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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평점 :
분리된 기억의 세계 : 개별 지성을 잃어버린 인류의 뒤틀린 생존극 (2020년 초판)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역자 - 민경욱
출판사 - 하빌리스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50p
말도 안된다고? 그래도 일단 상상해봐!
미친 과학자가 뭘 터트리던,
외계인이 지구에 침공하던,
소행성이 지구에 떨여졌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 현상이 발발하던 간에
일단 가정해 보는 거야.
어느날 갑자기 인류의 기억이 10분 밖에 유지 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인류의 존속은 가능할까?
왜? 말도 안된다고?
말했잖아. 일단 가정해 보라고.
그럼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질 거야.
'고바야시 야스미'가 그리는 코믹하고 기묘한 뒤틀린 세상이 말야.
[앨리스 죽이기], [기억 파단자]로 매번 누구도 상상치 못 한 독특한 발상의 작품을 선보이는 천재작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신작이 출간됐다. 이번 작품도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블랙 유머가 만발한 미처버린 세상을 그리고 있다. 동화와 현실이 뒤섞인 미쳐버린 세상(앨리스 죽이기 시리즈). 단기 기억상실증의 남자와 기억 조작능력자의 목숨을 건 사투(기억 파단자). 그리고 이번엔 기억이 10분동안만 유지되는 세기말적 SF?!!
분명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왜 이 글을 쓰고있지?
치매에 걸린 건가? 조금전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 지금 시간 10시.
어라? 이거 내가 쓴거야? 왜 전혀 기억나지 않지? 내가 쓴 것도 잊어 버리다니. 큰일이다.
지금 시간 10시 40분.
뭐지? 정말로 무서워지네. 나도 모르는 사이 다중인격이 글을 쓰는 건가. 지금 시간 11시.
짜증나. 어떻게 된거지? 정말로 다른 세명의 인격이 지나갔나? 그런 나는 네번째 인격인가?
지금 시간 12시.
다중인격을 고민하던 소녀는 실은 하나의 인격이다. 다만 전인류에게 발생한 장기기억으로의 뇌기능 손실 때문에 자신이 글을 썼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뿐. 10분 이상의 일을 할 수 없는 인류에게는 거대한 위험이 다가온다. 소녀의 아버지가 다니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이상 알람이 발생했던 것. 알람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데만도 십분이 넘게 걸리는 일인데, 소녀의 아버지는 어떻게 위기를 해쳐 나가게 될까....
지금의 나를 나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이유는 나의 정신과 육체, 그리고 기억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 소실됐다. 시간은 흘러 인류는 외부 메모리를 사용하여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컴퓨터의 ROM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메모리는 탈착이 가능하였으니......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갈 혼란의 씨앗이 잉태된 것이다.
미쳤다. 오로지 설정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간과 기억, 영혼을 생각하게 하는 윤회사상에 입각한 불교의 철학적 요소까지 담아내다니. 이것이야말로 가정을 통해 무한한 사례를 상상하고 사유하는 사고실험의 가장 모범적인 SF가 아닌가. 이 기발한 상상력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앨리스 죽이기]에서 본인을 매료 시켰던 말장난 언어유희까지 구사해 주니 책을 읽는 내내 더 없이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
굉장히 급진적이고 개별적 단편이 이어지는 옴니버스식 구성이라 조금 분절되는 느낌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독특한 발상의 SF를 선호하는 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작품이라는게 본인의 생각이다. 어찌됐던 신박한 이야기임은 부정 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고바야시 야스미' 특유의 상상력과 개성넘치는 필체가 어우러진 똘끼 넘치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