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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루거총을든할머니 (2019년 초판)
저자 - 브누아 필리퐁
역자 - 장소미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정가 - 비매품(가제본)
페이지 - 367p
내 사전에 억압과 굴종이란 단어는 없다! 거침없이 슛댐업!
페미니즘 스릴러?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장르지만 두 장르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를 가져올지 모르는 넘치는 호기심에 가제본 서평단에 신청하여 읽게된 작품이다. 2차세계대전, 선별된 나치 친위대만이 가질 수 있었던 '게오르크 J. 루거'가 개발한 루거 P08을 거머쥔 할머니라니...사실 처음 제목을 접했을땐 우연히 서류상의 실수로 CIA의 스파이가 되버린 폴리팩스 할머니의 활약을 그린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시리즈 같은 유쾌하고 경쾌한 해프닝 위주의 작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초반까지만 해도 (오랜만에) 예상했던 그대로 전개되는 작품을 만났다고 생각했더랬다.....할머니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는....-_-;;;
꼭두새벽부터 이웃집 법무사를 장총으로 무차별 난사하고 그때문에 출동한 경찰들과 무장대치를 하던 베르트 할머니는 결국 자진투항하여 구속된다. 그리고 할머니의 심문을 맡은 벤투라 반장은 할머니가 요란법석하게 난동을 부린 진의를 케묻는다. 전남편을 무참히 살해하고 도주중이던 커플이 우연히 베르트 할머니의 집에 난입하고, 자조치종을 들은 할머니는 이 커플이 무사히 국경을 넘어갈 수 있도록 경찰의 시선을 분산하려고 새벽부터 요란하게 난동을 부린 것이다. 백두살의 베르투 할머니는 반장의 심문도중 사소한 말실수를 저지르고, 그녀가 젊었을적 저질렀던 '사소한' 실수를 고백하기에 이른다. 바야흐로 때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프랑스 깊숙한 시골에 홀로살던 이십대 베르트의 문을 두드리는 남자가 있었으니....나치 SS친위대 소속의 젊은 청년이었다. 한창 야생마 같은 성적 매력을 발산하던 베르트의 문을 두드리는 남자의 마음속에 품은 흑심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리라. 어떻게던 일을 치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겁탈의 순간이 오고....베르트는 결심힌다. 이 XX를 죽이겠다고......
자유분방한 성격, 육감적 섹시다이나마이트 같은 성적 매력을 풍기는 처녀 베르트에게 닥쳐온 위기....그리고 처첨한 살인....그리고 자기집 지하실에 파묻은 시체....이 모두를 경찰 앞에서 술회하는 베르트 할머니의 치명적 실수...102살의 나이가 가져온 판단착오였을까? 이유야 어떻든 자기집 지하실에 시체가 숨겨져 있다는데, 그걸 그냥 넘어갈 경찰이 어디있겠는가...벤투라 반장은 경찰들을 할머니의 집으로 출동시켜 지하실을 파내고, 지하실에 묻혀있는 시신이 그 독일놈 하나가 아님을 알아챈다......-_-;;;;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아니면 102살 할머니 여전사?!!!
이야기는 심문을 받는 할머니가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지하실에 묻어버린 상상을 초월하는 시체들에 얽힌 사연을 술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십대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녀와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맺은 남성들이 어떻게 그녀를 옭아메고 어떤 학대를 벌이고 목을 졸라멨는지 말이다. 물론 들판에 풀린 야생마 같은 그녀에게 고삐를 매려는듯 그녀를 억압하고 굴종시키려한 대가는 오로지 죽음뿐....-_- ㄷㄷㄷ 그녀의 파란만장한 사연과 여장부 같은 시원하고 통쾌한 복수극이 시간 순서 관계없이 진행되는데, 갖가지 직업, 서로다른 인종, 성격과 특징까지 모두 다른 남자들을 만나지만 어쩜 그리도 하나같이 뻔뻔하고 안하무인이며 개차반 쓰레기인건지...머...시대가 시대인만큼 당시 여성들이 겪었을 차별과 무시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고,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베르트는 결국 연쇄살인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_-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그녀가 보이는 침착함과 배포, 배짱에도 불구하고 희대의 연쇄살인마로 낙인찍히는 그녀를 보면서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고 밖에는 말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경험해야 했다.
머...십수건의 살인장면을 바라보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그녀의 연쇄살인의 시작이자 가장 잔혹했던 무려 28방의 칼침을 꽂은 첫 남편 살인이 가장 인상깊었다....죽은 엄마대신 자신을 키워준 나나 할머니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이를 기다렸다는듯이 남편이 뱉어버린 '드디어'라는 한마디. 그리고 그 한단어가 끊어버린 인내심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끊어내듯 긴장감과 서스펜스 넘치는 장면이었고 시원하게 쑤걱 쑤걱 쑤셔박는 장면은 끔찍하면서도 통렬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걸어온 길이 굴곡지고 비탈져서 불도저로 비탈을 전부 밀어버리는 시원함을 선사할는지는 모르지만 조금은 브레이크를 걸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사신같은 그녀의 시신 리스트엔 그녀를 직접적으로 학대한 나쁜놈들 외에도 그녀의 앞길을 막았던 무고한 일반인까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_-;;; 이쯤되면 정말 사이코패스가 아닌지 심각하게 걱정되는 부분이었다는.....
한 여성의 인생을...그것도 그녀가 만나 사랑하고 함께했던 인생을 엿보는 일은 참으로 흥미롭다. 그런데 그 결혼생활이 이처럼 상상초월 스펙터클하고 인생풍파 다 겪은 할머니의 유머와 위트 넘치는 걸진 입담으로 듣는다면 더욱 강렬하게 와닿을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연쇄살인 할머니로 대하던 벤투라 반장이 종국에는 그녀의 굴곡진 인생을 이해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동정하고 위로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다소 극단적이고 과도한 설정이지만 소외되고 억압된 여성들의 고통을 나누고 자신을 가로막는 껍질을 깨고 투쟁을 부르짓는 페미니즘의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