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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피난소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여자들의피난소 (2019년 초판)
저자 - 가키야 미우
역자 - 김난주
출판사 - 왼쪽주머니
정가 - 15000원
페이지 - 383p
재난 더 가혹한 그들의 시선
인간의 힘으로 손써볼 수 없는 끔찍한 대재난으로 일본 사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동일본 대지진이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이제 근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일본의 재난은 현재진행형이고 언제쯤 재난 복구를 끝마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기억속에 지우고 싶은 악몽 같은 순간을 되살려내는 작품이 출간되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자신만의 언어로 끌어내 공론화 시키는 작가 '가키야 미우'가 이번엔 대재난 속에서 그 누구도 이야기 하지 못하고 쉬쉬했던 피해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의 실상을 낱낱이 이야기한다.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온 지축을 흔들어 댄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각자 하루 일과를 진행하던 미야기현 가모메가하마 시의 사람들은 전에 없던 지진에 공포에 휩싸이고 모두들 집밖 거리로 뛰쳐나온다.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던 50대 여성 후쿠코는 지진 발생 후 급히 음식을 계산한뒤 운전대를 잡는다. 시동을 걸자마자 긴급 해일 발생 속보가 온 마을을 뒤덮고 집안에 있는 남편을 챙길 사이도 없이 차를 몰고 높은 지대로 향한다. 그러나 어느새 백미러에는 집채만한 시커먼 파도가 집과 차들을 삼키며 다가와 후쿠코의 차마저 집어 삼킨다. 탁류에 휩쓸린 차안에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들어오고, 숨을 참고 가까스로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만 거친 물살에 휘말려 죽음을 느낄때쯤....아직 탁류가 닿지 않은 2층 주택 배란다를 죽을 힘을 다해 붙잡는데 성공한다. 이후 냉장고를 타고 표류하던 초등학생을 구한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부지하여 배고픔과 추위, 갈증을 이겨내고 겨우겨우 생존자 지정 피난소로 들어가는데....
엄청난 대재앙을 극복하고 피난소에 들어가지만 다른 종류의 재난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품은 50대 여성 후쿠코 외에도 40대 홀로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나기사, 그리고 20대 갓난장이를 업은 새댁 도오노를 통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낮은 수준의 일본 여성 인권의 실상을 고발한다. 작가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당시 직접 재난을 경험한 여성들을 인터뷰하며 써낸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작품에서 그려지는 불쾌한 차별과 억압들이 작은 시골 마을의 '일부' 사례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도저히 2011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저열한 수준이었다. -_-;;; 물론 특수한 상황이고 심신이 지친 열악한 상황에서 일부 사람들의 이기심이 표출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에피소드도 있기에 솔직히 뭘 본건지 이해가 잘 안되기도 했다.
"부녀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72시간 내에 이 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호오, 그렇게 편리한 약이 다 있군."
"그런 사건이 있었던 건가?"
"그냐 집은 떠내려갔지. 일자리는 사라졌지. 남자들도 속이 답답할 테니,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까 여성 여러분, 눈감아 주세요.
남자들이란 그런 동물이니까."
_208p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 에피중 하나인데....-_-;; 길거리엔 온통 토사를 뒤집어 쓴 시체들이 즐비하고 피난소 내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여학생, 어린아이까지 있는 상황에서 이런 아스트랄한 워딩을 버젓이 할 수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 실존한단 말인건지....아니면 작가의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가상의 장치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대재해 이후 실제로 사후 피임약을 구호물품으로 지급하고 있는건 사실인듯 보였다. (설마 한국은 아니겠지..) 뭐....이런 극단적 사례 외에도 남자인 본인이 읽기에도 낯뜨거운 무논리로 여성들을 깔아 뭉개고 무시하는 에피소드들로 숨통 막히게 만드는데....
물론 이 작품에 그려지는 에피만으로 일본 사회 전체를 재단하기엔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일본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어르신들은 아직까지도 남존여비 사상이 짙게 베어 있고 그런 생각에 얽매여 본인을 희생한채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만큼 작품속에서 온갖 정신적 고난과 차별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해체하고 연대하는 세 여성의 도전기는 가슴속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면서 그녀들의, 그녀와 같은 처지에 놓인 여성들의 용기있는 홀로서기를 응원하게 만든다. 피해복구를 위해 새로운 재건을 위해 모두가 알면서도 쉬쉬했던 민감한 이야기를 세상밖으로 꺼내는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