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진다리 (2019년 초판)_그래비티 픽션 08
저자 - 천선란
출판사 - 그래비티북스
정가 - 16000원
페이지 - 519p
다리를 무너뜨린 자는 누구인가
척박한 SF장르계에서 꿋꿋이 국내 작가들의 신작 SF를 내놓는 그래비티 북스의 그래비티 팩션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이 출간되었다. 이번 작품에서 그리는 세계는 그동안 여러 SF에서 다뤄지던 대중적이고 인기있는 SF 하위장르 뉴클리어 아포칼립스이다. 과거 미소냉전시대부터 팽배해온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뉴클리어 아포칼립스 장르의 인기를 부추겼고 이제는 한국도 옆나라에서 발생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굳이 핵전쟁이 아닌 원전사고로로도 얼마든지 뉴클리어 아포칼립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공포심이 가슴한켠에 뿌리깊이 박히게 된것 같다. 이 작품 역시 3차세계대전으로 인한 핵전쟁이나 원전사고가 원인은 아니지만 핵원자로 대폭발로 인하여 지구의 절반이 초토화된 재앙을 맞이한 직후 인류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만 흔히들 예상하는 SF아포칼립스와는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 SF였다는것....
208X년대 인류의 평균 수명은 100세를 넘기고 핵엔진을 장착한 우주선으로 광속을 정복한다. 급격히 도약한 우주기술과 함께 안드로이드 기술 또한 비약적 발전을 통해 휴론(휴먼+클론)을 개발하고 인간의 신체 기관 이식용으로 클론 안드로이드를 휴론을 생산한다. 넘치는 인간들, 자원의 제약, 환경오염으로 인류는 제2의 지구로 눈을 돌리고 테라포밍 프로젝트를 위해 몇백광년이 떨어진 가이아 행성으로 첫 우주선을 쏘아올린다. 인류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우주선 조종사 아인은 가이아 행성 도착직전 유성우에 우주선과 충돌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고 긴급히 탈출선에 실려 지구로 쏘여진다.
그렇게 우주 탈출정에서 동면한채 11년의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지구에서 눈을 뜬 아인에게 안드로이드 기술자 마티어스 박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동면기기의 오동작으로 아인의 망가진 몸에서 겨우 뇌를 떼어내 휴론의 기계몸체에 이식했다는것. 그리고 이보더 더 충격적인 소식은 아인이 지구를 향해 오는 동안 거대한 핵엔진을 탑재한 우주선이 폭발을 일으켜 아메리카 반도로 추락하면서 엄청난 핵복발을 일으켰고 그 충격으로 아메리카 대륙 지층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여파로 지구 전체에 지진과 함께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는 것이다......
머...천조국으로 전세계를 군림하던 미국은 그대로 폭삭 망했고, 가까스로 살아난 생존자들은 이웃 나라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미 씻을 수 없는 방사능에 피폭된 그들을 맞이하는건 따뜻한 원조가 아닌 차가운 총탄이었으니...현실의 동일본 대지진 이후 치명적 방사능 구역이란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마을 사람들과 내란등의 전쟁으로 자신의 나라를 버리고 살길을 찾아 타국을 찾는 난민들이 출입거부로 쪽배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버린 상황이 작품과 오버랩 되었다. 결국 우리와 그들의 생존의 다리를 무너뜨린건 바로 같은 인간들이었고 그렇게 다리를 무너뜨림으로서 인간의 존엄과 인간성은 내던져진것이다.
희망없는 미래 이어지는 고통의 나날들 사이를 파고드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 휴론이다. 이제 남은 인류의 희망은 아메리카 대륙에 떨어진 핵엔진을 고쳐 가이아로 이주할 우주선을 만드는일뿐. 하여 전세계에 동작하는 800대의 휴론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지만 통신이 두절되버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뇌를 탑재한 휴론 아인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낸다. 아인의 임무는 딱 두가지이다.
첫째. 인간의 지배를 벗어난 휴론이 인류의 위협이 되는지 확인할 것.
둘째. 추락한 핵엔진을 찾아 낼 것.
인간의 감정을 가진 기계인간 아인은 직접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 고립된 재앙의 연옥 미국 대륙의 참상을 자신의 뇌세포 하나 하나에 아로 새긴다. 인간에도 휴론에도 낄 수 없는 중간적 존재 아인을 통해 그가 바라본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의 어두운 실체와 맞닥뜨리고 그와는 반대로 휴론과 함께 하며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창조주 인간을 뛰어넘을 새로운 신인류로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는 아인을 통해 다시한번 인공지능과 인간의 존엄성간의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체적으로 중간자적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시선은 앞선 그래비티 픽션 07번 [꿈을 꾸듯 춤을 추듯]과 같은 지점을 향하는듯 하다.
종말 하면 의례 기대하는 처참한 재난상황에서 생존의 사투를 벌이는 인류의 끈질긴 생존을 기대하는데 이 작품은 그와는 달리 개인의 감정을 깊숙이 파고들면서 사색적, 감성적인 전개가 부각되는 점이 여타 종말물과 다른 차별점인듯 하다. 다만 작품을 읽으며 보이는 설정상의 구멍들은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어쨌던, 전지구적 위기속에서 휴론 VS 인간 VS 이단 VS 반란군 등등 제 한몸 지키기도 바쁜 시국에 무한 대립으로 긴장과 혼란을 가중시키며 극한의 상황으로 치달아가게 만든다. 인류와 휴론의 생존의 열쇠를 가진 키메이커 아인의 선택은 과연 무너진 다리를 다시 이어줄 수 있을까?.. 대재앙의 카오스 속에서 인간 밑바닥 깊숙이 숨겨진 심연을 들춰내는 SF [무너진 다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