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선장과 우주 해적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8
제인 욜런 지음, 브루스 데근 그림, 박향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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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1학년 아이가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이야기다. ‘토드 선장 시리즈’ 중에서 가장 먼저 『토드 선장과 우주 해적』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해적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해적이 되었냐면』의 댕기수염 해적단, 『즐거운 로저와 대머리 해적 압둘』의 황금궁둥이 해적단처럼 얽매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모험을 즐기는 해적들 이야기에는 항상 눈을 반짝이곤 했었다. 게다가 우주 해적까지 등장해서 우주에서 한판 붙는 이야기니 얼마나 흥미진진하겠는가. 하지만 이야기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심심한 우주선 생활로 시작된다.


우선 등장인물부터 소개하자면, ‘별똥들의 전쟁’호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그 이름도 위대한 토드 선장, 부조종사 엄청생각씨, 기관사 나리 중위, 컴퓨터 박사 막내 대원 공중제비, 그리고 의사 닥터꼼꼼씨. 은하계의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 탐험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우주여행은 길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개굴-크리켓 놀이를 비롯한 실내 놀이를 각각 서른다섯 번씩 하고, ‘백설 공주와 일곱 사마귀’같은 책들을 마흔일곱 번씩 읽었고, ‘인디애나 개구리’ 영화를 쉰아홉 번씩이나 봤으니 따분하고 심심해서 신나는 모험 생각이 절로 났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경보기가 울리고 옆구리에 하얀 뼈다귀와 해골 그림을 붙인 시커먼 우주선이 나타났다. 토드 선장의 말에 따르면 하늘의 채찍 은하계의 폭력배 우주의 뱀이라고 불리는 도롱뇽 선장의 우주선이라고 한다. 하지만 용감하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토드 선장은 어찌된 영문인지 도망갈 궁리를 하기 바쁘다. 토드 선장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올가미 광선총을 쏴 별똥들의 전쟁호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도롱뇽선장은 사다리를 타고 별똥들의 전쟁호로 부하들을 이끌고 건너온다. 험상궂고 비열한 도롱뇽선장과 부하들은 별똥들의 전쟁호 선원들을 꽁꽁 묶어서 널빤지 뛰기 놀이를 하며 괴롭힌다. 해적들의 눈을 피해 숨어있던 닥터꼼꼼씨 덕분에 해적들을 물리치게 되는데 얼굴을 마주하고 선 토드 선장과 도롱뇽선장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다. 이 모든 모험들이 우주여행의 따분함을 달래주기 위한 두 선장의 장난이었던 것이다. 두 우주선의 선원들은 서로의 책과 영화를 교환하면서 또 얼마간의 지루함을 날려버리면서 우주여행을 계속 해나간다.


아이는 “뭐야? 이게 다 장난이었다는 거야?”하면서 이야기의 반전에 허탈해 하면서도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요즘 동화를 읽고 나면 재미의 정도에 따라 평점을 매기는데 그래도 점수가 꽤 좋다. 제인 욜런의 그림책들은 많이 봤는데 동화는 처음이다. 그림책의 글 분위기는 꽤 서정적이었는데 토드 선장 시리즈는 초등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 스스로 재미있게 읽기에 적당하다. 토드 선장의 대원들 이름도 재미있다. 번역을 거쳐서도 그 맛이 살아있다. (물론 영문판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는데 귀찮음이 몰려온다. 그래도 다음에 도서관에 가면 영문판이 있으면 한번 확인해봐야겠다.) 25년 전에 나온 이야기인데도 일러스트 색채의 단순함을 제외하곤 전혀 촌스럽지 않고 유쾌하다. 6권의 토드 선장 시리즈 중 집에 갖고 있지 않은 2권도 마저 구입해 달라고 하니 얼른 장바구니에 담아야겠다. 이럴 땐 시공주니어 문고의 착한 가격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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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 가로세로그림책 1
토미 웅거러 글.그림, 이현정 옮김 / 초록개구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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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에 맞서는 자유로운 영혼 토미 웅게러는 신간이 나오기가 무섭게 구입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는 제목에서 금방 알 수 있듯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를 패러디한 그림책이다. 신간이긴 하지만 그건 단순히 한글번역본이 이제야 나왔다는 것이고 작품발표 시기로는 1974년作 이다. 내가 좋아하는 토미 웅게러의 작품들인 『크릭터』『제랄다와 거인』『달사람』『모자』『세 강도』등의 작품들과 발표 시기와 엇비슷하다. 이 책 마지막 장면에 『모자』에 등장하는 행운의 모자를 슬쩍 그려 넣은 작가의 센스 있는 서명도 토미 웅게러답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철저하게 버려져서 홀로 죽음을 맞았던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려본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슬프고 안타깝고 충격적인 동화였다. 따스하고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와 싸늘한 소녀의 주검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며 그 충격이 컸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죽어있었다.’라는 말로 일말의 양심과 미안함을 서둘러 내려놓으려 하던 뻔뻔함에 화가 났었다. 물론 지금이야 작가가 무관심 속에 죽어간 거리의 소녀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바로 떠올릴 수 있는 나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심하게 동일시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 감정이 푹 빠지곤 했었다.


토미 웅게러의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는 오래 전 성냥팔이 소녀에게 진 해묵은 빚을 갚은 후련한 느낌을 준다. 안데르센의 가냘프고 여린 성냥팔이 소녀가 세월이 덧입혀지면서 변화했다. 토미 웅게러의 알뤼메트는 무관심과 매정함에 쓸쓸하게 죽어가던 가녀린 소녀가 아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행운을 어려운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착한 마음씨를 가졌고, 자신을 홀대하며 윽박지르던 사람들을 넒은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 사람들을 탐욕에서 벗어나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낸 아이다. 아이의 선한 마음은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으로 관망하던 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기부와 나눔의 기적을 일으킨다. 전 세계로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선행과 봉사의 현장, 그 중심에 선 작은 소녀 알뤼메트는 인류가 더불어 살아가야 할 방향을 당당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선물을 앞에 두고 알뤼메트는 당차게 이야기 한다. “선물이요! 사람들에게 나눠 줄 거예요. 지금 당장이요, 물건들이 망가지기 전에.” 알뤼메트의 당찬 이 한마디가 모든 일들을 가능케 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구두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안데르센은 어린 시절 구걸까지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던 어머니를 성냥팔이 소녀의 모델로 그렸다 한다. 토미 웅게러는 특유의 유머와 익살로 성냥팔이 소녀를 멋지게 변모시켰다. 데이빗 위즈너처럼 토미 웅게러도 자신의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다른 작품 속 장면을 까메오로 출연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유머러스한 작가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작품을 사랑해주는 독자들을 위한 선물이라 느껴진다. 『성냥팔이 소녀 알뤼메트』에서도 작가의 모습과 다른 작품 속 장면을 발견해 내는 재미가 숨어 있다. 토미 웅게러의 팬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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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네이트 1 - 교실은 내가 접수한다 빅 네이트 1
링컨 퍼스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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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낄낄거리고 박장대소 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만화책에 코 박고 낄낄거리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한심하다 흉을 보곤 해서 그런지 ‘낄낄대는 책=만화책’이라는 공식이 내심 자리 잡고 있었다. 『빅 네이트』를 읽고 있는 내 모습을 객관화해서 본다면 속으로 흉보던 그 모양새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또 우습다. 책을 보며 낄낄대는 사람이 있으면 슬쩍 고개를 빼고 무슨 책인지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낄낄대면서 보니까 무슨 책인가 아이도 슬쩍 합세한다. 220쪽 분량의 글이라 초등 1학년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기를 원했는데 평소 글이 많은 책 앞에서 몰래 한숨 쉬던 마음은 싹 사라지고 함께 읽는 내내 유쾌했다. 문체 또한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어줘야 제 맛이 나는 문장이라 더욱 즐거웠다.


사실, 나의 초등 시절은 네이트의 분류에 따르면 ‘선생님의 귀여움을 더 많이 받으려고 몸부림치는’ 왕재수 밉상 반 친구에 가까웠을 것 같다. 슈퍼울트라 개구쟁이 네이트와 한반에서 생활했다면 우리는 절대 가까워질 수 없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구제불능(이라고 어른들이 평가하는) 말썽쟁이의 일상을 통해 내가 그 시절로 되돌아가 그때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들을 대리만족하는 기분이 너무나 신나고 즐겁다. 그리고 내 아이에게서 네이트와 싱크로율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신나는 재미, 창의적인 사고(思考와 事故 둘 다..^^)를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엄마로서 좀 위험한 발상인가?^^


네이트는 집에서건 학교에서건 왕재수 울트라 짱 우등생 누나와 항상 비교당하고, 아빠에게는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아이다. 하지만 자존감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스스로를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라며 절대 기죽는 법이 없다. 『빅 네이트 1; 교실은 내가 접수한다!』는 옆집에 살고 있는 단짝친구 프랜시스가 등교 전부터 사회 교과서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본 네이트의 하루 일과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제38공립학교 최고의 말썽쟁이 네이트와 공부하는 게 취미인 프랜시스는 유치원부터 단짝친구다. 해부시간에 오징어 다리로 콧물을 만들어 붙이고 썰렁한 농담을 즐기는 전학생 테디도 네이트의 또 한명의 단짝친구다. 사회시험의 공포에서 벗어난 네이트에게 테디가 건넨 포춘 쿠키 안의 점괘가 네이트의 하루를 특별한 날로 만든다. “오늘 당신은 모두를 압도할 것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룰 운명을 타고난 존재 네이트에게 모두를 압도할 날이 바로 오늘이라는 점괘는 하루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불어넣어준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졸졸 따라다니기는 하다.^^


하지만 제38공립학교 공식 ‘별명의 달인’ 네이트가 고드프리 선생님의 별명을 20가지나 적은 쪽지가 발각되고, 짝사랑하는 제니를 향한 시를 폭로한 것도 모자라 비웃기까지 한 지나에게 수업 중에 폭언을 퍼붓는 일도 일어난다. 고작 정물화 같은 찌질한 그림들에 밀려 자신의 긴장감 넘치고 창의적인 그림이 주목받는 작품의 반열에 오르지 못함을 항의하고, 세면대의 물이 튀어 오줌 싼 바지처럼 보이는 체육복 대신 입은 체육선생님의 반바지 때문에 선생님의 오해를 샀다. 태어나 한 번도 웃어본 적 없어 보이는 과학 선생님의 웃음을 유발하겠다는 의도가 선생님께 압수당한 사인펜의 잉크로 선생님의 셔츠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네이트의 학교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가면서 네이트에게 남은 건 일곱 장의 벌점 카드와 함께 반성실로 향하는 것 뿐이었다. 모두를 압도할 반전은 없는 듯했다. 반성실에 지정좌석까지 갖고 있는 네이트가 반성실의 체르위키 선생님 앞에 선 순간 네이트는 ‘모두를 압도할 날’의 실체를 확인한다. 오늘은 네이트가 제38공립학교 역사를 다시 쓴 날이다.


아이들의 입장을 시원하게 대변한다고 하여 눈살 찌푸려지게 불쾌한 캐릭터와 과장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동화책도 있다. 『빅 네이트』는 유쾌 상쾌 청정 웃음으로 아이들의 입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파인애플 머리 네이트는 개구쟁이긴 하지만 악당은 아니다. 시험공부를 전혀 못한 사회시험을 피하려는 여러 작전들을 생각하다가 결국 아빠의 사인을 위조한 편지를 쓰려고 하지만 남의 사인을 도용하는 것은 범죄라며 망설이는 아이다. 비록 당사자인 고드프리 선생님께 들키긴 했지만 ‘밀로의 비너스’에서 영감을 얻은 ‘살로만 비너스’ 같은 별명,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웃지 않는 과학 선생님을 위해 그린 만화는 굉장히 창의적이다. 미술 선생님이 선정한 ‘주목할 작품’의 과일이나 운동화 한 짝을 그린 정물화보다 사실 네이트의 그림을 걸어둔다면 미술선생님의 장식장은 더욱 빛날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네이트의 행동을 권위에 도전하는 ‘무례함’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고 독창적인 창의성의 분출이라 받아들이고 싶다. 유쾌한 빅 네이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다음 웃음 폭탄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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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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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감정이 없다면, 내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223쪽)


인간의 감정은 과거라는 시간을 지독스레 편애한다. 기억의 편린들이 흩뿌려진 지나온 시간언저리에서는 궁핍과 절망과 슬픔조차 봄꽃처럼 화사하다. 그에 반해 인간의 감정이 다가올 미래를 대하는 태도는 야박하리만큼 황량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的 시선을 고집한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완벽한 사회를 위해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여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는 사회를 그려냈다.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식욕과 성욕도 약으로 억제하고, 모든 구성원들을 색맹으로 만들어 색깔 구분조차 없애고, 장애아나 노인이나 사회 부적응 인자가 있는 사람들은 ‘임무 해제(일종의 안락사)’를 시켜버리는 일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통제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비하면 부모가 주문한 아이가 통조림 깡통에 넣어져서 배달되어 온다는 설정의 동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깡통 소년」은 한 토막의 즐거운 에피소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作 「블레이드 러너」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서 대기에는 항상 스모그가 잔뜩 끼여 있고 산성비가 수시로 내리는 축축하고 뿌연 2019년 미래의 지구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에 나오려면 뭐든 완벽해야 해. 사람이든. 기계든 (56쪽)


『열세 번째 아이』가 그리는 2075년의 대한민국 또한 디스토피아的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아이가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고, 인간에게서 쓸데없다고 버려진 ‘감정’과 ‘기억’들은 완벽한 로봇에게로 장착되는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완벽한 아이, 완벽한 로봇을 외치면서 로봇과 인간이 서로의 대척점을 향해 완벽함을 더해가는 희한한 모양새다. 열세 번째 아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니는 장시우라는 아이가 사는 세상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맞춤하는 세상이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외모나 성격에 맞춰 유전자를 재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완벽한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앞선 열두 번의 과정을 거쳐 열세 번째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시우는 인간의 감정 부분을 억제하고 이성이 부각된 완벽한 인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냉철한 인간에게서 쓸모없다고 내쳐진 인간의 감정은 감정 로봇들이 대신한다. 부끄러움(지오의 로봇 나르)이나 즐거움(시우의 동생 시아)처럼 단일 감정을 입력한 로봇들이 넘쳐나지만 레오는 차별화된 로봇이다. 이성과 감성이 고루 풍부해서 다방면으로 특출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처럼 레오는 경험에 의한 기억이 입력되어 완벽한 감정을 느끼는 완벽한 로봇이다.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그 기억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영화「블레이드 러너」복제인간 로이의 마지막 대사)


미래에 대한 결정권마저 저당 잡힌 채 관리와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시우 앞에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완벽한 감성을 가진 로봇 레오의 등장은 갈등을 예고한다. 레오의 감정칩에 입력된 만들어진 기억들을 끄집어내 시우를 자극하는 레오와 사춘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의 증가가 겹치면서 시우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시우의 미래에 보류결정이 내려지고, 때맞춰 최연소 노벨상을 수상하며 완벽한 인간의 전형이라 믿었던 맞춤형 아이의 첫 번째 성공사례였던 김선 박사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인간보다 더욱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지닌 감정로봇들의 시위도 사회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상황의 중심에서 두 손을 잡은 시우와 레오는 비로소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입력된 가짜 기억이 아닌 진짜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경찰의 포위망은 좁혀오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데 감정과 기억이 사라진 채 살 수 없다는 레오와 냉철한 아이였던 시우의 눈물의 이별 장면은 고조된 슬픔에 장엄함까지 더한다. 미래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로이의 죽음이 오버랩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복제인간 로이가 빗속에서 인간에 대한 용서와 함께 마지막 수명을 다하며 들려준 메시지.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그 기억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시우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목 뒤 지문인식 센서에 가만히 올려놓는 레오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펼쳐지며 슬프도록 긴 여운을 남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과 머리에서 벌어진 일들. 내게 일어나선 안 되는 그것을 내가 찾게 된다면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 (216쪽)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맞춤형 아이 장시우. 이후에 태어난 맞춤형 아이의 롤모델이 될 정도로 완벽한 아이였던 시우는 완벽한 인간보다 완전한 인간을 꿈꾼다. 예전으로 돌아가 치료를 통해 회복하고 다시 통제와 관리를 받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삶을 지속하기엔 레오의 간절한 눈빛과 아프게 뛰고 있던 심장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다. 완벽한 인간이냐 완전한 인간이냐 선택은 시우의 몫이다.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는 시우와 레오의 외침이 미래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아니기를 바라며 레오의 기억을 가슴으로 전해 받은 시우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행보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얹어 응원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TV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신이 명색이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해서 학위까지 받았지만 자기 자식이 공부를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로서 자기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부모가 단지 자신의 유전형질을 물려줬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기간이 태교를 통해 부모의 온갖 희망사항이 투영된 야무진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서 나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낸 후부터는 야무진 꿈이 실현됐든 무참히 깨졌든 내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흡사 구도자(求道者)와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되는 순간들을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만난다.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면, 조금만 열의를 북돋워주면 부모의 기대치에 근접해 갈 수 있을 것 같은 욕심과 매번 싸운다. 부모가 원하는 사양의 아이가 통조림 깡통에 넣어져 배달되는 「깡통 소년」이나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만드는 『열세 번째 아이』와 같은 이야기는 극단적 섬뜩함으로 그런 욕심에 제동을 걸어준다. 인간을 획일적 상품화 하는 시대,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해 아이마저 유전형질의 적극적 선택으로 상품화해서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시대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과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계급을 나누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37쪽)


『열세 번째 아이』는 미래 사회에 대한 생생한 구성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의 세태 또한 날카롭게 꼬집는다. 맞춤형 아이를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 부모들은 불법으로 아이를 만드는 일에 손을 대고,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계층은 매일 신제품으로 갈아치우는 상류층과는 다르게 개인 로봇 하나 없이 주변의 이죽거림의 대상으로 살아간다. ‘과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계급을 나누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37쪽)’는 시우의 독백이 들려주는 인간 계층 간의 대립각은 2012년과 2075년 사이의 시간을 빠르게 훑으며 씁쓸함을 남긴다. 미래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은퇴’(복제인간을 사살하는 것) 「기억전달자」의 ‘임무 해제’(노인이나 장애아동, 사회적 위해인자를 가진 인간을 안락사 시키는 것) 『열세 번째 아이』의 생명윤리와 인간성에 역행하는 행위들이 횡횡하는 미래 사회는 단지 상상속의 일일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보트 주위를 선회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어처럼 우리의 발밑을 조용히 잠식해 들어와 어느 순간 아가리를 쩍 벌려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한 사회를 순식간에 집어삼켜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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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용법 -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신나는 책읽기 33
김성진 지음, 김중석 그림 / 창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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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과 아이에게 자신의 욕심을 투영시켜 끊임없이 다그치는 부모가 아이들을 옥죄는 세상이다. 아이를 아이의 모습 그래도 봐주고 절대 강요나 간섭 없이 기다려주는 엄마는 왠지 직무유기라는 엄중한 죄를 짓고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세상이다. 아이의 일상을 잠시 들여다보자. 평일은 학교와 학원 등 하루하루 소화해 내기에 급급하고 주말과 휴일에는 다음 주를 준비해야 하고 방학은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야 한다. 놀이터에서 잠깐 노는 시간도 일과와 일과 사이에 짬을 내야할 정도이다 보니 이러다가 숨을 쉬는 것조차 스케줄을 짜야 하고 변기에 느긋하게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만성변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지 않을까 노파심이 들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아이들이다. 그러면서 주위의 잘난 친구들과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엄마가 정해놓은 기준에 도달하도록 등 떠밀리지만 엄마의 기준이란 것은 쫓아가면 또 저만큼 멀어져 있다. 늘 헉헉대며 쫓다보면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하는 것들은 생각할 겨를도 없다.


이런 시스템이 아이들을 결코 행복하게 할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엄마일 수밖에 없는 내 고민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쏟아져 나오고 있는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와 그 안에서 가족의 의미를 재정립 해보자는 주제의 이야기들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 읽은 『열세 번째 아이』처럼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의 조건에 맞는 완벽한 아이를 만든다는 이야기와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주문한다는 『엄마 사용법』은 표면적으로 서로의 입장이 바뀐 것만 다를 뿐 결국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자에 속하는 어른들에게 스스로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기를 권하는 이야기.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달 남짓한 학교생활 중에 처음 평가라는 것을 한다고 하니 받아쓰기나 단원평가를 준비 없이 치러도 되는지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서둘러 단원평가 문제집을 들이밀고 채점을 하는데 한두 문제 실수가 보였다. 옆에 앉혀두고 설명을 하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엄마, 엄마들의 욕심의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요?”.. 내 목소리가 힐책하는 듯 느껴진 모양이다. 황급히 목소리를 바꿔서 손사래를 치면서 “아니야, 엄마는 100점을 맞으라는 게 아니야. 실수하는 부분을 알려주려는 거야.” 서둘러 수습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은 묻고 싶어질 것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엄마의 기준에 맞는 아이를 주문해서 받아서 키우지 그랬냐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결코 이런 엄마를 선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항변이 들리는 듯하다. 『엄마 사용법』의 보편적 엄마 모습인, 아이들을 시간 맞춰 깨워주고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주는 가전제품과 같은 엄마를 더 선호할 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의 지나친 간섭에 지친 세상을 비웃듯 『엄마 사용법』속 세상의 엄마는 존재감이 없다.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 하는 용도가 전부인, 엄마의 존재감은 딱 거기까지인 세상이다. 그마저도 서툴면 불량엄마라 하여 가차 없이 버려진다. 하지만 처음 엄마라는 생명장난감을 갖게 된 여덟 살 현수는 ‘안아주고 책도 읽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엄마를 꿈꾼다. 하지만 배달 되어온 생명장난감 엄마는 현수에게 다가오지 않는 기계적인 모습만 보인다. 현수는 아기에게 세상을 하나씩 가르쳐주는 엄마처럼 생명장난감 엄마에게 자신이 바라는 엄마의 모습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기, 웃으며 손 흔들어 인사하기, 손잡고 산책하기 등등.. 현수의 생명장난감 엄마는 점점 특별한 엄마가 되어 간다. 하지만 생명장난감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을 경계하는 세상은 현수의 엄마를 불량품으로 규정한다. 현수와 엄마는 불량 생명장난감을 수거하는 파란 사냥꾼들에게 쫓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현수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깊어간다. 어쩌면 아이들이 원하는 엄마는 현수처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바라고 원하는 무수히 많은 것에 비하면 참으로 소박하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다.       


언젠가 내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가 상상하던 모습의 아들이에요?” “그럼, 상상하던 모습보다 훨씬 더 멋진 아들로 태어나줬지.” 나는 또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럼 엄마는 우리 아들이 상상하던 엄마와 비슷했어?” “엄마 뱃속에서 컴퓨터로 엄마를 주문했는데 나와 보니까 훨씬 더 좋은 엄마가 있더라고요.” 그래, 나도 안다. 말은 참 고맙지만 100% 만족스러운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끌어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랴. 아이는 나한테 좋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아줬지만 나도 이런 책을 읽으면 뜨끔해지는 보통의 평범한 엄마다.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이제부터 나는 아이의 마음을 배워나가려 한다. 그 시작을 좋은 엄마의 모습을 흐리는 말과 행동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부터 하려고 한다.

  

『엄마 사용법』은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대상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처럼 기발하고 참신하고 강렬하고 도발적인 소재는 아니다. 요즘 이런 게 유행인가 싶게 자주 목격되는 소재다. SF의 옷을 입은 미래의 어디쯤이 아니라 발을 딛고 있는 현실에 전하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메시지가 강해 재미를 가려버린 느낌이 든다. 초등 저학년용 읽기 책에 상징이나 은유나 의미부여나 코드 숨기기가 지나치면 재미를 빼앗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출판사의 이름을 건 공모전이다 보니 약간의 권위 챙기기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모양이다. 눈물 나게 감동적이고 막무가내로 재미있다. 라는 한 줄 감상평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작품도 수상작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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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파랑 2012-04-1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인데 추천이 없다니^^ 그런데 초등학교 갓 입학한 아이가 정말 저렇게 엄마한테 물엇나요? 놀랍습니다.

햇빛섬 2012-04-16 10:29   좋아요 0 | URL
훌륭한 리뷰라는 칭찬에 아침부터 팔랑팔랑 날아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집 꼬맹이는 성장도 느리고 행동도 느린데 말로만 다 해먹는 녀석이라서 가끔 어른들을 뜨끔하게 하는 말들을 쏟아놓곤 한답니다. 그날도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