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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고고심령학자 (2017년 초판)
저자 - 배명훈
출판사 - 북하우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25p
독특하다. 신박하다. 개성적이다.
배명훈 작가의 따끈 따끈한 신작이 나왔다. 그동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단편으로만 접했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읽는 장편이 이 작품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부유하는 혼], [괴담의 테이프]에 이어 이번
작품도 빙의라는 심령 현상과 관련된 작품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_- 다만 같은 심령 현상이 소재이지만
앞선 두 작품과 이번 작품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라서 전혀 새로운 느낌의 작품으로 읽어 낼 수 있었다.
작가의 트윗에서 지난 겨울 눈 덮인 소백산 천문대에서 이 작품을 탈고 했다고 하는데, 첫 도입부 부터 눈
덮인 천문대가 그려져 트윗 사진이 자연스럽게 매칭되었다. 머....사진 같은 적막한 곳에서라면....고시 공부
라도 할 수 있을듯...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고학과 심령학이 합쳐진 고고심령학이라는 독특하고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켜 이야기를 끌어가니 빙의라는 익숙한 소재임에도 독특하고 개성적인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던것 같다.
살짝 설정을 들여다 보자면 고고심령학은 주류 학문으로 인정받진 못하지만 영감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심령현상을 관찰하여 그 현상속에서 고고학적 가치를 찾는 것을 말한다. 흥미로운건 심령현상속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제령행위가 아니라 퇴마나 제령행위 없이 고고학적 사실만을 연구한다는 설정이다. -_- 작품속
언급되는 예인데, 20층 부터 3층까지 매번 추락하는 혼령이 건물에 출현하는데, 고고심령학자들이 출동하여
하는일은 추락하는 혼령을 보고 그가 입은 의복을 스케치하여 혼령이 생존했던 시대의 의복 스타일을 고고학
적 관점에서 연구한다는 것이다... 그 혼령이 왜 건물에서 떨어지는지, 왜 20층부터 3층까지 출몰하는지는
관심대상이 아니란 것이다..-_-;;; 심령현상이 수반되지만 정말로 학문으로서 접근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읽다보면 학술지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정도로 체계적이며 분석적이다. 자칫 딱딱하고
지루한 작품이라 오해할지도 모르겠다만 개인적으론 독특하고 차별적인 설정의 배명훈 월드에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저명한 고고심력학자 문박사가 죽고 그의 가장 가까운 조수인 은수는 고고심력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이박사의 요청으로 천문대에 위치한 문박사의 서재 디지털화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던 중 서울 한복판에
일정 시간동안 30미터 높이의 성벽이 출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확인결과 성벽 발생은 혼령이 성벽에 깃든
심령현상임이 밝혀진다. 대규모 심령현상의 발생에 따라 이박사를 중심으로한 TFT팀이 꾸려지고 은수를 비롯해
요새빙의 전문가인 파키노티 박사는 독자적으로 서울의 요새빙의 현상을 파헤친다. 점차 성벽의 발생 횟수가
잦아지면서 수십명의 투신자살자가 발생되는등 요새빙의 현상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됨을 인지하면서
상황은 급변하는데.....
서울 빙의 라는 문제를 풀기위해 고대 장기속 기물인 코끼리의 정체, 구전 노래의 몬데그린 현상, 일제시대
경성의 지도 등등 퍼즐처럼 나열된 단서들을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파헤치고 연구하다 보면 어느새 흩어져 있던
퍼즐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고 마침내 문제의 해답을 얻게 된다. 그런데 이 단서들을 파헤치는 일련의 과정
들이 지적 유희를 자극하는 '알쓸신잡'급이라서 알아봐야 쓸데 없지만 전혀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와 개념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넋놓고 빠져드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특히 장기와 체스에 관한 이야기들은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흥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여태껏 '장이야', '멍이야' 거리며 그냥 두기만
했지 각 기물들에 대한 의미와 숨겨진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_- 어찌보면 심령 현상보다 장기
이야기의 분량이 더 많을 정도니....당연히 없겠지만 장기나 체스를 둘 줄 모르면 이 작품에 대한 재미를 100%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김보영 작가의 [저 이승의 선지자]도 그렇고 이번 [고고심령학자]도 그렇고 SF와 SF와는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심령현상이 믹스되는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는데 이질적인 외국과는 다른 익숙한 느낌의 동양적 심령에
대한 정서와 SF의 조합이 독특하고 신박하고 개성적으로 느껴져 개인적으론 좋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