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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라이징
토머스 해리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평점 :
한니발라이징 (2019년 초판)
저자 - 토머스 해리스
역자 - 박슬라
출판사 - 나무의철학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63p
절대악의 기원을 찾아서
[레드 드래곤]부터 이어져온 한니발 시리즈의 마침표이자 한니발 렉터의 기원을 다루는 작품 [한니발 라이징]이다. 인간을 뛰어넘는 후각신경, 타인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심안, 초월적인 기억력, 평온함 속의 냉혹한 광기 그리고 동족의 몸뚱아리를 먹어치우는 식인 기호까지...그동안 베일에 쌓여있던 렉터 박사의 과거를 통해 총명하고 사랑 넘치던 한 소년이 지옥의 수라장을 거치며 진정한 악마로 거듭나게 되는 안타까운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축조한 렉터성에서 한니발의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대대손손 대를 이어가고, 수백년이 지나 다시 한니발의 이름을 부여받은 한니발 렉터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지능과 호기심으로 성주 렉터백작 가문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몇 년뒤 한니발의 동생 미샤가 태어나고 그때부터 한니발은 동생을 보살피며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 그러던 어느날 독일군이 2차세계대전을 위해 폴란드를 침공하고 전쟁의 여파는 순식간에 렉터성까지 밀려든다. 치열한 전쟁통에 부모와 가족을 잃고 렉터와 동생 미샤만이 홀로 살아남아 깊은 산속 산장에 기거하던중 적십자 마크를 두른 다섯 병사들이 산장을 찾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중 생명 구호를 위한 단원이 아니었으니, 혼란한 전쟁통에 생존을 위해 적십자 단원으로 위장하고 적군, 아군 가릴것 없이 죽이고 약탈하는 전쟁 범죄자였던 것. 그날부터 렉터와 미샤, 그리고 다섯 망나니들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고, 몇 일뒤 목에 쇠사슬을 감은채 산속을 헤매던 한니발 렉터가 러시아군에게 발견된다. 끔찍했던 그날의 트라우마로 동생 미샤의 행방도, 다섯 전범들의 행방도 송두리째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목소리조차 잃어버린 렉터는 프랑스에 있던 삼촌 로버트 렉터에게 인계되고 그곳에서 삼촌과 삼촌의 아내이자 일본인인 무라사키와 함께 지내게 되는데....
매일밤 렉터의 꿈속을 찾아오는 푸른 눈과 거미손
동생 미샤의 손을 꼭 붙들고 있지만 렉터를 장작으로 때리고
미샤를 낚아채는 푸른 눈....뒤이어 찢어질 듯한 미샤의 비명소리...
그리고 텅 빈 미샤의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비명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난다.
매일 밤....하루도 빠짐없이....
유년시절의 충격적 트라우마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렉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로버트와 무라사키는 모든 마음을 다해 렉터의 상처를 보듬어주려 노력한다. 렉터 역시 어느정도 그날의 상처를 봉합하고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만.....양부모의 걱정만으론 렉터의 심연속에 뿌리박힌 악마의 씨앗을 깨끗이 제거할 수는 없었으니....욕설, 냄새, 장면 등등 잠재의식 속에 봉인되 있던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파편들이 도화선이 되어 불붙는 순간 얌전한 소년 렉터는 거칠고 잔인한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평범한 사람도 죄책감 없는 잔혹한 살인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참혹한 전쟁의 진상이니 끔찍하게 가족을 잃은 소년이 악마가 되는 계기로 2차세계대전은 심정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소스가 아닌가 싶다. 그것도....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으로 여린 소년의 가슴을 난도질 하니 악마가 되지 않고서 어찌 멀쩡한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1부는 렉터의 끔찍한 유년시절을, 2부는 의과대생이 되어 약탈한 보물들로 호위호식 하는 오인방을 찾아가 처절하게 응징하는 피의 복수가, 3부는 인간적 면모가 단 한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완벽한 악마로 거듭난 렉터의 모습을 그려낸다.
일부 팬들은 베일속에 가려져 있던 악마 한니발 렉터가 신비함을 잃고 평범한 인간계로 끌어내 버린 이 [한니발 라이징]에 불만을 쏟기도 하는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이유없이 살인과 인육을 즐기는 미치광이 렉터보단 상상을 초월하는 희대의 악마 역시 철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고, 악마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존재는 바로 인간임을 이야기하며 한니발 시리즈를 매듭짓는 '토머스 해리스'식 마침표에 점수를 주고 싶다. 양들이 울부짖는 [양들의 침묵]속 클라리스 스탈링의 꿈과 미샤가 비명지르는 [한니발 라이징]속 렉터의 꿈이 기막히게 대칭되는 결말이 아닌가!...물론 두 사람간에 울부짖음을 그치는 방법은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