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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읽는 남자
안토니오 가리도 지음, 송병선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11월
평점 :
시체 읽는 남자 (2016년 초판)
저자 - 안토니오 가리도
역자 - 송병선
출판사 - 레드스톤
정가 - 15000원
페이지 - 575p
파란눈의 외국인이 본 고대 중국
스페인의 이름도 낯설은 작가가 고대 중국의 최초의 법의학자에 대한 소설을 썼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사라고사 국제 역사소설상을 수상하고 프랑스에서 출간된 최고의
역사소설에 주어지는 그리프 누아르 상과 프랑스 렉퇴르 셀렉시옹상을 수상했다? -_-
머... 불란서의 상이름이야 들어본적도 없지만 어쨌던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스페인의 공학도가 써낸 이 작품으로 이런 상을 줄줄이 받아 냈다는 것은 픽션이던
팩션이던 허구와 사실의 비율이 얼마나 되던간에 나름 철저한 고증과 뛰어난 스토리
텔링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았나 싶다. 중국 최고의 검시관이자 인류
최초의 법의학자 '송자'의 이야기 라는것 하나만으로 궁금증이 일었고 좋은 기회가
닿아 출판사로 부터 책을 받아 읽게 되었다.
사실 난 역사물(소설 포함)을 정말 싫어 한다. 특히나 외국의 역사물은 자세히
알지도 못하거니와 다른 세계관이기에 이해하기도 어려워 질색하는데, 수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중국의 아~~~~주 오래전 1186년에 태어난 인물의 작품이라니...
게다가 거의 600페이지의 분량...ㄷㄷㄷ 솔직히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까 무척 걱정
했는데, 막상 책을 펴드니 그런 우려가 말끔히 씻겨 내려 갔다. 배경은 동양의 고대
중국이자만, 화자가 서양인이라서인지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묘사 같은 군더더기 없이
시원시원하게 스토리 중심으로 전개되어 송자의 인생 그 하나에만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분량은 대하 역사극 조선왕조 500년인데, 읽히는 속도는 12부작 미니시리즈
랄까...-_-
시대는 송나라....펭판관의 조수로서 각종 범죄 사건을 경험한 송자는 할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수도 린안에서 시골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망나니 형 송루의
지시로 매일 매일 강도 높은 농사일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논을
갈다가 쟁기에 걸린 목이 잘린 이웃집 샹의 시체를 발견하고 때마침 송자의 아버지를
만나러온 펭판관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펭판관은 범인을 잡기 위해 시체를 검시하고
송자는 잘린 목의 입에 틀어막혀 있던 천조각을 펭판관에게 증거로 건낸다. 천조각과
펭판관의 기지로 송루가 범인이라는 것을 밝혀내고, 졸지에 살인자로 몰린 송루는
송자를 저주하며 투옥 된다. 죄책감에 시달린 송자는 루의 죄를 경감 시키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데.....
송자는 송나라에서 1186년~1249년까지 살며 [세원집록]이라는 법의학서를 집필하며
인류 최초로 법의학에 기틀을 마련한 실존 인물이다. 이 작품에서는 실존인물이었던
송자와 몇몇 실존했던 인물들을 등장시켜 20살의 송자가 법의학자로 들어서게 된 계기와
그의 뛰어난 능력으로 국가를 전복 시킬 위험을 파헤쳐 황제에게 인정받고 나라의
법의학자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팩션이다. 이야기 자체는 허구일지 모르나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과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러 범죄 에피소드가 실제 송자의 법의학
지식으로 범인을 잡은 사례를 차용하여 허구 인줄 알면서도 실제적 몰입감을 갖게 만든다.
변변한 도구도 없이 그저 시체를 육안으로 검시하여 상처에 묻은 작은 흙이나 티끌 등
작은 단서로 유추하여 범인을 잡는 장면들은 과학기술로 무장하여 빈틈 하나 없이 탐색해
범인을 잡는 CSI 와는 또 다른 원초적 재미를 느끼게 한다. CSI보다는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상황을 유추해내는 [셜록]과 닮아 있다고 생각된다.
어찌됐던 기본적으론 추리 소설의 틀을 유지하면서 송자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전기적 성장 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는것 같다. 나름 흩뿌렸던 떡밥들도 에필로그를 통해
회수하고 있고, 결말도 깔끔하고 여기저기 반전도 포진해 있어 정말 즐겁게 일독 할 수
있었다. 머랄까...번뜩이는 기지와 관찰력으로 범인을 잡는 송자의 모습은 600페이지의
[판관 포청천]을 본 느낌이랄까...
딱딱한 역사 소설이라는 편견 없이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추리 소설이라 생각된다.
덧1 - 처음 나오는 샹 살인사건에서 펭판관이 범인을 잡은 방법은 실제 송자가 범인을
잡은 방법을 차용한것이다.
덧2 - 중국에서 2005년 [대송검시관]이란 제목으로 송자에 대한 이야기를 드라마로 방영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