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가운 숨결
박상민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차가운 숨결 (2020년 초판)_아프로스 오리지널-1
저자 - 박상민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71p
죽음의 순간에서 내뱉은 마지막 차가운 숨결
[절대정의], [기억 파단자], [끝없는 살인]등을 펴내며 일본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던 출판사 아프로스미디어에서 처음으로 한국 작가의 소설이 출간되었다. 작가와 편집자가 합을 맞춰 최고의 재미를 추구한다는 프로젝트 이른바 아프로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본격 시동된 것이다. 그 아프로스 오리지널의 첫번째 주자가 바로 현직 의사인 박상민 작가의 감성 메디컬 미스터리 [차가운 숨결]이다.
가장 잘 아는 것을 쓰는것이야 말로 가장 현실적이고 재미있는 글쓰기가 아닐까.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밀도 있게 이야기를 엮어내니 자연스럽게 상황에 몰입되고, 캐릭터에게 감정이입 된다. 더군다나 전문직종으로 일반인은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메디컬 미스터리라는 장르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가지 않는가. 이런 저런일들로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때로는 의식하지 못하던, 때로는 몰라서 넘겼던 사실들을 작품을 통해 접하게 되고 사소하게 지나쳤던 행위들이 곧바로 환자의 목숨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무지에서 오는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외과 레지던트 현우는 인턴을 갓 벗어난 아직은 서툴은 의사이다. 비록 실력은 모자라나 8병동의 여러명의 환자를 맡아 정성껏 돌보는 그의 앞에 배를 움켜쥔 소녀가 나타난다. 진료를 위해 현우가 촉진하려는 것도 극구 사양할정도로 예민하고 날카로운 그녀. 현우는 그녀의 복통이 급성 맹장염 때문이라는 것과 이름이 수아라는 것 그리고 대학생이란 것을 알게 된다. 직접 맹장수술에 참여하고 회복해가는 수아를 보면서 그녀에게 신경이 쓰이던 현우는 우연히 그녀의 아빠가 몇 년전 같은 병원에서 암으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현우에게 털어놓은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수아의 아빠를 죽인건 다름아닌 그녀의 엄마였다는 것인데..... 현우는 수아의 주장을 말도 안된다며 넘기려 하지만 곧이어 현우의 눈앞에서 건강했던 노인 환자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현우의 굳건했던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
수아 아빠의 죽음. 그리고 현우의 눈앞에서 주검이 되는 환자들. 병원안에 환자들을 무차별로 살해하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가 존재한다?! 작품은 현우와 현우 주변의 동료의사들, 그리고 환자들을 등장시켜 서서히 비밀을 파헤치고 그렇게 모인 의심과 의혹들이 대망의 결말에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강렬한 충격적 잔상을 남긴다. 후기에서 기존 결말에 편집자의 제안을 통해 두, 세번의 반전을 추가했다고 하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마지막 페이지로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을 보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도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곡성]을 봤을때의 느낌이랄까.
작품은 대놓고 두가지 결말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그러나 어떤 결말을 선택할지는 오롯이 독자의 판단에 맡긴다. 독자의 판단에 결말을 맡기면서도 앞선 복선들과 이야기의 개연성, 흐름등을 다시한번 복기하며 진결말을 찾기 위해 작품을 반추하게 만드는 결말이다. 분명 호불호가 갈릴듯 한데 그런 논쟁조차 염두에 두고 내놓은 결말이라면 뭐, 인정 할 수 밖에없을 것 같다. 이게 뭔얘긴지는 작품을 읽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ㅎㅎㅎ
과거와 현재의 혼재, 뒤섞여 버린 현실과 망상의 경계
그리고 그 경계선에서 마주선 소녀와 의사.
표지부터 이야기의 배치와 결말까지 읽고나니 이 말이 튀어 나왔다.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분명 감성 메디컬로 시작하지만 어느순간 서스펜스 스릴러로 그리고 본격에 싸이코 미스터리로 종횡무진 변모하는 이야기는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무언의 의지를 보여주는듯 하다. 어려운 의학용어가 난무하는 메디컬 작품임에도 470여 페이지가 훌러덩 넘어가는 무한 가독성을 자랑한다. 더군다나 쉴새없이 생과 사가 오가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은 그것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자아내게 만든다. 한국의 '지넨 미키토', '박상민'작가의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하면서.... 자. 실수투성이지만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만은 누구 못지 않은 현우는 짝사랑하는 수아를 쟁취하고 진정한 의사로 성장할 수 있을까? 죽음의 순간에서 내뱉은 마지막 호흡처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차가운 숨결]이었다.
더불어 절체절명의 무인도에서 대기중인 아프로스 오리지널의 두번째 작품을 하루빨리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