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카틀리포카
사토 기와무 지음, 최현영 옮김 / 직선과곡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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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카틀리포카 (2023년 초판)

저자 - 사토 기와무

역자 - 최현영

출판사 - 직선과곡선

정가 - 20000원

페이지 - 639p

연기를 토하는 거울

작년 22년 미스터리 랭킹을 석권한 [흑뢰성]에 가려 아쉽게도 2위에 머물렀던 비운의 주인공. 바로 이 작품 [테스카틀리포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뜻을 알 수 없는 낯선 제목과 다소 난해한 표지까지. 대부분 제목이나 표지를 통해 작품 대강의 분위기를 예상하게되지만 유독 이 작품만은 장르 그대로 딱 '미스터리'에 휩싸인 작품이었다. 그런만큼 국내에 이렇게 발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 놀랍고도 반가웠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난 직후의 감정을 표현하자면 '처절하고 경이롭다'이다.

육백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볼륨에 여백마저 거의 없는 빽빽한 텍스트로 가득한 이 책을 거의 3주는 꼬박 붙들고 있었던것 같다. 일본 미스터리를 읽어오면서 간결한 문장과 빠르게 치고 받는 대화체에 익숙한 나로선 작품에 대한 첫 인상은 상당히 곤욕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곤욕이 전복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빼곡한 텍스트 사이에서 고대 남미의 땅에 뿌리박고 살아왔던 아스테카 신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고 온 몸에 피를 흠뻑 뒤집어 쓴 파괴신 테스카틀리포가가 몸 밖에 나와서도 여전히 펄떡 거리는 심장을 하늘 높이 치켜든 채 살육의 노래를 읇조리는 듯한 환상이 펼쳐진다.

그렇다. 까마득한 고대와 현재를 잇는 잔혹한 폭력의 대서사시.

그것이 [테스카틀리포카]이다.

코시모.

마약 밀매상을 피해 고향 멕시코를 떠나 일본까지 흘러들어온 루시아는 일본 조직폭력배 고조를 만나 코시모를 잉태한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일본까지 건너왔건만 루시아가 꿈꾸던 안정은 멀기만 했다. 집안 사정은 점점 안좋아졌고 남편은 술에 찌들어 폭력을 휘둘렀으며 루시아는 아들 코시모를 방치한 채 마약에 중독된다. 농구에 빠져 매일같이 농구공을 들고 공원에 가던 코시모는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소동을 목격한다. 아빠가 엄마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억지로 빼려 하는 것이다. 부모의 싸움에 말려든 코시모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르고만다. 그의 나이 13살이었다.

발미로.

멕시코 거대 마약 카르텔로 군림하던 카사솔라스 형제중 둘 째인 발미로는 상대조직의 기습에 꼼짝 없이 도망자 신세가 되버린다. 아스테카 신을 섬기던 그의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모든 행동과 결정을 신의 뜻에 맡기던 발미로는 멕시코를 떠나 자카르타를 거쳐 일본에 다다른다. 일본땅을 밟던 그의 머리속엔 이미 일본에서의 새로운 비지니스와 세력을 불려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 피의 복수를 하겠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일본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믿을만한 조직원을 고르고 훈련시키던 그의 앞에 나타난 거대한 남자의 정체는.....

혹자가 콜롬비아 거대 마약 카르텔의 이야기를 다룬 인기 미드 [나르코스]를 이 작품에 비유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안타깝지만 [나르코스]를 보지 못해 비교해볼 수는 없었다. 다만 한국판 [나르코스]라는(물론 나르코스에 많이 모자라다는 평이 있지만) [수리남]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과의 비교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각 인물들의 서사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면에서 [아이 앰 필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마약 밀매상이 이야기를 이끄는 주축이고 그들의 수위 높은 잔혹한 범죄가 난무하지만 단순히 범죄자와 이를 저지하려는 자의 숨막히는 서스펜스가 전부는 아니다.

'전쟁의 신까지도 초월하는 그 신의 숨겨진 진짜 이름을. 코시모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테스카플리포가 (연기를 토하는 거울)

'향과 함께 피어오르는 연기, 희생제물의 심장, 모든 것은 그를 위한 것이었다.'

_484p

세기를 이어 내려오는 인간의 폭력성을 우리에게 다소 낯선 아스테카 신화를 통해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일족의 안녕을 위해 살아있는 제물의 심장을 바치는 고대인들과 쾌락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현대의 범죄자들이 묘하게 대조된다. 테스카틀리포카를 추종하는 발미로와 테스카틀리포카의 현신인 코시모가 가족으로 묶이는 과정 또한 운명적이다.

사실 백마디 말은 필요 없다. 일단 작품을 읽는 순간 파괴신의 힘에 압도돼버릴 테니 말이다.

선 굵은 남미의 범죄에 일본의 집요한, 집착적인 디테일이 첨가되어 영미권 범죄물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느낌의 작품이 탄생했다. 더군다나 작가는 순문학도로 데뷔하여 불과 3년의 자료조사만으로 이런 작품을 써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관의 비운의 작품이라는 말이 너무나 와닿는다. 이제껏 봐왔던 일본 미스터리와는 결이 다른 새로운 지평을 여는 범죄소설이었다.

아직 풀지 못한 코시모의 이야기를 좀 더 보고 싶다는 바램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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