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억과 감정이 없다면, 내 행동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없다. (223쪽)


인간의 감정은 과거라는 시간을 지독스레 편애한다. 기억의 편린들이 흩뿌려진 지나온 시간언저리에서는 궁핍과 절망과 슬픔조차 봄꽃처럼 화사하다. 그에 반해 인간의 감정이 다가올 미래를 대하는 태도는 야박하리만큼 황량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的 시선을 고집한다.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는 완벽한 사회를 위해 개인의 감정을 통제하여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는 사회를 그려냈다.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식욕과 성욕도 약으로 억제하고, 모든 구성원들을 색맹으로 만들어 색깔 구분조차 없애고, 장애아나 노인이나 사회 부적응 인자가 있는 사람들은 ‘임무 해제(일종의 안락사)’를 시켜버리는 일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으로 통제된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비하면 부모가 주문한 아이가 통조림 깡통에 넣어져서 배달되어 온다는 설정의 동화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의 「깡통 소년」은 한 토막의 즐거운 에피소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作 「블레이드 러너」는 환경오염이 심각해서 대기에는 항상 스모그가 잔뜩 끼여 있고 산성비가 수시로 내리는 축축하고 뿌연 2019년 미래의 지구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에 나오려면 뭐든 완벽해야 해. 사람이든. 기계든 (56쪽)


『열세 번째 아이』가 그리는 2075년의 대한민국 또한 디스토피아的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전자 조작으로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아이가 만들어져 세상에 나오고, 인간에게서 쓸데없다고 버려진 ‘감정’과 ‘기억’들은 완벽한 로봇에게로 장착되는 세상이 바로 그것이다. 완벽한 아이, 완벽한 로봇을 외치면서 로봇과 인간이 서로의 대척점을 향해 완벽함을 더해가는 희한한 모양새다. 열세 번째 아이라는 꼬리표가 늘 붙어 다니는 장시우라는 아이가 사는 세상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맞춤하는 세상이다. 부모가 원하는 아이의 외모나 성격에 맞춰 유전자를 재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완벽한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앞선 열두 번의 과정을 거쳐 열세 번째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시우는 인간의 감정 부분을 억제하고 이성이 부각된 완벽한 인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냉철한 인간에게서 쓸모없다고 내쳐진 인간의 감정은 감정 로봇들이 대신한다. 부끄러움(지오의 로봇 나르)이나 즐거움(시우의 동생 시아)처럼 단일 감정을 입력한 로봇들이 넘쳐나지만 레오는 차별화된 로봇이다. 이성과 감성이 고루 풍부해서 다방면으로 특출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처럼 레오는 경험에 의한 기억이 입력되어 완벽한 감정을 느끼는 완벽한 로봇이다.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그 기억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영화「블레이드 러너」복제인간 로이의 마지막 대사)


미래에 대한 결정권마저 저당 잡힌 채 관리와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시우 앞에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완벽한 감성을 가진 로봇 레오의 등장은 갈등을 예고한다. 레오의 감정칩에 입력된 만들어진 기억들을 끄집어내 시우를 자극하는 레오와 사춘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로 인해 스트레스의 증가가 겹치면서 시우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던 중 시우의 미래에 보류결정이 내려지고, 때맞춰 최연소 노벨상을 수상하며 완벽한 인간의 전형이라 믿었던 맞춤형 아이의 첫 번째 성공사례였던 김선 박사의 자살 소식이 들려온다. 인간보다 더욱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지닌 감정로봇들의 시위도 사회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급속도로 번져나간다.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상황의 중심에서 두 손을 잡은 시우와 레오는 비로소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입력된 가짜 기억이 아닌 진짜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 경찰의 포위망은 좁혀오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데 감정과 기억이 사라진 채 살 수 없다는 레오와 냉철한 아이였던 시우의 눈물의 이별 장면은 고조된 슬픔에 장엄함까지 더한다. 미래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복제인간 로이의 죽음이 오버랩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던 복제인간 로이가 빗속에서 인간에 대한 용서와 함께 마지막 수명을 다하며 들려준 메시지.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그 기억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시우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목 뒤 지문인식 센서에 가만히 올려놓는 레오의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펼쳐지며 슬프도록 긴 여운을 남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과 머리에서 벌어진 일들. 내게 일어나선 안 되는 그것을 내가 찾게 된다면 비로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 (216쪽)


부모가 원하는 완벽한 맞춤형 아이 장시우. 이후에 태어난 맞춤형 아이의 롤모델이 될 정도로 완벽한 아이였던 시우는 완벽한 인간보다 완전한 인간을 꿈꾼다. 예전으로 돌아가 치료를 통해 회복하고 다시 통제와 관리를 받으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삶을 지속하기엔 레오의 간절한 눈빛과 아프게 뛰고 있던 심장의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다. 완벽한 인간이냐 완전한 인간이냐 선택은 시우의 몫이다.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는 시우와 레오의 외침이 미래의 우리 아이들 모습이 아니기를 바라며 레오의 기억을 가슴으로 전해 받은 시우의 ‘진짜 나’를 찾아가는 행보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얹어 응원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TV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신이 명색이 인간의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이고 외국에 나가서 공부해서 학위까지 받았지만 자기 자식이 공부를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로서 자기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부모가 단지 자신의 유전형질을 물려줬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기간이 태교를 통해 부모의 온갖 희망사항이 투영된 야무진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서 나와 연결된 탯줄을 끊어낸 후부터는 야무진 꿈이 실현됐든 무참히 깨졌든 내 아이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흡사 구도자(求道者)와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게 부모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되는 순간들을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만난다. 조금만 방향을 잡아주면, 조금만 열의를 북돋워주면 부모의 기대치에 근접해 갈 수 있을 것 같은 욕심과 매번 싸운다. 부모가 원하는 사양의 아이가 통조림 깡통에 넣어져 배달되는 「깡통 소년」이나 부모가 원하는 아이를 만드는 『열세 번째 아이』와 같은 이야기는 극단적 섬뜩함으로 그런 욕심에 제동을 걸어준다. 인간을 획일적 상품화 하는 시대, 인간의 탐욕이 극에 달해 아이마저 유전형질의 적극적 선택으로 상품화해서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시대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과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계급을 나누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37쪽)


『열세 번째 아이』는 미래 사회에 대한 생생한 구성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의 세태 또한 날카롭게 꼬집는다. 맞춤형 아이를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는 부모들은 불법으로 아이를 만드는 일에 손을 대고, 변두리에 사는 가난한 계층은 매일 신제품으로 갈아치우는 상류층과는 다르게 개인 로봇 하나 없이 주변의 이죽거림의 대상으로 살아간다. ‘과학은 미래를 향해 달려가지만 사람들은 계급을 나누던 과거로 돌아가려는 것 같다.(37쪽)’는 시우의 독백이 들려주는 인간 계층 간의 대립각은 2012년과 2075년 사이의 시간을 빠르게 훑으며 씁쓸함을 남긴다. 미래 사회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이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은퇴’(복제인간을 사살하는 것) 「기억전달자」의 ‘임무 해제’(노인이나 장애아동, 사회적 위해인자를 가진 인간을 안락사 시키는 것) 『열세 번째 아이』의 생명윤리와 인간성에 역행하는 행위들이 횡횡하는 미래 사회는 단지 상상속의 일일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으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보트 주위를 선회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어처럼 우리의 발밑을 조용히 잠식해 들어와 어느 순간 아가리를 쩍 벌려 인간이 인간다움을 포기한 사회를 순식간에 집어삼켜 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