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 요리를 하는 순간 살인이 시작된다
최정원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시피 (2021년 초판)

저자 - 최정원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27p



한국형 이야미스란 바로 이런 것이다!



'요리를 하는 순간 살인이 시작된다.' 

자. 읽는 것만으로 군침도는 식욕을 자극하는 동시에 전율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독특한 요리 미스터리가 출간됐다. 살인을 요리하는 네가지 이야기가 담긴 [레시피]이다. 자장면, 떡볶이 같은 음식을 주제로 한 앤솔러지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은 있으나 아마도 음식을 테마로 하는 이야미스 작품집은 이 책이 최초가 아닌가 싶다. 사실 이름만 들어도 군침도는 음식들과 불쾌한 잔향을 남기는 이야미스가 서로 어울릴 수 있을지 반신반의 했다. 그런데 기우였다. 오히려 음식은 작품을 뇌리에 깊이 각인 시키는 트리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마치 잊고 있던 연인을 스쳐지나는 타인의 향수 냄새로 떠올리듯 말이다. 



1. 밴댕이무침

진하게 화장한 소녀의 얼굴을 짓이긴다. 벽돌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두운 밤거리에 고깃덩이를 찍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통에 겨워 하던 소녀는 정신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을 내려치는 벽돌은 그칠줄을 모른다.

기분 나쁜 악몽에서 깨어난 영신. 그녀의 발 아래 300피스 퍼즐이 빠짐없이 맞춰있다. 머리를 조여오는 두통. 밴댕이무침에 소주를 마신것 까지는 기억나지만 그 이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또 필름이 끊겼었나. 무심코 티비를 튼 영신은 깜짝 놀란다. 영신의 집근처에서 여학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체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2. 가지튀김

몇 년만에 정신과 의사 수빈을 찾아온 초등학교 동창 윤희는 그녀에게 카운슬링을 부탁한다. 남편과의 불화가 심하다는 것. 수빈은 윤희에게 최면 치료를 진행한다. 그리고 얼마 뒤. 윤희는 가지튀김을 준비하던 친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하고 자살한다. 윤희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는 수빈. 가지튀김에 얽힌 수빈의 비밀은.....


3. 멸치국수

엄마에게 버림받은 가희는 부유한 양부모에게 입양되고 모자람 없는 생활에 만족한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을 위협할 위기가 찾아왔으니... 양엄마가 임신한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즉시 다시 고아원으로 입소할것이란 생각에 내내 불안에 떨던 가희는......


4. 초콜릿케이크

늙은 교수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 여진은 얼마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평소 몸이 안좋던 남편이 병환으로 사망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죽은 남편의 재산의 향방에 이목이 집중된다. 하지만 여진은 남편의 재산에 전혀 미련이 없는데......



밴댕이무침, 가지튀김, 멸치국수, 초콜릿케이크. 재료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마치 요리책을 보는 듯 자세한 레시피에 그것을 맛있게 먹는 캐릭터들을 보고 있노라니 당장이라도 책을 덮고 음식을 먹고 싶게 만드는 참 요상한 책이다. 그렇게 미친듯이 식욕을 폭발시켜 놓고 네 가지 요리에 얽힌 끔찍하고 잔혹한 사연을 깨닫는 순간 끓어올랐던 식욕은 거짓말 처럼 싸그리 사라져 버린다. 허허.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요?!! ㅠ_ㅠ 진정 이야미스는 이야미스다. 앞으로 이 네 가지 음식을 보면 작품을 읽었을때의 불쾌한 감정이 떠오를 것만 같다.



가장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했던 작품은 [가지튀김]이고, 가장 재미있던 작품은 [멸치국수], 가장 먹고 싶던 작품은 [밴댕이무침]이다. 덧붙여 목차 순서대로 집필한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페이지가 진행 될수록 문장이나 표현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_- 작품이 진행될수록 급격히 성장한달까. 순서대로 집필한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다만. ㅋ 이야미스 하면 흔히 '미나토 가나에', '기리노 나쓰오'. '아키요시 리카코' 등을 떠올리게 된다. 읽는것 만으로 찝찝 불쾌하게 만드는 이야미스의 여제들의 목록에 앞으로 '최정원'을 추가해도 좋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한국형 이야미스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숨막히는 막정 설정에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탑재한다. 아동학대, 성착취, 소아살인 등등. ㄷㄷㄷ 캡사이신을 들이 부은 듯 독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위장에 불을 싸지른다. 



단순히 극악의 설정만 있었다면 그건 이야미스가 아니라 저주의 배설이리라. 수십년을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복수를 성공하는 주인공. 하지만 시원한 통쾌함은 없다. 복수는 복수인데 복수라고는 할 수 없는 찝찝함. 오래도록 잔향으로 남는 불쾌감. 이야미스야 말로 배덕의 쾌락이 아닌가 싶다. 



살인과 요리. 환상의 콜라보가 빛나는 단편집이다. 책을 펴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사이 '최정원'쉐프의 식재료로 도마위에 오른다. 지지고  볶고 튀겨지는 고통속에 당신은 어떤 쾌감을 캐치할까. 미스터리 팬이라면 특히 이야미스 장르의 팬이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될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