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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여자의 일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김도일 옮김 / 허클베리북스 / 2020년 8월
평점 :



살인은 여자의 일 (2020년 초판)
저자 - 고이즈미 기미코
역자 - 김도일
출판사 - 허클베리북스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35p
섬세한 문체, 날카로운 반전
단편 미스터리로서의 농후한 매력
작가의 이름이 낯설어 찾아보니 현재 활동하는 작가가 아니라 1960년대 부터 1980년까지 활동했던 여성 작가였다. 작가가 된 이력이 평범치 않은데, <미스터리 매거진> 편집자의 아내로 남편은 평소 아내가 원고를 쓰면 정신이 사납다며 아내의 글쓰기를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가 '고이즈미 기미코'는 남편 몰래 추리 신인상에 응모했고, 비록 신인상 수상은 실패했지만 그녀의 작품을 높게 평가하여 단행본으로 출판되면서 등단하게 됐다고 한다. 미스터리 전문 편집자의 아내이자 남편 몰래 미스터리 소설을 써내 작가로 등단하다니.... 이런걸 운명이라 해야 할까?
그런면에서 표제작인 [살인은 여자의 일]은 작가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있는 서늘한 반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어느날 명망있는 문학 편집자 앞에 나타난 작가를 만난 편집자는 잘생긴 작가의 외모에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러나 편집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있었으니, 작가의 아내였다. 눈부신 작가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촌티 나는 외모의 아내의 존재에 편집자는 질투를 넘어 살의를 느낀다. 거지같은 아내를 치워버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가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 그때문일까. 편집자는 점차 작가의 아내를 무시하고 작품 회의를 빌미로 작가를 집밖으로 불러내는 일이 잦아지는데.....
과연 편집자는 본처를 내치고 매력적인 작가의 아내가 될 수 있을까?
현직 편집자 남편과 현직 소설가인 본인의 체험이 이 작품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가질 수 없는 남자를 향한 욕망이 살의로 변하는 심리적 변화가 섬세한 묘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져 캐릭터에게 공감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갖는다. 막판의 반전은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꼭 뒷통수를 강타해야만 반전의 묘미를 느끼는 것은 아니기에 충분히 예상가능한 결말에도 납득하고 재미를 느끼게 된다.
1. 살인은 여자의 일
2. 수사선상의 아리아
3. 살의를 품고 어둠 속으로
4. 두 번 죽은 여자
5. 털
6. 안방 오페라
7. 아름다운 추억
8. 여도둑의 세레나데
표제작 다음으로 [수사선상의 아리아]는 갱단의 갱을 선망하며 모형 권총을 품고 다니는 소년이 정말로 비정한 갱단 사건에 휘말리면서 겪게 되는 고생기이다. 조폭을 선망할 수 밖에 없는 소년, 떠나버린 깡패를 평생 그리워 하는 오십대 창녀 그리고 그들 앞에 나타는 은퇴한 전직 조폭까지.... 이들의 암울한 선율이 모아져 비극의 아리아를 연주한다.
[살의를 품고 어둠 속으로] 역시 부부간에 벌어진 치정이 얽혀있는 이야기이다. 남편의 실수에 가까운 외도. 이후 아침마다 울리는 전화벨소리. 바로 남편의 외도상대였던 귀부인이다. 바람 상대였던 여자의 전화를 받는 아내는 바람녀의 온갖 인신공격과 괴롭힘을 받으면서 살의를 싹틔우고.....
[두 번 죽은 여자]와 [털], [안방 오페라]는 앞선 분위기를 180도 반전시키는 묘미를 갖고 있지만 개인적으론 추리라기엔 조금 애매한 단편이었다. [아름다운 추억]은 할머니를 죽인 손녀의 사건에서 손녀의 살해 의도와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할머니의 진심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여도둑의 세레나데]는 조직에 속한 1급 소매치기 여성이 백화점에서 마지막 한탕을 벌이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73년 부터 1982년 사이의 작품을 묶어 낸 단편집으로 읽다보면 다소 클래식한 느낌은 나지만 무려 50년 전에 쓰인 이야기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들이다. 타인을 향한 질투, 안정된 삶을 살고 싶은 여성의 욕구, 남을 깎아내리면서도 정작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모습 등 작품에서 그리는 인간상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변화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8편의 작품들 대부분에서 막판 반전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스터리가 반전이 다가 아님을 이 단편집을 통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캐릭터의 몰입감, 섬세한 심리묘사와 간결한 문체 그리고 시원한 결말까지.
단편 미스터리의 매력을 충분히 갖춘 단편집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한 글입니다.
#미스터리 #살인은여자의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