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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부녀자 고민상담소
김재희 지음 / 북오션 / 2021년 10월
평점 :
경성 부녀자 고민상담소 (2021년 초판)
저자 - 김재희
출판사 - 북오션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15p
경성 신여성들이 펼치는 심리 미스터리 추리극
경성 하면 '김재희'. '김재희' 하면 경성을 떠올리게 된다. [경성 탐정 이상]시리즈의 종료 후 오랜만에 그녀의 주무대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미스터리물이 출간됐다. 페미니즘 열풍에 발맞춰 개화기 신여성 3인방을 주역으로 부녀자들의 은밀한 고민을 상담하고 해결하는 심리 미스터리 작품이다. 조선의 남성 중심 가부장적 사회상과 외국의 개방적 문화가 공존하던 혼란의 경성에서 찬의, 라라, 선영은 편견과 차별이라는 족쇄를 풀고 자유의 날개짓을 펼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왔지만 취직을 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찬희는 월세가 저렴한 경성의 공유 하우스에 입주한다. 그곳에서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라라와 이화여전에 재학중인 선영과 뜻을 모아 경성 부녀자 '성'고민상담소를 개업한다. 비록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 상담소를 찾아오는 부녀자와 남성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은밀한 고통을 털어놓고, 라라는 이론적으로, 탐정 조수를 했던 찬희는 발로 뛰며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 경성에서 여성들을 살해 후 머리채를 벗기는 '경성 잭 더 리퍼' 연쇄살인범이 활개를 치고. 부녀자 고민상담소의 3인방은 이 살인사건과 엮이게 되는데.....
근래에는 부부간의 은밀한 성적 고민을 아예 얼굴을 까놓고 나와 이야기 하는 [애로부부]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정도로 개방적인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허나 아무리 개화기라고는 하나 성적 고민을 남부끄럽고 터부시 하던 식민지 근대시기에 남모를 고민으로 속을 끓였을 부녀자는 얼마나 많았겠는가. 배경은 근대시기이나 작품에서 거론되는 케이스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사람들이 속을 끓이고 고민하는 걱정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가감없는 적나라한 묘사와 특이한 케이스만으로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한듯 했다.
노출증에 걸린 중년 여성의 숨겨둔 욕망. 발기부전으로 고민하는 남성의 예상치 못한 패티시, 난잡한 꿈으로 고통받는 여성 등등. 그들의 말 못 할 증상과 그 증상의 원인을 상담을 통해 거슬러 올라가고 심리적 트라우마의 원인에 근접하는 기법들이 심리 미스터리의 묘미를 충족한다. 더불어 경성 킨재이 리포트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작가의 성적 심리치료에 대한 자료수집과 열의가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어 놀라웠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은 경성의 잭 더 리퍼이다. 이 연쇄살인범의 타겟으로 죽을 뻔한 찬희와 라라는 연쇄살인범의 심리를 분석하고 살인범의 성적취향과 피해자간의 공통점을 유추하여 수사의 범위를 좁혀 나간다. 한마디로 한 개의 중심 사건과 별개의 상담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성이라는 말. 타인의 은밀한 비밀을 엿보는 관음적 호기심을 증폭하면서 곳곳에 페미니즘, LGBT 같은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단서를 흘리기도 한다. 더불어 결과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래이 박사를 라라 박사의 라이벌로 등장시켜 독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너의 나이에 너만이 쓸 수 있는 것을 써라' 40대 후반 갱년기 장애를 겪고 있는 작가 본인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잘 써낼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 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펼쳐질 김재희 추리월드가 기대되는 이유는 작품에 녹아있는 그녀만의 색깔과 고민이 작품에 그대로 녹아있기 때문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