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2021년 가제본)
저자 - 모리미 도미히코
역자 - 권영주
출판사 - RHK
정가 - 비매품
페이지 - 531p
기묘하고 환상적인 열대 속으로
콘크리트 빌딩 숲을 이루는 현대 속에서도 과거를 보존하여 무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도시 교토를 무대로 환상적 작품을 써왔던 '모리미 도미히코'의 15주년 데뷔작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펭귄 하이웨이], [거룩한 게이름뱅이의 모험], [야행]등으로 접했던 작가의 기념작에 호기심이 일어 가제본 서평단으로 정식 출간 전 작품을 만났다. 일단, 내리쬐는 태양이 넘실거리는 남국을 연상케 하는 작품 [열대]의 장르를 논하자면 비블리오 환상 미스터리라 말하고 싶다. 흠... 미스터리보다는 몽환적 판타지의 성향이 더 강하니 비블리오 판타지라 해야 하나...
1982년 출판, 저자 사야마 쇼이치.
[열대]
대학 시절 모리미 도미히코가 우연히 접한 [열대]는 그야말로 수수께끼의 책이다. 헌책방에서 1엔에 구한 책을 펴자마자 책속의 열대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책의 중간까지 읽고 잠든 모리미는 책이 감쪽같이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다시금 그 책을 구하기 위해 뒤져보았으나 책에 대해, 작가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그 뒤로 수십여 년이 지나고. 우연히 독서모임에 참석한 모리미는 그가 그토록 찾았던 [열대]를 읽고 있는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열대]에 얽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어떤 방법으로든 [열대]를 접했던 사람들이 모여 학파를 만들었다. 이 학파 사람들은 누구도 [열대]를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학파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자신이 기억하는 [열대]를 이야기 하고 이 이야기 조각들을 엮어 [열대]에 대한 지도를 만들어 간다. 한마디로 수수께끼의 책 [열대]의 마법에 홀린 사람들인 것이다.
'내 [열대]만이 진짜랍니다.'
학파 사람들은 자신만의 열대를 완성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그리고 [열대]의 완성을 위해 교토로 찾아간 남자가 환상의 세계 [열대]에 입성하면서 이야기는 현실을 넘어서 환상의 세계로 돌입한다. 작품을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경계를 지을 수 없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 [열대]는 그동안 보여왔던 '모리미 도미히코'의 환상적 세계의 극단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열대] 부분에서 본인은 이야기 흐름을 놓치고 말았다. 다만 [열대]를 찾는 작품 속 '모리미 도미히코'와 마지막 페이지의 '사야마 쇼이치'가 대구를 이루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묘하게 맞닿는 장면에서 숨을 삼켰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책속의 이야기 인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의 이야기는 독자를 [열대]속으로, 천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에라자드가 있는 [천일야화]속으로, '네모'선장이 있는 노틸러스 호로 안내한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친 탓도 있겠지만 환상의 세계가 보여주는 사건들이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며 어떤 메타포와 은유들을 내포하고 있는지 온전히 캐치하지 못해 아쉽다. 아무래도 시간을 두고 재독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인생의 이야기를 [열대]로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걸까. 15년간의 작가생활을 거치며 작가의 판타지를 집약한 작품이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신비한 이야기를 찾아 헤맬 작가의 집념을 잠시나마 작품을 통해 엿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