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고양이를 봤다 (2020년 초판)_그래비티 픽션 14
저자 - 전윤호
출판사 - 그래비티북스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40p
전문가의 하이테크 스릴러는 바로 이런 것이다
SF 작가 치고 과학 계열 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쓴 SF는 의외로 별볼일 없는 경우가 많다. 과학자가 써낸 SF에서도 기승전결 따윈 집어치우고 과학 법칙들을 늘어 놓으며 하드SF라 자위하는 경향이 있는데 SF도 어디까지나 문학의 한 가지로서 재미를 떠나 그저 주입식 학술적 지식 열거의 장이라면 누가 그 작품을 보겠는가. -_-;;; 관련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말이다. 그런면에서 SF 소설은, 특히 하드SF의 경우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 현실의 과학적 이론과 기술을 충분히 담고 있는 적절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한국 작가의 SF작품만을 출간하고 있는 뚝심있는 SF출판사 그래비티북스의 열 네번째 작품이 출간됐다. 현실 혹은 근미래의 IT기술을 기반으로 긴장감을 끌어내는 하이테크 스릴러. 바로 [모두 고양이를 봤다]이다. 앞 표지의 날개 부분에 작가소개를 보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다. 국내 굴지 기업의 IT파트장을 역임했으며 IT밥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봤을 서버업체에서 AI사업을 이끌었다니 그동안의 IT 짬밥을 얼마나 작품에 녹여냈을지 기대감이 치솟았다.
서울 모처. 인근 수십 키로미터의 사람들이 한날 한시 모두 똑같은 고양이를 목격한다. 실제 눈으로 본것이 아니다. 바로 머리속에 검은 고양이의 형상이 떠오른 것이다. 당연하게 웹상에는 그날의 경험을 한 사람들의 경험담이 폭발하듯 올라온다. 경찰은 이 불가사의한 사건에 대해 조사를 벌인다. 그리고 사설 빅데이터 업체에 다니는 연구원 이수진을 통해 해당일에 검색된 검색어를 분석하여 고양이 환상의 중심 지점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둔다. 이수진의 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서울 모처의 건물을 급습하고, 그곳에서 인간의 뇌파를 조종하는 소위 텔레파시 장치인 Q-데이터의 일부분을 찾게 된다. 이후 정부조직과 Q-데이터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조직간의 숨가쁜 추격전이 펼쳐지는데.....
텔레파시. 인간의 뇌파와 동조하여 메시지를 보내는 초능력의 한 종류이다. 자. 바로 직전에 읽었던 '스티븐 킹'의 [인스티튜트]에서도 이 텔레파시(TP)가 중요 소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각 작품이 텔레파시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이 작품은 실제의 IT 기술을 기반으로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그리고 있다. 이른바 전형적인 하드SF이다. 뭐 자세히 파고들면 어차피 픽션이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 자체는 진짜 엔지니어의 IT지식을 마음껏 뽐낸다. 본인도 IT밥을 먹는 입장에서 책을 읽으며 감탄 하면서 봤다. 해킹, 빅데이터, AI, 서버, 네트워킹 등등 현 IT를 총망라하는 전방위 기술이 총망라되는 광범위한 지식에 놀라고 그 지식을 범죄 스릴러로 적재적소에 녹여내는 구성에 또 놀랐다.
하이테크라고 하여 사이버펑크와 혼동할 수있는데, 텔레파시의 요소를 제외하고 벌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현실의 IT기술을 적용한듯 하니 사펑으로 치부하기엔 미안하다. 쉽게 설명하자면 '찬호께이'의 [망내인]이 초보수준이라면 이 작품은 엑스퍼트 수준이랄까...-_- 그런면에서 일반인이 보기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중심되는 플롯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IT용어들을 재끼고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좌우간, 중심 소재마저 현실적이었다면 별로였겠지만 수천만 국민의 머리속에 떠오른 고양이. 그리고 이미지에서 그치지 않고 파생되는 피해들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이 기술을 통해 벌이는 범죄들도 충분히 현실적이고, 그에 대응하는 정부나 미국의 반응 역시 현실 기반의 풍자적 요소가 녹아있어 해외 SF를 보는 것과는 또다른 맛을 선사한다. 어쨌던 앞서 말했듯이 전문가가 그저 지식을 뽐내기 위해 과학 이론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작품은 아니기에 하드SF의 묘미를 충분히 살리는 국내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짜 테크노 스릴러를 보고 싶은 하드SF팬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