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시체를 부탁해 (2024년 초판)
저자 - 한새마
표지디자인 - 진수지
출판사 - 바른북스
정가 - 13800원
페이지 - 236p
한국의 미나토 가나에. 이야미스 여왕의 첫 단편집
동료작가이자 등단 이래 이어져온 오랜 글벗 '한새마'작가의 작품활동을 집산한 단편집이 출간됐다. 사실 출간 직후 리뷰를 올리고 싶었으나 설령 친분으로 인한 무지성 극찬 리뷰로 보일까 저어되어 시간차를 두고 올리는 점을 염두에 두기를 바란다.
시문학을 전공한 작가는 선택하는 문장 하나하나에 남모를 공을 들인다. (본인으로선 이해할 수 없지만 그쪽의 감성이 있나보다. 좌우간,) '히가시노 게이고'를 떠올리는 간결한 단문임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한 문장으로 깊고 진한 감수성이 묻어나는 작품을 선보이는게 작가의 첫번째 특징이다.
두번째는 표제작을 포함해 거의 모든 작품에 '모성'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점이다. 모성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터부시되는 국내에서 모성 자체를 추리소설의 재료로 삼는 작가의 작품은 가히 도발적이다. 하지만 네 아이를 키우면서 힘겹게 작품활동을 펼치는 '엄마' 작가로서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가는 그녀의 배경을 안다면 작품은 기존과는 전혀 다르게 읽히는 마법을 선사한다. 그녀의 개인사를 언급하기는 어렵다. 다만 [계간 미스터리 2022 가을호]에 소개된 신인상 인터뷰로 단편적이나마 그녀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책에는 등단 이후 지금까지의 작품을 모은 7편의 작품이 담겨있다. 이 단편집을 내기까지의 우여곡절은 차치하더라도 작가생활의 전부를 쏟을 정도로 정성을 들인 작품집임은 분명하다. 기존 작품을 모두 수정하여 장르를 바꾸거나 범죄동기를 바꾸거나 트릭의 복선을 보강하는 작업을 거쳐 기존 작품과 차별화를 둔다. 기존에 작품을 읽었던 독자들도 새롭게 즐길 수 있는 배려를 마련한 것이다.
1. 낮달 - [괴이한 미스터리 : 저주 편] 수록작 (2020년)
'저주'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성향이 SF적 색체를 띄어 고생했다는 후문. 매력적인 엔솔러지 였으나 본인은 등단 전이라 참여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솔직히 본인은 수정하기 전 원래 작품이 취향이었다. 원작이 궁금하다면 [괴이한 미스터리]와 비교해도 좋을 듯 하다.
2. 엄마, 시체를 부탁해 [계간 미스터리 2019 여름호] 수록작 (2019년)
도발적인 작품집의 표제작이자 그녀의 등단작이다. 딸아이가 엄마에게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충격적 도입부는 근래 선보이는 드라마나 영화들과 놀랍도록 유사하여 놀랍다. 딸을 믿었던 엄마의 심리변화가 풍후한 묘사로 전개되어 긴장감을 더한다. 이때만 해도 트릭보다는 심리묘사 위주였다고 할 수 있다.
3.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었습니다 [2035 SF 미스터리] 수록작 (2022년)
그녀가 처음 도전하는 SF 미스터리 작품. 수많은 시놉에서 방향성을 찾고 작품을 써내려가는데 작게나마 함께 했던 기억이 새록하다. 발표 당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리뷰가 더러 있었는데, 초고는 하드 SF에 버금갈 정도였다는 사실. ㅎㅎㅎ SF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한 SF작가들의 작품에 비견될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선보였다.
4. 마더 머더 쇼크 [네메시스] 수록작 (2022년)
위태로운 임신을 경험했던 작가의 실례를 작품에 녹여냈다고 한다. 바뀌는 시점에 따라 숨막히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한새마'식 이야미스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이라 평한다.
5. 어떤 자살 [계간미스터리 2020 가을, 겨울호] 수록작 (2020년)
개인적으로 '한새마' 작품의 정점으로 생각하는 작품이다. 물론 본인이 개인적 취향인 본격미스터리로서 선정했음을 언급한다. 다양한 리포트에서 보여지는 단서들과 종국에 그 단서들이 모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은 그녀의 자질이 이야미스에서 그치기에는 모자람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6. 잠든 사이에 누군가 [미친 X들] 수록작 (2024년)
그녀의 [마더 머더 쇼크]를 봤다면 반길만한 작품이다. 스릴러의 정석이기도 한 내가 뭔짓을 했는지 불분명한 상태로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초고에서 200%는 좋아진 작품.
7. 여름의 시간 [여름의 시간] 수록작 (2021년)
엔솔러지의 표제작이다. 작품집에 여러 선,후배 작가의 작품들이 실렸지만 솔직히 베스트를 뽑으라면 망설임 없이 [여름의 시간]을 꼽는다. 시간의 역순으로 전개되는 사건은 기존 인과와는 전혀 다른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진행형이다. 앞으로 공개될 '한국본격미스터리작가클럽'의 대망의 첫번째 작품집에서는 [어떤 자살]에 이어 새로운 본격 미스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쉽게도 이번 작품집에는 실리지 못한 작품(개인적으로 [어떤 자살]에 이은 두번째 선호작품)은 다음 단독 작품집에서 선보이길 희망해본다.
한국의 '미나토 가나에'. 아니, 그냥 한국의 '한새마'로 자리매김 하길 기대하며, 동료작가이자 한 명의 팬으로서 열렬히 그녀의 활동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