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평점 :
품절


와일드시드 (2019년 초판)

저자 - 옥타비아 버틀러

역자 - 조호근

출판사 - 비채

정가 - 15800원

페이지 - 550p



죽음조차 야생의 그녀를 길들일 순 없다



비채 출간 예정작에 이름을 올린지 꽤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오지 않아 애타게 만들던 그 SF가 드디어 영롱한 실물 자태를 드러냈다. [킨], [블러드 차일드]를 잇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와일드 시드]가 오랜 기다림 끝에 출간된 것이다. -_- 그런데 그렇게 손꼽아 기다려 손에 넣고 나서야 알게되었다. SF의 비상을 꿈꿨지만 소리없이 사라져버린 비운의 출판사 '오멜라스'에서 2011년 출간되었던 [야생종]이 [와일드 시드]로 재출간 되었다는 것을....-_-;;;; 왜 영어 제목과 번역된 제목이 매칭이 안된건지. 더군다나 [야생종]은 이미 본인 책장 깊숙이 박혀있는 책 아닌가...아...난 정말 바보란 말인가...OTL.....머 SF는 워낙 절판이 빨라 일단 사재기 해놓는 탓에 책장속에서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이 수두룩하고 동일작품도 판본별로 모아오고 있으니 그렇다치고 어찌됐던 새로운 커버에 새로운 번역으로 재출간된 만큼 쌈빡한 비채판본으로 휘리릭 읽어재꼈다.   



3700년을 살아온 신체강탈자

그리고 300년을 살아온 신체변형자....

시간, 공간, 성별, 인종을 초월하여 

무한의 삶을 사는 초인 남녀의 

피로 쓰여진 역사가 펼쳐진다.  


고대 이집트 누비아인으로 태어난 도로는 12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린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려는 고통과 절망에 빠진 찰나 자신의 능력을 각성한다. 자신의 원하는 대로 타인의 신체를 점거하여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깨어난것. 죽음의 순간 머리를 베고 있던 어머니의 몸으로 들어간 도로는 혼란에 빠지고 그뒤로 3700년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신체를 거쳐가면서 인간계 정점에 서 죽음을 초월한 초인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억겁의 시간을 거쳐가면서 지울 수 없는 고독에 몸부림치던 도로는 필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구에서 살고 있는 초능력자들을 직접 찾아나선다. 그런 노력끝에 마침내 아프리카 오지에서 자신과 동류인 초인 아냥우와 만나게 된다. 300년을 살아오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생물로 변신할 수 있고 타인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그녀를 통해 자신의 목적에 한발 다가간 것을 확신한 도로는 그녀에게 더이상 죽음의 고독을 경험하지 않도록 불사의 자손들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자신과 함께 하자고 말한다. 도로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과 강렬한 카리스마, 호기심 그리고 그가 그리는 이상향에 끌린 아냥우는 300년간 살았던 보금자리를 떠나 도로와 함께 초기 아메리카 뉴욕으로 향하는데....



"훔치고 죽이고, 그거 말고 또 뭘 하나?"

"빚어내는 일을 하지.

조금이라도 또는 상당히 독특한 능력을 지닌 사람을 찾아

사방을 돌아다니고, 그런 사람을 찾아내서 데려와 한데 몰아넣은

다음 새롭고 강한 일족으로 빚어내지."

"그런 걸 사람들이 순순히 받아들인단 말인가? 자기 일족에서,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오는걸 받아들인다고?"

"가족까지 전부 데려오는 사람도 있어. 물론 대부분 가족이 없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로 낙오자로 살던 이들이니까.

기꺼이 나를 따라오지."


44~45p



결국 초인을 소재로 하는 SF작품이다. 그런데 단순히 범인들을 초월하는 능력으로 시원하게 한딱거리하는 슈퍼히어로물이 아니라 우생학에 의거하여 무수히 많은 세대를 거치며 새로운 품종을 개량하듯 터부시 되는 근친혼도 마다않고 여성의 자궁에 우월한 씨를 뿌려 초인 아기를 양산하는 충격적 이야기가 담겨있다. 게다가 흑인여성인 작가가 직접 경험하고 느껴왔던 인종, 젠더문제를 작품에 녹여내면서 억압과 굴종의 역사로 점철된 고통과 아픔을 함께 담아낸다. 남성 그리고 파멸, 파괴의 신으로 묘사되는 도로와 유색인종의 여성이자 치유의 신으로 묘사되는 아냥우의 만남을 통해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지만 그들의 극단적인 능력 만큼이나 함께 공존할 수 없음을, 지독한 비극을 이미 암시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도로의 달콤한 말에 종족번식을 위한 가축처럼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갑작스런 능력의 변이로 미쳐버리거나 자살해버리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아냥우의 고통에서 자손을 잇는 생물학적 도구로서만 이용되는 여성들의 지독히 깊게 베인 억압과 고통의 역사를 통감할 수 있었다...



여성으로 고통을 겪는 아냥우 뿐만 아니라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일반인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탄압받는 뮤턴트를 그리는 [X-MAN]처럼 초인들의 삶 자체도 일반인과 섞이지 못하고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그리며 다름으로 야기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그녀만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의 아프리카 흑인 여성이 주역이고 혈연을 통한 부족/일족에 기반된 순혈주의 세계관 그리고 심심치 않게 묘사되는 식인장면이 확실히 기존에는 접해보지 못한 스타일의 작품이라 기괴하고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하고, 굳이 작품에 함의된 페미니즘적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독심술, 염동력, 신체변신, 정신감응, 사이코메트리, 이능력자들의 대결 등 초인SF로서의 재미도 놓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차별을 극단적 증오로 풀어내기 보다 화해와 공존의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매듭 짓는 작가의 관점이 좋았다. 흥미와 의미를 모두 잡는 SF였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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