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야요이 사요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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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우리의 앞머리를 (2022년 초판)

저자 - 야요이 사요코

역자 - 김소영

출판사 - 도서출판양파

정가 - 14800원

페이지 - 297P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일은 설랜다. 더구나 '제 30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 우수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땐 더욱 기대감을 갖게 된다. 자칫 증폭된 기대감 때문에 정작 작품에서 재미를 못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다행히도 이 작품에는 전혀 해당사항이 없었다. 뭔가 함축적인 제목과 햇살이 비치는 도서관 창가에 선 남학생을 그린 표지에서 풋풋한 사랑이 넘치는 청춘 미스터리를 떠올리며 페이지를 펴들었다.

하지만.... 그런 말랑한 감정일랑 접어 두는게 좋을 정도로 작품은 굉장히 깊이있고 진중했다. 띠지의 '평생 끝나지 않을 첫사랑 이야기'에 속으면 안될 것이다. ㅎㅎㅎ 시궁창 같은 비참한 현실속에서 손에 더러운 피를 묻혀가며 일구어 나가는 숭고한 사랑. 그들의 헌신과 희생이 너무나 애틋하게 다가온다.

탐정 사무소에 잠시 있었던 경력만으로 이모의 호출을 받은 유키는 이모에게서 생각지 못한 의뢰를 받게 된다. 이모부의 죽음에 사촌동생이 범인으로 엮여있는지를 조사해 달라는 것. 사촌동생 시후미는 사실 이모와 이모부의 친부모가 아니었다. 이모 부부의 딸이 집을 뛰쳐나가 날건달과 낳은 아들을 양자로 거두었던 것이다. 족보상으로 친할아버지였던 이모부는 시후미를 사랑으로 키우지 않았다. 성장하는 내내 시후미의 일거수 일투족을 정서적 학대에 가까운 엄격한 규율로 키워온 것이다. 이미 시후미는 알리바이상 이모부의 사망과 관련이 없다는 경찰 발표가 났지만 이모는 시후미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학창시절 차갑도록 냉정하고 감정이 결여된 시후미를 과외시켰던 유키는 성인의 시후미를 상상하며 그의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중학생시절 시후미와 친하게 지냈던 혼혈아 리쓰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하는데.....

복잡한 일본식 이름과 뒤엉킨 가계도 때문에 초반부 헷갈리고 집중하기 힘든 고비가 있다. 하지만 일단 이름과 캐릭터의 관계가 명확해지면 그다음부터는 은밀한 비밀을 간직한 십대 청년들(시후미와 리쓰)에게 순식간에 빠져들게 된다. 두 가족의 집안에 연이어 벌어지는 비극적 사건과 사고들. 그리고 사건들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소년. 실낱같은 단서를 바탕으로 사건의 진실과 복잡한 관계를 추리해 나가는 유키. 그리고 드러나게 되는 비극적 진실들까지....

뭣보다 출산부터 비극의 씨앗을 품고 태어난 소년들의 절망적 상황속에서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벌이는 수년간의 노력과 인내가 복선과 트릭에 녹아있어 놀라움을 안긴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살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우정을 지키기 위해 그들이 흘린 피는 종국에 그들을 옥죄는 갈고리로 돌아온다. 마지막 열린 결말은 작가가 독자에게 그들의 죄에 대한 벌을 결정하라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자력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아동 학대의 끔찍한 실상이 작품 전반에 무겁게 걸쳐있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지 못했던, 아니 관심조차 없었던 어른들의 무능함을 유키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게 한다. 시후미와 리쓰의 평생 끝나지 않을 사랑이야기. 이제는 그들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이다.

* 서평단으로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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