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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안
하오징팡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평점 :
인간의 피안 (2020년 초판)
저자 - 하오징팡
역자 - 강영희
출판사 - 은행나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18p
인공지능의 도래로 인간은 피안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시아 최초 휴고상 수상작가 '류츠신' 이후 [접는도시]로 휴고상을 수상하며 중국 SF계의 혜성처럼 떠오른 작가 '하오징팡'의 신작이 출간됐다. 사실 앞서 출간된 단편집 [고독 깊은 곳]이 너무나 인상깊었고 좋았기에 이번 신작에 대한 기대감도 상당히 컸었다. [인간의 피안]이라니. 제목부터 철학적 Feel이 넘치는 다분히 관념적이고 어려울 것 같은 제목임에도 망설임 없이 선택한 이유는 현실의 이야기를 SF라는 장르에 녹여내는 재능이 무척이나 탁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는 가공의 세계이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놀랍도록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런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원이다.
얼마전 MBC에서 슬프지만 흥미로운 다큐를 방영했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를 위해 생전의 딸에 대한 데이터를 인공지능에 입혀 3D로 구현해낸 것.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다큐를 보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얼마전만 해도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던 그러나 바둑의 수읽기를 학습하는 수준에 그치던 AI기술이 어느새 인공지능 스피커등을 통해 우리의 생활속에 깊숙이 침투했고 급기야 SF소설에서나 봐오던 망자의 재생(아직 기술적 보강이 필요해 보였지만)까지 실현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작가가 상상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공존은 어떤 세상일까? '인공지능 발전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프로젝트와 함께 사유한 글들의 결과물이 이 [인간의 피안]에 실려있는 여섯 편의 작품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하다면 익숙한, 엄밀히 사골소재인 AI(인공지능)을 주제로 그녀가 보여준 세계의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사유하게 하는 생각의 장을 만들어 준다.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작품은 [당신은 어디에 있지]이다. 지금도 인공지능이 간단한 개인의 비서 역할을 하곤 하는데, 작품은 본인과 동일한, 한마디로 내가 둘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한 회사원의 이야기이다. 다만 이 서비스는 물리력이 없는게 단점인데, 간단히 말하면 업무중인 날 대신해 전화 통화를 하거나, 화상회의를 하는 정도의 개념이다. 어쨌던, 실적을 내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는 영업사원의 애환(?)이 느껴지는 작품.
두번째로 만나는 단편이 [영생 병원]인데,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둔 아들은 집에계신 아버지께 그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 할지 고심한다. 이윽고 마음을 정하고 본가를 찾은 아들은 경악한다. 사경을 헤매던 어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계셨던 것. 조사끝에 아들은 어머니의 정체를 간파하지만 깊은 고민에 빠진다. 진실을 알리면 어머니나 회복한줄로만 알고있는 아버지에게 충격을 안길것이고, 묻어두자니 그동안 불치병을 고쳐 부를 쌓아온 병원의 불법행위가 걸린다. 아들의 선택은.... 인간을 규정짓는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작품인데 이 질문의 해답을 위해 나의 소중한 가족을 소환하니 깊이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이성과 감성의 첨예한 대립을 느꼈달까. 김초엽 작가의 [관내분실]이나 한낙원 과학소설상 당선작 남유하 작가의 [로이서비스]와 궤를 같이 하는 작품인데,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를 과학기술로 메운다면 용인할 수 있을까?... 의미를 떠나서 마지막 반전에 소름 돋았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잡은 수작이다.
세번째 단편 [사랑의 문제]는 추리SF의 형식을 띈다. 배에 창을 맞고 쓰러진 인공지능 과학자와 그런 아버지를 안고 있는 피투성이의 아들. 이 장면을 목격한 인공지능 가사도우미. 아들은 아버지에게 상해를 입힌 범인으로 인공지능을 지목하고, 인공지능은 아들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이윽고 재판이 열리고 가사도우미 제작 회사까지 나서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 지는데.... 가족간의 불화와 인공지능의 야욕(?)이 흥미롭게 펼쳐지다가 막판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네번째 단편 [전차 안 인간]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인간들의 전쟁이 배경이다. 역튜링 테스트로 인간을 구별하여 말살하는 기존의 배경과 정반대인 아이러니한 상황을 그려내는 작품.
다섯번째 단편 [건곤과 알렉]은 이 단편집에서 [영생 병원]에 이어 두번째로 인상깊었던 작품이다. 슈퍼컴퓨터와 연결된 인공지능이 꼬꼬마 알렉과 함께 하면서 꼬맹이의 순수한 목적의식, 직선적 욕망의 표출 등을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인데, 아마도 작가의 딸과 함께 하면서 소재를 얻지 않았을까도 싶고 때론 지극히 단순한게 정답이 아닌가란 생각을 해봤다.
여섯번째 단편 [인간의 섬]은 제 2의 지구를 탐사하기 위해 지구를 떠났던 탐사대가 120년 만에 지구로 귀환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120년 만에 만난 지구인은 어딘가 어색하고 인간의 감정이 결여된 로봇 같아 보이는데..... '닉 클라크 윈도'의 [피드]와 '조지 오웰'의 [1984]를 믹스한 듯 하다. 이미 코로나 사태로 중국정부는 중국민들의 빅데이터를 수집하여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으니 여기서 더 나아가면 작품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을 듯. AI를 주제로 우리가 한번쯤 떠올렸을 법한 가장 익숙한 이야기다. 인간의 충동성, 비예측성을 부각시키는 작품.
베이징 빈민들의 삶을 바라보며 빈익빈 부익부의 명암을 그렸던 [접는도시]와 마찬가지로 이성과 감정, 죽음과 불사 그리고 차안과 피안까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공지능을 통해 지극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인간의 휴머니즘을 자극한다. 국내에 휴머니즘 SF 돌풍을 몰고 온 '김초엽'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유사한 정서를 가져가면서도 이 [인간의 피안]쪽이 좀 더 날카롭다고 해야할까? 중국 특유의 전체주의적 설정들이 이채롭게 다가왔다. 그냥 놓치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아시아에 단 둘 뿐인 휴고상 수상작가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