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성 탐정 이상 5 - 거울방 환시기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20년 11월
평점 :
경성 탐정 이상 : 거울방 환시기 (2020년 초판)
저자 - 김재희
출판사 - 시공사
정가 - 14300원
페이지 - 310p
이게 마지막 이상이라니!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팩션추리의 지평을 연 '김재희' 작가의 마지막 경성 탐정 시리즈가 출간됐다. 2012년 첫번째 시리즈를 시작으로 8년의 시간동안 다섯 권에 담긴 이상과 구보 콤비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는 말이다. 시리즈 전권을 읽지 못했음에도 마지막이라 하니 뭔가 아쉽고 애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은 새로운 시작을 향한 마침표가 아닌가. 결자해지. 이제는 더이상 만날 수 없는 상과 구보 탐정의 마지막 사건이 펼쳐진다.
상과 구보는 어느 재벌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경성에서 인천의 작은 섬 교동도로 향한다. 교동도에 위치한 독일 자본으로 지어진 기숙학교에서 실종된 여학생을 찾아달라는 의뢰 때문이었다. 상은 인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자신의 후배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나 인사를 나누는데, 어찌된 일인지 고급 객실안에서 한 남자가 살해당하고 객실내를 전부 수색하지만 상이 보았던 후배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이후 교동도에 도착한 상과 구보는 자연친화적인 슈하트 학교의 이념에 신기해 하면서도 그 내면에 감춰진 이질적인 모습에 의혹을 갖는다. 그리고 마침내 실종된 여학생이 체벌을 위해 섬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강당 지하, 거울방에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접하는데......
그의 기이한 시 만큼이나 불완전한 이상의 정신상태에서 상과 구보는 온전히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까? 그것이 이번 다섯번째 작품 [거울방 환시기]를 관통하는 떡밥? 혹은 포인트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날개]를 쓰던 당시 술집 마담에게 마음을 빼앗겨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져버린 이상의 불안정한 모습은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그의 상태가 이번 이야기에 꽤 많은 영향을 끼치리란 것을 예상케 한다. (작품 전반에 인용되는 이상의 시구들과 짙게 드리운 죽음의 이미지 때문에 솔직히 본인은 이번 5편에서 이상이 죽음을 맞이하는 줄.....)
거울에 수없이 반사되는 내 모습들.
무수한 내게 둘러싸인 나.
그런 나는 단검을 집어 들고 상대의 심장을 내리 찔렀다.
가슴에서 폭발하듯 튀어오르는 검붉은 혈흔들.
내가 상대를 찌른 것이 거울에 비친 것일까?
거울 속 내가 살인을 조종한 것일까?
현실과 환상의 기묘한 혼재.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슈하트 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이 독자의 판단력을 서서히 갉아 먹는 기분이다. 작품을 보면서 영화 하나가 내내 떠올랐다. 대표적 오컬트 공포 영화 [서스페리아]인데, 무언가 광기에 휩싸인 듯한 학교의 이사장과 교장. 그리고 한 밤에 바닷가에서 벌어지는 선생과 학생간의 불경스러운 집회. 체벌을 위한 거울로 둘러싸인 징벌방. 그리고 그곳에서 실종된 여학생까지.... 영화속 무용을 하던 여학생이 거울로 둘러싸인 거울방에서 온몸이 잔혹하게 뒤틀려 온통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끔찍한 장면이 오버랩되어 초현실적인 으스스한 느낌을 더해주었달까.
물론. 초중반 호러 판타지로 독자들의 판단력을 흐리며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가지만 이 작품은 [경성 탐정 이상]이 아닌가. 사건의 전말은 다분히 현실적이고 너무나 시대적이다. 솔직히 섬에 들어가고 밀실같은 거울방이 나와 클로즈드 서클? 밀실살인?을 예상했건만 작가는 결말을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본인의 장기인 팩션의 귀재를 각인시키는듯 하다. 이런 폐쇄적 소재를 역사적 현실과 접목하여 확장시켜 낼 줄이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ㅎㅎㅎ 할말은 많지만 스포가 우려되어 여기서 접는다.
한없이 흔들리는 이상과 그런 상을 걱정하고 보필하는 구보. 그리고 그와 격돌하는 절대악까지. 때로는 공포 호러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한국식 [인디아나 존스]를 떠올리게 하는 호쾌한 액션을 선보인다. 더불어 그동안의 이상 시리즈를 읽어온 팬이라면 반가워 할만한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대단원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느낌이랄까. 올해가 이상 탄생 110주년이라고 한다. 작가님이 그런 시기를 맞춰 작품을 낸건지는 모르겠다만 이상과 구보가 함께 찍은 사진 한장으로 이 시리즈를 떠올리고 나아가 다섯권의 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을 하늘에서 상과 구보가 흐뭇하게 지켜보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8년간의 기나긴 여정 동안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하면서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작품은 어떤 작품일지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