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 개정판 킬러 시리즈 1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래스호퍼 (2019년 2판 1쇄)

저자 - 이사카 코타로

역자 - 오유리

출판사 - RHK

정가 - 14800원

페이지 - 407p



변종 메뚜기들이 판치는 미친세상



'이사카 고타로'의 최고 시리즈라 일컫는 '킬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 [메뚜기]가 초판 출간 10년만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작년 2018년 8월 '킬러 시리즈' 최신작인 [악스]출간 기념으로 방한했던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 '킬러 시리즈'에 대해 알게되었고, 작가와의 만남 이후 읽은 '킬러 시리즈' 3편 [악스]로 굉장히 감명 받았던 작품이자 시리즈인데, 이렇게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면서 드디어 '킬러 시리즈'의 서막인 1편 [그래스호퍼]를 만나게 되었다. 재출간이라 해서 단지 표지만 바뀐건 아닌것 같다. 10년전에 비해 좀더 읽기 쉽도록 번역을 수정했다는 역자의 후기와 함께 조금 찾아보니 10년전엔 킬러들의 이름을 본명으로 표기했지만 이번 개정판에선 본명 대신 킬러 닉네임으로 대체하여 아예 본명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 이번 판본에는 구지라(고래), 세미(매미)라는 이름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특징을 대변하는 킬러 닉네임으로 진행되는 이 개정판이 좀 더 바람직한 변화인듯...



[스즈키]

조직 두목의 아들이 저지른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스즈키는 두목의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조직이 운영하는 건강식품 판매회사에 입사하여 한달간 일반인들을 상대로 거리 영업을 한다. 한달째 되는날 회사의 상사 히요코는 스즈키를 차안으로 부르고 조직에서 스즈키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뒷자석에 잠들어 있는 일반인 커플을 총으로 쏴죽여야만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두목의 아들을 죽이기 위해 위장취업했지만 도저히 민간인을 죽일 수는 없었던 스즈키는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고, 그순간 스즈키의 시험을 지켜보기 위해 스즈키의 차를 향해 걸어오던 스즈키의 철천지 원수, 두목 아들이 차도로 뛰어들어 달려오던 차에 처참히 처박히는 사고를 목격한다. 목이 꺾인채 미동조차 없는 두목 아들....그리고 차도에 뛰어들던 찰나 두목 아들의 뒤에 서있던 초로의 남자...남자가 두목 아들을 밀친 것이라 확신한 스즈키는 함께 현장을 목격한 상사 히요코의 명령으로 현장을 슬며시 빠져나가는 남자를 뒤따라 미행하는데.....


[고래]

고위층의 비리가 터지면 부하들을 대신 자살시켜 꼬리자르기를 시켜주는 자살 도우미 킬러 고래는 현직 의원의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호텔에서 국회의원 비서의 자살을 종용한다. 거대한 체구와 위압감으로 그 앞에서는 누구나 거부감 없이 자살 충동을 일으키는 천부적 재능으의원의 비서를 목메다는데 성공한 고래는 우연히 호텔 창밖으로 눈길을 돌리고 그순간 웬 남성이 차도로 뛰어들어 차량과 추돌하는 사고를 목격한다. 순식간에 인파들이 사고현장으로 모이고, 인파들과는 반대로 유유히 사라지는 한 남성.....그리고 그 남성이 업계에 떠도는 차도나 기찻길에 아무도 모르게 타겟을 밀쳐 죽여버리는 킬러. 푸시맨임을 직감하는데.....


[매미]

나이프 다루는 솜씨가 일품인 칼잡이 킬러 매미는 일가족 몰살이 주특기이다. 다른 이들은 꺼리는 아이와 여성을 죽이는 일도 아무 거부감 없이 무감정으로 처리하기에 유독 궂은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매미는 일거리를 물어오는 상사 이와니시가 준 일거리를 위해 호텔로 달려간다. 거구의 사내를 죽여달라는 현직의원의 의뢰를 위해 서두르던 매미는 으슥한 골목에서 두 남자에게 린치를 당하는 남성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는데......



스즈키, 고래, 매미..3인의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그들이 공통타깃으로 삼는 푸시맨을 접점으로 얽혀들게되고 서로가 마주하는 순간!!! 업계에서 내노라 화끈한 킬러 VS 킬러의 대결이 펼쳐지며 아드레날린이 폭발한다. [악스]를 먼저 읽었기에 킬러지만 아빠로서 인간적인 정을 느낄 수 있던 [악스]의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이 [그래스호퍼]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본업에 충실한 킬러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었다. 슬래셔틱하달까...죄책감 없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킬러들의 잔혹한 상황이 무게감 없는 비현실적인 상황처럼 가벼운 터치로 그려지니, 그런 이질적인 감각이 더욱 익스트림하게 다가왔다. 



'이어져 있다. 고래는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이는 것을 느꼈다. 하나를 계기로 모든 것이 맞물리기 시작했다. 미래는 확실히 누군가의 레시피에 이미 쓰여 있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_271p



아내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불법조직에 취업했지만 자신의 위험을 무릎쓰고서라고 마지막 남은 양심을 고수하려는 스즈키의 고군분투, 자신이 자살시킨 망령들과 함께 현실과 환상의 혼재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저승사자 고래의 고뇌, 오로지 아는 것이라고는 칼로 사람을 쑤시는 일밖에 없는 매미의 상사에게서 벗어나 독립을 향한 홀로서기를 위한 노력(-_-;;;), 군집해서 번식하는 메뚜기에게서 밀집도가 높을 수록 과격하고 폭력적인 변종 메뚜기가 출현하는 빈도가 높아진다는 그래스호퍼 이론을 세상에 대입하는 미스터리한 남자 푸시맨까지...냉혹한 킬러들의 지독하게 사적인 고뇌, 자연계를 연상케 하는 킬러 간의 쫓고 쫓기는 먹이사슬관계....이토록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사건들이 한데 모여 벌이는 난장은 도저히 중도에 눈을 뗄 수 없는 몰입감을 가져다 주며 '이사카 고타로'의 독특한 매력을 극대화 시킨다. 



분명 굉장히 처절한 극한 상황임에도 특유의 여유와 블랙조크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강강강으로 밀어붙이는 열혈 작품과는 다른 강약중강약의 독자의 호흡을 감안한 세련된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런 세련감은 비단 [그래스호퍼]만이 아닌 [악스]에서도 느꼈던 부분이니 이야기를 끌어가는 세련된 전개방식은 작가의 전매특허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무심고 던지듯 내뱉는 이야기들도 구밀복검 같은 가벼운 사담 속에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어 곱씹게 만든다. 메뚜기 밀집이론을 비롯하여 투표율이 저조한 일본사회를 돌려까는가하면 정치인들의 대표적 회피기동인 꼬리자르기를 대놓고 저격하기도 한다. 이렇듯 숨막히게 몰아치는 이야기속에 심어놓은 풍자와 비판의 요소는 날카로운 칼날이 폐부를 관통하듯 사회의 부조리를 찌르는 동시에 작품을 한층 풍성하고 맛깔나게 데코레이션 해주는 느낌이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작년 참석했던 작가와의 만남에서 작가가 언급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악스]이후 새로운 작가시리즈의 이야기를 구상한 것은 아직 없지만 만약 쓰게 된다면 킬러 말벌의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는 말이 당시엔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그래스호퍼]를 막 끝낸 지금 이순간 정말로 꼭!!!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전환되었다. -_- 이 작품을 재미와 의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이사카 고타로' 작품의 마스터피스로 꼽고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