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강지영
출판사 - 자음과모음
정가 - 13000원
페이지 - 303p
개만도 못한 인간들의 적나라한 민낯
개의 탈을 쓴 소년과 인간의 탈을 쓴 개가 어울리는 표지....얼핏보면 강아지와 노는 소년이
등장하는 발랄한 반려견 소설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제목도 그렇거니와...) 하지만 표지를
넘겨 첫 페이지를 보자마자 말랑한 환상은 산산이 부서진다. 9편의 단편 속엔 실로 개만도
못한(개님 미안합니다 ㅠ_ㅠ) 버러지 같은 인간군상들이 등장하여 내 속을 온통 후벼판다.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의 적나라한 민낯을 어떠한 가식도 없이 있는 그대로 때로는 참혹하게,
때로는 아련하고 슬프게 그려낸다. '강지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지만, 내겐
이 단편집 하나만으로 공포 장르 소설의 완소 작가로 아로 새겨질것 같다. 첫 표지를 넘기고
책날개에 인쇄된 작가의 미모에 놀라고 첫번째 단편의 잔혹하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에 놀라고
단편이 거듭될수록 깊어지는 인간적 비애에 놀라게 된다. 공포와 호러, 판타지가 혼재된 9편의
이야기는 어느하나 버릴것 없는 완성도와 재미 그리고 예상치 못한 충격적 결말을 선사하여
어릴적 즐겨보던 [환상특급] 혹은 [기묘한 이야기]를 본듯한(제목 앞에 잔혹을 붙여야 겠지만)
꿈같은(악몽같은???) 시간과 여운을 선사한다. 하드고어한 잔혹동화라는 점에서 '편혜영'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면, 이 작품은 지극히 정말로 잔인하리 만치 현실적이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는.....
1. 개들이 식사할 시간
PC방을 운영하는 강형은 어머니가 실종됐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실로 오랜만에 고향을 향한다.
경찰을 통해 어머니의 실종과 함께 재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강형은 의붓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갈피를 못잡고 고향집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재혼 상대가 자신이 지긋지긋하게 경멸하던 식용
개를 잡아 팔며 생계를 유지하던 장갑 아저씨라는걸 알게되는데......
- 표지의 그림과 같은 이야기다...개의 탈을 쓴 개만도 못한 강형....-_- 짐승도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은 물지 않는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인간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법...결국 비극적 결말은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그나저나 개를 도살하는 첫 장면은 너무 리얼하고 끔찍해서 작가가 도살
하는 모습을 보고 바로 묘사하는가 싶을 정도...
2. 눈물
공장의 폐기물이 흘러든 마을에 생명이 잉태되고 여자 아기가 태어난다. 오염 때문인지 엄마의
비행 때문인지 아기는 7달만에 밖으로 나오고, 숨쉬지 않는 아기를 땅에 묻으려던 엄마와 마을의
노인은 한참만에 숨을 쉬며 첫울음을 터뜨리는 아기를 보고 놀란다. 양쪽 눈 미간 사이의 세번째
눈에서 눈물대신 영롱한 보석을 떨어뜨리는 아기.....이때부터 아기가 소녀가 될때까지 마을 사람
들은 비밀리에 소녀를 집안에 가두고 온갖 가학적 고문을 통해 세번째 눈에서 보석을 짜내 보석을
판 돈으로 호위호식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고통 속에 소녀는 드디어 마을을 탈출할 기회를 얻게
되는데.....
- 그로테스크함이 넘치는 잔혹동화였다. 결말의 충격적 반전과 소녀의 마지막 선택까지 탐욕에
물든 인간의 잔혹성에 대해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3. 거짓말
아내의 막대한 빚과 사채업자의 횡포로 위장이혼을 한 여성은 집으로 찾아온 사채업자의 압력에
못이겨 콜라에 에프킬라 반통을 섞어 마시게 하여 목숨을 잃게 만든다. 얼마뒤 남편도 집으로
찾아와 화장실에 죽어있는 사채업자를 보지 못하고 갈증에 살충제가 든 콜라를 마시고, 그도
역시 정신을 잃는다. 두구의 시체를 본 여성은 이내 집을 뛰쳐나와 정처없이 헤메이다 한 남성을
만나는데......
- 에프킬라 반통의 콜라가 이렇게 위험한 것이다!...인간답게 살기위해 사채빚을 지고, 그 사채
빚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여자의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다...모든것을 잃고 나서 다시 만나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시리도록 차갑더라....
4. 스틸레토
어느날 당신이 나의 기대 쉴곳이란 말과 함께 알몸의 미모의 여성이 찾아온다. 이 여성은 죽고
또 죽어도 자유자재로 나이대를 바꿔가며 남성에게 알몸으로 찾아온다. 그렇게 수백번의 인스
턴트 생을 살던 여성의 뒷처리를 해오던 남성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되고, 여성은
병든 남성을 버리고 남성의 아들에게 달라 붙으려고 하는데......
- 죽고 또 죽어도 되살아나 남성에게 달라붙어 기를 빨고 사는 아메바 같은 여성을 보며 '이토
준지'의 [토미에]가 떠올랐다. 기묘한 설정과 속고 속이는 심리묘사가 잘 어울러진 작품.
5. 사향나무 로맨스
게임을 통해 여친을 사귀게 된 백수인 나는 여친의 헤픈 씀씀이 때문에 급하게 알바자리를 구하
던중 책읽기 알바 모집을 보고 신청한다. 도시를 벗어나 한참 시골로 들어간 외딴집. 고목나무
처럼 말라 비틀어진 노파를 따라 들어가 노파의 책장에서 책을 집어들고 첫 책읽기 알바를 시작
한다. 그런데 골라 잡은 책은 B급 성인 도색 포르노 소설이었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나는 책읽기
를 멈추는데......
- 역시나 옹이 투성이의 노파의 모습은 '이토 준지' 만화의 한장면을 연상케 한다. 젊은 남성이
읽어주는 포르노 소설을 들으며 성적 만족을 느끼는 노파의 모습은 '박찬욱'감독의 [아가씨]중
'김민희'가 포르노 소설을 리얼하게 읽던 장면과 오버랩 됐다. 공포 만화적 상상력과 괴담식
이야기가 어우려진 기괴하고 요상한 이야기.
6. 키시는 쏨이다
성인 AV배우 키시를 즐겨보며 DDR을 치는 경호, 같은 고등학교 동급생 소미를 짝사랑하는 경호.
혈기왕성한 경호에게 소미로 추정되는 여성이 나오는 포르노 동영상이 유출되어 돌아다닌다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 유출 동영상을 검색한다. 그리고 확인한 동영상속
여성은 소미가 확실하고, 영상속 섹스장소가 자신의 집. 자기방 침대위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에
빠지는데.....
- 허허....단편속 경호의 사이버 여친인 키시가 실존 AV배우 '키시 아이노'였다니...-_-;;;; 아...
너무나...지극히...현실적이다.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남성의 성적 생리를 자세히 알고 있는건지....
고등학생 소미의 문란한 섹스를 강하게 대두하면서 그녀가 직업여성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흘리듯 던져 가슴 아프게 만든다.
7. 이상하고 아름다운
친한 친구를 사고로 죽게 만들고 이후 실패자의 삶을 사는 자동차 세일즈맨 최장희는 점차 사회
에서 도태되며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듯 육체도 희미해져간다. 그렇게 아둥바둥 사는데
지쳐버린 세일즈맨은 생을 끊기 위해 숲속을 찾고 깊은 숲속을 헤매다가 신선을 만난다. 의문의
신선과 알까기 시합을 벌이는데......
- 실패한 인생의 패배자에게 찾아온 인생을 되돌릴 기회....9편의 단편중 그나마 휴머니즘 단편
인듯...-_-
8. 허탕
직업여성도 거부할 정도의 왕자지를 가진 대물 남성과 허공에 삽질하는 느낌이 들정도로 헐거운
여성이 만나 진짜 사랑을 나누 이야기...
- 내가 지어서 쓴게 아니라 정말 단편속에 나오는 표현이다...-_-;;;; 다시 말하지만 이 작가
어떻게 이렇게 남성의 성적 심리를 파악하고 있는건지.....너무 적나라해서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그러나 저러나 상처입은 외롭고 고독한 남자, 여자의 진짜 리얼 러브스토리....
9. 있던 자리
허울좋은 말만 번지르르한 남편을 둔 죄로 어린 딸과 지지리 가난하게 사는 박복한 여성은 어떻게든
살기위해 발버둥 치지만 오늘도 남편은 새로운 전도 유망한 사업아이템이라며 의절한 남동생에게
돈 삼천을 빌려오라고 꼬셔댄다. 연이은 실패로 친가와 의절당한 여성은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닭
똥같은 눈물을 흘려대는 남성의 눈물 작전에 마음이 약해진 여성은 또 한번 속아넘어가 유치원을
마친 딸과 함께 남동생의 집을 찾아가는데.....
- 아...젠장....정말 욕나오는 단편이다...제발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너무나 가혹한
이야기라 도중에 책을 덮고 싶을 정도였다....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남편 새끼와 가난에 찌들은
여자...그리고 너무나 티없는 딸래미...ㅠ_ㅠ...아....그리고 모든 짐을 내려놓는 결말을 보며
내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단편들중 가장 슬프고 답답하고 짜증나는 작품이었다.
9편의 단편중 버릴 단편 하나 없이 모두 독특하고 기묘한 세계를 보여 준다. 때로는 이기적인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대해, 때로는 탐욕에 물든 인간들의 잔인함에 대해, 때로는 성정체성과 진짜 사랑에
대해, 때로는 저주에 씌인 잔혹한 운명에 대해,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때로는 잘못된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에 대해, 때로는 상처받은 자들의 사랑에 대해, 때로는 박복한 인생에 대해..
어찌보면 터부시 되어 입에 담기 조차 민망하고 비밀 스러웠던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들려 준다...
9편의 단편이 꿈만 같다. 한편 한편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깝다는 생각....그리고 한편 한편 남기는
진한 여운.....그리고 남는 씁쓸한 뒷맛....서평단에 뽑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이라서 좋았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정말 책속에 빨려 들어갈 정도로 흡입력있는 작품이었다. 내가 마이너한 취향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2017년에 가장 가슴에 남고 오래도록 뇌리에 박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