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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파도 속으로 ㅣ 미스티 아일랜드 Misty Island
황세연 지음 / 들녘 / 2020년 7월
평점 :
삼각파도 속으로 (2020년 초판)
저자 - 황세연
출판사 - 들녘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96p
드넓은 심연의 바다 속으로
범죄 없는 마을에서 시체 한구로 벌어지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다룬 농촌 코믹 잔혹극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의 '황세연'작가가 무려 500페이지 볼륨의 장편으로 돌아왔다. 꽤나 두꺼운 실물에 잠시잠깐 위축됐으나 막상 책을 펴들고 나니 페이지가 날개 돋힌 듯 넘어가 무척이나 놀랐다. 이 작품은 바다에 파묻힌 난파된 보물선을 찾는 바다 사나이들의 거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확천금 앞에서 욕망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잃고 심연의 폭력적 본성을 드러내는 과정을 밀도있게 그려나가는 작품이란 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바다속 심연을 들여다 보듯 말이다.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임에도 페이지터너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바로 극의 전반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 유발 요소가 한 두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잠수부 최순석은 우연히 아는 형님의 사망사고 현장에서 일제치하 시절 수십톤의 금괴를 싣고 본토로 돌아가던중 바다속에 침몰된 731부대 병원선 초잔마루가 묻혀있는 좌표를 알아낸다. 이에 최순석은 지인들을 모아 보물선 탐사대를 조직하고 망망대해로 나선다. 보물탐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발견되는 것은 금괴 대신 밀봉된 항아리 수십개였고 엎친데 덮친겪으로 권총으로 무장한 중국인 해적이 보물탐사선을 강탈하는데.......
중국인 해적과 선원들의 피비린내 나는 사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서 생존을 걸고 보물을 찾는 잠수부들의 고군분투 등등 강렬한 사건들이 숨쉴틈 없이 몰아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자. 이 작품의 백미는 731부대 병원선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항아리 들이다. 작가는 크리처 호러영화 [The Thing]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언급한다. 분명 작품안에서도 영화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담겨있기도 하다. 하지만 작품을 읽은 본인이 느끼기엔 [더 씽]도 그렇지만 '리들리 스콧'감독의 [프로메테우스]와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느낌을 더 강하게 받았다.
그렇다. 이 작품은 해양 크리처 호러물인거다.
망망대해 기름이 떨어진 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식량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둘 미쳐간다. 그리고...... 걸신 들린 듯 먹을 것을 찾는 선원들. 결국 그들은 금기된 고기에 맛을 들이는데....... 피와 살이 터지고 육신이 갈기갈기 찢긴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인간 이외의 무언가가 섞여 있다!
으흐흐....책을 읽으면서 이런 잔혹의 카타르시스를 느껴본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피가 끓는다. 재미있다. 너무나 흥분된다. 정말 미처버리는 줄 알았다. 진정 완벽한 본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작품이었다. 단순히 괴물이 나와서 찢어 발기는 살육이었다면 이정도로 흥분되지는 않았으리라. 작가는 추리작가라는 본업의 재능을 놓치지 않는다. 중국인 해적을 불러들인 내통자는 누구일까? 괴물이 돼버린 선원은 누구일까? 최순석이 짝사랑하는 이윤정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최순석이 눈으로 본 모든 것을 환상이 아니라 할 수 있는걸까? 의심은 의심을 낳고 작품을 읽는 독자마저도 아비규환의 아수라장속에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이 쫀쫀한 긴장감이 엄청난 몰입감을 가져 오는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의 초고는 3권 분량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그걸 오백페이지로 줄인거라고 하니, 이 한 권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집약돼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떠오른 이미지들을 나열해봤다. '윤태호' [파인], '존 카펜터' [더 씽], '리들리 스콧' [프로메테우스], [에일리언 커버넌트], '로버트 저메키스' [캐스트 어웨이], [얼라이브], '시라이 도모유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등등등....단언컨데 언급한 작품들의 재미요소만 쪽집게 처럼 뽑아 만들어낸 작품이다.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을 쓰면서 이런 작품들을 염두에 두고 쓴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여러 장르작품들의 잔영을 찾아내는 것은 또 다른 유희거리였다.
미스터리, 공포, 호러, SF의 요소들을 모두 아우른다. 결국 장르소설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이란 말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