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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평점 :
가을비 이야기 (2023년 초판)
저자 - 기시 유스케
역자 - 이선희
출판사 - 비채
정가 - 16800원
페이지 - 311p
깊은 밤을 적시는 스산한 이야기
'기시 유스케'의 작품은 [검은집] 하나를 읽었을 뿐이다. [미스터리 클락]은 극악의 난해함을 참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으니 결과적으로 단 한 권 뿐. 이제껏 추리작가로 알고있었건만 호러도 쓴다는 건 이번 [가을비 이야기]를 통해서 처음 알았다. '진짜 지옥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야'라는 표지의 문구가 [가을비 이야기]를 대표하는 문구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품집에 담긴 네가지 이야기는 단순히 호러소설을 떠올릴 때 상상할 법한 기괴한 현상이나 살육을 그리는 그것이 아니다.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기묘한 이야기들. 이야기 끝에 남는 쓰디쓴 뒷맛까지.
차가운 빗물의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1. 아귀의 논
내 안에 아귀가 있오. 사랑에 굶주린 아귀 말이오.
2. 푸가
어릴적부터 꿈을 꾸고 난 뒤 유체이탈을 경험했습니다. 주술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막고 있지만. 얼마전부터 또다시 기묘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대양위에 떠있는 꿈. 아무래도 다음 유체이탈은 살아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3. 백조의 노래
자네 이 노래를 들어봤나? 하늘 끝까지 솟을 듯한 천상의 고음. 하지만 이 가수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단 말이지. 그래서 고민 끝에 탐정을 고용했다네. 그녀의 생애를 추적할 탐정 말이야.
4. 고쿠리상
야. 고쿠리상 알지? 아냐 아냐. 이건 그냥 고쿠리상이 아냐. 이건 러시안 룰렛 고쿠리 상이라는 거야. 어때? 같이 해보지 않을래?
개인적으로 순위를 따지자면 '푸가 > 고쿠리상 > 아귀의 논 > 백조의 노래' 였다. [푸가]는 특수설정 미스터리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결말의 복선을 기가막히게 깔아 놓는다. 유체이탈이라는 오컬트 적인 설정, 드림캐쳐로 꿈을 막는 주술사의 처방 등 너무나 취향 저격의 이야기에 반전의 결말까지. 작품집 중에서 단연 Goat!
[고쿠리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분신사바에 러시안룰렛 요소를 믹스하여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4명의 참가자. 누군가는 소원을 이루고 누군가는 귀신의 총알을 맞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 과연 누가 죽음을 맞이할지. 소원을 이룬 생존자는 궁극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지. 다음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흡인력을 가진 작품. 다만 판타지적인 결말은 앞서 쌓아온 오컬트 이미지에 그다지 어울리는 결말은 아닌듯 했다.
[아귀의 논]은 쇼트스토리에 가까운 단편으로 작품집의 기묘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작품이며 [백조의 노래]는 음악, 노래에 대한 공포로 '러브크래프트'의 [에리히 짠의 음악]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이다. 작품집 중 가장 호불호가 갈릴만한 작품으로 본인에겐 불호 쪽에 더 가까웠다.
오컬트 쪽에 가까운 이야기들이지만 결고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주어 한 번 잡으면 끝까지 보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다. 그것이 '호'이든 '불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전체적으로는 기존의 기담/괴담집과는 다른 전개에 신선함을 느꼈다. 가을비 다음으로 [겨울비 이야기]도 있다고 하니 하루 빨리 국내 출간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