직까지는 양호한 편이다. 집에 있는 책은 기분 내키는 대로 반복해서 읽고,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도 다시 빌려다 읽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요즘은 독서기록장을 쓴다며 폼을 잡으니 다시 읽기를 하는 책들이 더 늘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크리스마스 그림책들 죄다 꺼내놓고 읽고, 기분에 따라 아이가 좋아하는 양 그림책들을 다 꺼내서 읽기도 한다. 가끔 이렇게 테마별 책읽기를 하는데 지난 주말에 아이가 정해놓은 주제가 바로 ‘블랙&까마귀’였다. <까마귀의 소원>, <여섯 마리의 까마귀>, <까마귀 소년>, <까만 아기 양>, <검은색만 칠하는 아이>까지 쏙쏙 빼오더니 주말엔 이 책들을 읽겠단다. 아이가 읽을 책은 권하기는 해도 강요는 하지 않는 편이다. 스스로 알아서 주제까지 정해서 읽겠다고 하는데 내 눈에 탐탁지 않은 디즈니 애니 무비북 한두 권 끼워 넣는 것 정도는 봐줄 수 있다. ‘블랙&까마귀’ 테마 중 한권을 골라본다.
『까마귀의 소원』은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는 동화의 정석을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깃털도 낡아빠지고 윤기도 흐르지 않는 늙은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모으길 좋아한다. 반짝이는 것을 찾아 초원을 헤맸지만 소득이 없었던 까마귀는 사냥꾼의 덫에 걸린 백조를 구해준다. 생명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는 백조는 까마귀에게 파란 상자를 하나 건네고 상자 속에서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소원을 들어주는 별가루가 들어있다. 지금까지 모아온 반짝이는 것들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갖게 된 까마귀는 어떤 소원을 빌까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초원을 거닐던 중 곤경에 처한 친구들에게 별가루를 조금씩 나눠준다. 마지막 남은 별가루마저 울고 있는 토끼 아가씨에게 나눠준 까마귀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거짓말처럼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한 알의 별가루를 발견하고 다시 젊고 활기찬 까마귀로 눈부시게 날아오르는 소원을 이룬다.
나뭇결이나 깃털 하나까지 세세하고 꼼꼼하게 정성들여 그린 따스하고 아름다운 그림이다. 그림책 중에는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 형식도 많고 그중에는 사람처럼 의복을 갖춰 입고 등장하는 동물들도 많지만 유독 이 책의 그림이 눈에 도드라지는 이유는 바로 까마귀와 백조를 제외한 초원 동물들의 의상 때문이다. 궁정 무도회에서 갓 튀어나온 듯 우아하고 고급스런 드레스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글쎄... 늙고 초라한 까마귀와 대비를 이루기 위함인지 질감까지 짐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려진 드레스에 빵 웃음이 터졌다.
이 그림책과 비슷한 구성의 이야기책은 많이 있지만 오늘은 백석의 동화시를 그림책으로 만든 『개구리네 한솥밥』을 나란히 놓아본다. 가난하지만 마음 착한 개구리는 양식이 떨어져 벌 건너 형을 찾아 길을 나선다. 형네 집으로 가는 길에 발 다친 소시랑게 고쳐주고, 길 잃은 방아깨비 길 가리켜 주고, 구멍에 빠진 쇠똥구리 끌어내 주고, 풀대에 걸린 하늘소 놓아주고, 물에 빠진 개똥벌레 건져주느라 형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버렸다. 왔던 길을 어둔 밤에 되짚어 가려니 깜깜하고 짐은 무겁고 길은 장애물에 막혀버리고 형네서 얻어 온 것은 쌀이 아니라 벼 한 말이니 어찌 찧어야 하나 장작 없이 밥은 어찌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이런 개구리 앞에 개구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들이 나타나 서로 도와가며 한 솥 그득하게 밥을 지어 행복하게 나눠먹으며 이야기가 끝난다. 동양적 정서인 보은에 중점을 둔 백석의 『개구리네 한솥밥』과 너무나도 쿨하게 도와주고 너무나도 이기적으로 받아들이는 『까마귀의 소원』. 우리네 정서에는 아무래도 복이든 화든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는 심리가 있는 모양이다. 은혜를 입은 친구들이 개구리에게 뭔가의 보답을 해줘야 얘기가 깔끔하게 끝나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