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여성구락부
김재희 지음 / 코핀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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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여성구락부 (2019년 초판)

저자 - 김재희

출판사 - 코핀북스

정가 - 14800원

페이지 - 400p



움츠러 있던 경성의 아낙들이여 일어나라!



(이 얘길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얼마전 참석했던 한국추리소설협회 + 추리소설마니아 정모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였던 '김재희'작가의 신작이다. 당시 술자리에서 짧막하게 캐쥬얼한 좀비 시대극을 탈고했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바로 그 작품이 책으로 출간된것이다. 사실 제목만 봤을땐 작가의 근간 [경성탐정 이상 4]에 실린 일곱번째 단편 [마리 앤티크 사교구락부]의 스핀오프(?) 겪의 작품일거라 예상했는데 실상은 귀부인들의 자존심을 앞세운 질투와 그녀들의 고급스런 취미생활을 비추는 사교구락부로서의 외적인 측면은 흡사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깊숙한 속내는 전혀 다른 상반된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당시 작가님께 듣기로는 좀비 시대극이라고 전해 들었지만 그렇게 한마디로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 장르의 책은 아니었으니, 사회파추리, 페미니즘, 역사시대극, 독립운동, 좀비, 사이킥 등등등 이 모든 장르적 요소들을 판타지라는 그릇에 담아낸 작품이었다. 좀 말이 안되면 어떠랴...판타지는 어떠한 설정도, 상상도 모두가 허용되는 장르가 아닌가. ㅎ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대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은 결코 흔치 않으리라 생각한다.



신문사 사주인 남편을 둔 반설아는 자신을 지독히 학대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해, 강도사건으로 조작하여 남편에게 쌍칼침을 놓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다. 형사는 반설아를 범인으로 의심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어 심증만 굳히고, 설아는 남편이 운영하던 신문사의 새로운 사주로 취임하면서 사장실이 아닌 수습기자로서 일을 시작한다. 신문사 선배들의 은근한 무시와 차별속에서 힘겹게 일을 배우던 설아는 우연히 어릴적 친구 윤민주와 재회하게 되고, 윤민주의 소개로 경성여성구락부에 가입하게 된다. 부잣집 여식부터 보헤미안 스타일의 여장부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모여 강의도듣고, 사격연습도 하는등 구락부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반설아는 이 구락부의 숨겨진 진짜 목적을 알게되고...윤민주가 운영하는 병원의 비밀실험에 휘말리면서 반설아의 격동의 인생 2막이 시작되는데.....



400페이지의 작품은 정확인 반을 뚝 잘라 전반부와 후반부 전혀 다른 장르로 나뉘어 전개된다. 전반부는 반설아의 울분의 살인에 이어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물리치고 신문사의 사주이자 수습기자로 활동하는 고군분투와 함께 그녀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일본 형사들과의 쫓고 쫓기는 관계를 그리는 페미니즘 추리소설의 분위기로 전개되는 반면, 후반부에는 사람들을 좀비로 만드는 괴질의 발생과 이 병원균을 연구하여 일본인들을 몰아내려는 비밀실험에 참여하여 궁극의 초능력을 얻게되는 반설아의 모험 그리고 폭풍같은 액션이 몰아치는 대망의 경성여성구락부 특급 여전사들 VS 일본 괴력좀비부대의 대혈투가 숭고한 대한민국 독립운동과 맞물려 장엄하고 장대하게 펼쳐진다.



전/후반부 장르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부 계획살인을 저지르고 발각될까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미인계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던 수동적인 반설아는 후반부부터 이런 저런일들을 거치며 점차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여성으로 변모해나간다. 껍질속에 갇혀 있던 반설아가 껍질을 깨고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가는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요소로 작용하는듯 하다.



물론 치밀한 사전조사로 현실적 시대물을 그리는 역사팩션의 여왕이라 불리는 작가답게 실존했던 역사의 한순간에 실존했던 무대에서 실존했던 총기류와 무기류로 화끈하게 펼쳐지는 액션들은 비록 좀비와 초능력자의 혈투라는 허구의 이야기지만 허구 사이에 묘~하게 현실감을 부여하면서 만세운동으로 스러져간 순국선열들의 독립의 의지를 발견케도 한다. -_- 



"사패는 간사하고 야비하며, 파괴적인 성격을 지녀 간사할 사에 부술 패를 넣었습니다. 이 사패는 경성에도, 동경에도 여러 명 존재합니다." _69p


"신종 병이라 이름을 지었어요. 존비. 손톱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변하고, 얼굴이 추해져서 송곳 존, 추할 비를 붙였어요." _196p



사이코패스를 사패로, 좀비를 존비로 변형하는 '김재희'식 명명, 그 특유의 기발함과 재치에 슬며시 웃음짓게 된다. 그런 아이디어와 고뇌들이 모여 작가가 머리속에 그리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낸 장르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자칫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억압받던 경성 여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나아가 나라의, 여성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피튀기는 투쟁이 녹아있는 의미있는 시대판타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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