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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ㅣ 비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평점 :
여름비 이야기 (2025년 초판)
저자 - 기시 유스케
역자 - 이선희
출판사 - 비채
정가 - 17800원
페이지 - 359p
음습한 장마비처럼 젖어드는
[가을비 이야기]의 속편 [여름비 이야기]가 출간됐다. 사회파와 본격 등 경계를 짓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써온 '기시 유스케'의 10년의 공을 들인 '비 이야기' 호러 시리즈로 이번 작품집에는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유니크한 3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욕망에 잠식돼 무너져 내리는 인물과 그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 음습한 장마비처럼 공포에 흠뻑 젖어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5월의 어둠
아주 오랜만에 하이쿠를 가르치던 스승을 찾아온 제자는 남동생이 실종되기 직전 자신의 하이쿠를 책으로 엮은 문집을 들고 온다. 제자는 이 하이쿠에 담긴 싯구 속에 동생의 실종의 실마리가 담겨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스승은 문집을 보며 짧은 싯구 속에 함의된 의미를 추리해가는데....
2. 보쿠토 기담
자주 찾는 바 카페 파피용에서 유리그릇을 본 이후로 나비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된 요시타케에게 다가온 승려는 이 꿈이 요시타케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꿈이라며 경고를 남긴다. 승려의 비방을 따라 나비 악몽에 대비를 하지만 요시타케는 검은 나비를 따라 꿈속의 세계에서 목숨을 건 시험에 들게 되는데...
3. 버섯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간 아내. 잠시 쉬다 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라진 텅빈 집 마당에 버섯이 하나둘 씩 자라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알록달록 강렬한 색상의 버섯이 마당 전체를 뒤덮는다. 하지만, 이토록 생생한 버섯은 어째서인지 만질수가 없다. 실체가 없는 버섯이라니. 내가 미친 걸까...
일단 첫작품을 읽고 느낀 건 하이쿠라는 이질적인 일본의 문학이 허들이 될 것 같지만 짧은 시 안에 함축된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이 다중 추리로 진행되면서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는 미스터리의 묘미를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다만 아쉬운 건 선생이 반복적으로 치매임을 강조하는 시점부터 이야기의 전말을 파악하게 된다는 점이다. 등장인물이 단 두 명 뿐이라 어쩔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만... 기억의 저편으로 도망치는 선생을 단죄하기엔 조금 약하지 않나 싶은 아쉬움도 남는다.
두번째 작품은 현실과 꿈이 교차되면서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이다. 검은 나비의 꿈 그리고 오컬트적 주술의 대결. 나비 꿈과 밝혀지는 진실 등. 꿈속의 사건이 진행되면서 동양의 인셉션 같은 느낌도 들어 이채로웠다. 더불어 작가의 곤충에 해박한 지식에 역시 또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단순히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 지식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재능이 부러울 따름.
[버섯]은 이 작품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 [가을비이야기]에서 [푸가]의 비등하다고 봐도 좋을 듯 했다. 집주인의 눈에만 보이는 버섯을 둘러싸는 이야기라는 점. 버섯의 색깔, 종류에 따른 숨겨진 의미.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심령현상의 과학적 해석이랄까. 그 부분을 본인도 응용해보고 싶을정도로 신박했다. 여기서도 심령현상을 바라보는 과학적 시각과 버섯의 종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되는데, 일반인이라면 난해한 부분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호러와 엮어 읽어내게 만드는(지식 전파의 수단?) 능력이 무척이나 세련되서 놀랐다. 호러 소설이지만 논리적으로 범죄자를 추려내는 추리소설의 구성이라 익숙하고 좋았다.
전체적으로 하이쿠, 곤충, 버섯이라는 익숙치 않은 장작들로 불을 지펴 처음에는 타오르기 어렵지만, 일단 불씨만 붙으면 어느 재료 못지않게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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