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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의가 모이는 밤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2년 5월
평점 :
살의가 모이는 밤 (2022년 초판)
저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역자 - 주자덕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68p
우연이 집약된 광기의 집단 학살극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기껏해야 이번 [살의가 모이는 밤]까지 3편. 그중 그의 세번째 작품이자 지금도 명작으로 손꼽히는 [일곱 번 죽은 남자]는 기발한 특수설정이 어우러진 수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으로 내 안의 작가의 작품 순위 뿐만아니라 다른 미스터리를 통틀어 상위권 순위가 바뀌어버렸다.
기똥차다. 끝내준다. 거침없는 문장과 가감없는 표현. 다소 무리해보일수도 있는 설정을 밀어붙여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뚝심과 패기! ㅎㅎㅎ 그닥 기대없이 펴들었으나 몇 페이지만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페이를 덮고 나면 왜 제목이 [살의가 모이는 밤]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리라. '히가시노 게이고'의 [조인계획]을 보고 범인이 직접 추리를 해나가는 작품을 쓰고 싶어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조인계획]은 보지 못했으나 '아. 나도 이런 식으로 써봐야지' 하고 내놓은 결과물이 이정도라니. 게다가 명작이라 불리우는 [일곱 번 죽은 남자] 다음으로 쓴 장편이 이 작품이라니. ㅋㅋㅋ 작가의 천재성에 혀를 내두른다.
[대량 학살의 별장]
대학교 교수를 짝사랑하는 소노코의 성화에 못이겨 마리는 폭풍우를 뚫고 별장에 도착한다. 하지만 소노코와 마리를 맞이한 건 교수도 아니고 교수의 아내도 아니라 대학교 학생으로 일주일간 별장을 지키기 위해 고용됐다는 키 큰 청년 뿐. 이후로 형사, 셔틀버스 운전기사, 휠체어를 탄 노인을 모시고 호텔을 가려던 남편과 부인이 산사태를 피해 별장에 모인다.
모두가 처음 보는 낯선 이들. 기묘한 조합과 수상한 분위기. 천둥 번개가 치던 그날 밤.
광기의 대량 학살극이 펼쳐진다.
[살인사건을 목격한 형사]
탐문 조사로 만났던 여성을 잊지 못해 급기야 한밤 중 그녀의 멘션에 몰래 침입한 형사 미모로. 마침 침대에서 남자와 격렬한 섹스중이던 여성을 몰래 엿본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여성이 눈치채지 못하게 화분에 손을 뻗더니 그대로 여성의 머리에 내려친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여성의 얼굴을 화분으로 짖이기는 남자. 그리고 살해 장면을 지켜보는 형사. 다음날. 형사는 사전 현장을 찾지만 자신이 본 현장과 완전히 달라진 것에 적잖이 놀라는데....
간략 줄거리대로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특히나 마음에 든 것은 살육 별장의 이야기이다. 정석적인 클로즈드서클의 설정을 따라가지만 알고보면 이것도 작가의 고도의 농락임을 알 수 있다. 생각해보면 본인이 일미에서 가장 싫어하는 XX트릭, XXX트릭, XX트릭 세 가지를 트릭을 사용하는데(아마도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독자들도 싫어할만한 트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읽고나면 기막힌 쾌감을 느끼게 만드니 오히려 그런 트릭들을 역이용하여 비트는 느낌이랄까.
결말을 두고 "어라? 뭐지?"라고 느낄 사람들이 있을 수있다. 하지만 앞서 부자연스러웠던 상황들을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게 된다. 작가가 깔아놓은 복선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이게 가능해?' 라고 느끼는 지점이 존재하는데 그 지점의 반전을 맞춰 보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될 듯 싶다.
요즘 작품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거칠고 날 것의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작품이 나왔던 99년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그 시절의 거친 느낌이 지금에서는 굉장히 강렬하게 와닿는다.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패기넘치는 기발함이 가득 담긴 소설이며 일단 숨쉴틈 없이 펼쳐지는 별장 집단 학살극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