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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숨 (2019년 초판)
저자 - 테드창
역자 - 김상훈
출판사 - 엘리
정가 - 16500원
페이지 - 519p
단편 SF의 연금술사 '테드 창'이 들려주는 천일야화
휴고, 네뷸러, 로커스가 몹시도 애정하는 단편 SF 그랜드 마스터! 단편 SF계의 킹갓그레이트제너럴엠퍼레이션! '테드 창'이 17년만에 돌아왔다. 주옥같은 그의 첫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2004년에 한국에 문을 두드린뒤 15년 만이다. 그사이 한국에도 몇차례 방문하고, 중편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가 출간되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드뇌 빌뢰브' 감독에 의해 [컨택트]로 영화화 되기도 하면서 오랜 부제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긴 했지만 역시 이것만으론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고 결국 숨이 막혀 질식사하기 직전에 드디어 말라비틀어 쪼그라든 허파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듯 [숨]으로 컴백한 것이다.
2년에 한편이라는 극악의 작업 속도로 짜내고 짜낸 아홉 편의 단편이 독자를 맞이한다.
1.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대교주에게 자신이 겪은 마법같은 기묘한 일을 아뢰는 상인 압바스. 그는 이십년전 바샤라트라는 연금술사의 상점을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과거로던, 미래로던 이십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차원의 문과 마주하게 된다. 20년전 모스크의 붕괴로 목숨을 잃은 아내가 생각난 압바스는 이십년전으로 타임워프 할 과거의 문을 선택하는데....과연 압바스는 아내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 와....첫 작품부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임팩트로 훅 치고 들어오다니....-_- 일단 소재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는 타임워프물에 작품의 배경이 되는 바그다드와 이슬람 문화가 마치 SF버전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보는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과거와 미래는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것도 바꿀 수 없고,
단지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_56p
물리학자 '킵손'까지 소환할 것도 없이 읽는대로 술술 이해되는 단편이다. '하인라인'의 단편을 영화화 했던 [타임 패러독스]를 연상시키며 시간여행 패러독스의 모순을 통해 인생의 진리를 설파하는...이것은 '테드 창' 주교의 가르침이 담긴 SF 경전이다!!
2. 숨
아득히 먼 우주 어딘가 또는 전혀 다른 세계의 우주. 그곳엔 공기(아르곤) 호흡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기계 생명체들이 있다. 기계인간의 사인을 판별하는 해부학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고능력이 미묘하게 저하되는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자신의 뇌를 해부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모세공기관의 공기 흐름과 금박의 뇌신경에 기억이 기록되는 매커니즘을 통해 우주의 분포된 숨에 관한 비밀을 간파하는데.....
- 어딘가에서 있을지도 모를 우주의 숨과 생명 탄생의 비밀이 그려진다. 우주는 끊임없는 엔트로피를 통해 평형을 향해 나아가고 그렇게 완전 평형을 이루는 순간 우주에 존재하는 공기로 순환하는 생명은 종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세계를 그려낸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지만 내겐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몸을 해부하는 장면에서 [토탈호러]에 수록된 '고마쓰 사쿄'의 [흉폭한 입] 같은 약간의 그로테스크를 느꼈다. 역시 '테드 창' 교주의 SF 요한 계시록이랄까...
3. 우리가 해야 할 일
네거티브 딜레이 기능이 탑재된 자동차 리모컨 크기의 예측기가 있다. 예측기의 버튼을 누르려 마음먹으면 무조건 버튼을 누르기 1초전 LED에서 빛이 번쩍이는 말그대로 예측기인 것이다. 결국 이 조그만 예측기의 개발은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는데......
- 작품속 예측기로 인간의 행동양식 나아가 인간의 운명은 이미 결정지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자유의지가 꺽여버린채 수동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고 믿는 인간들이 즐비한 다른 평행 우주에 사는 누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우리가 자유의지라 생각하고 수많은 갈림길에서 했던 선택이 이미 결정지어 졌다면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운명결정론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 사실을 예측기로 확인하는 것과 단순히 예상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이리라. 아무리 운명이 결정지어졌다 해도 예측기가 발명되기 전까진 운명은 변하는 것이라 믿고 살아가고 싶다. 달랑 다섯 페이지짜리 단편인데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4.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 2013년 북스피어에서 출간됐던 단행본의 서평링크로 대신한다.
5. 데이시의 기계식 자동 보모
부모의 육아가 결코 좋은 영향만을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레지널드 데이시는 기계식 자동보모를 개발하고 시판한다. 초기엔 화제를 몰면서 반짝하지만 이후 자동 보모가 안고 있던 아기가 로봇팔이 부서지면서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사업은 단숨에 추락해 버린다. 레지널드 데이시의 아들 라이어널 데이시는 아버지의 계기식 자동 보모가 조롱거리가 되는것에 격분하고 아버지의 불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아버지를 이어 자동 보모 사업에 뛰어든다. 그는 자동 보모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어린 아기를 입양하여 자동 보모에게 육아를 전담시키는데.....
- 부모의 못된 버릇까지 그대로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자식의 모습을 볼때 실제로 부모의 육아가 무조건 좋다곤 말할 수 없겠지만 부모의 감정의 교류를 통해 인지를 무한히 확장하는 유아기를 생각할때 기계식 자동 보모에게 아기를 맡기는 행위는 경악, 공포 그 자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제 3의눈] 혹은 [환상특급]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작품이랄까....
6.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7. 거대한 침묵
- 무한한 우주에 인간외의 생명체를 발견 할 수 없는건 외계의 존재들이 그들보다 뛰어난 고차원의 존재에게 발각되 멸망당할지 몰라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는 페르미 역설([삼체]의 '암흑의 숲' 이론)이 있다. 그런데 어찌보면 우주까지 멀리 내다볼 것도 없이 수없이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이 지구에서도 페르미의 역설 같은 경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8. 옴팔로스
- 과학이 발전하고 지구의 역사, 나아가 우주의 과거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유추할 수 있게된 지금 우주만물을 창조한것은 신이라 부르짓는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그저 믿음의 맹신에서 비롯된 아집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억겁의 시간동안 변화해온 우주의 기원, 지구의 생명체의 태동과 진화 등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기적같은 과정들도 무수히 존재한다. 사실 인간의 진화만 해도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미씽링크가 존재하는 만큼 잃어버린 고리의 부분에서 신의 입김을 통한 기적의 결과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독실한 종교론자가 창조론을 깔고 과학적 진화론을 이야기하는 듯한 독특한 작품이었다.
9.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읽다가 정말 현기증 나는줄....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시작으로 작가가 안내하는 다양한 시각의 사고실험은 진정한 하드SF를 읽는 지적 유희를 선사한다. 다만 그가 그려내는 사고실험이 상당히 높은 지적수준을 요한다는 것. -_-;;; '하드SF 짱!'을 부르짖으며 하드SF를 찾아 보는 본인조차도 몇몇 단편은 하고자 하는 말이 대체 뭔지 모를 정도로 난해한 작품도 있었다. 코멘트를 달지 않은 6번과 9번 작품이 딱 그랬는데...ㅠ_ㅠ 머...본인에게만 어려웠던 것일수도 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 SF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깊이있는 철학적 고찰과 사유, 심지어 금기시 되는 종교적 관점까지 경계를 허물어 버린 주제들에 무한한 상상력과 실존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SF라는 그릇에 담아내 독자에게 미지의 깨달음을 얻게 하니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명성은 자연스러운 인과율인 것이리라.
어렵고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애정하는 애증의 작가이니..이제 다음 단편집과 만나기 위해선 또다시 십수년의 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곁에 두고 재독 한다면 처음 읽을때는 보이지 않던 다른 부분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땐 6번과 9번을 이해할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