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체옆에피는꽃 (2019년 초판)_한국추리문학선4

저자 - 공민철

출판사 - 책과나무

정가 - 13800원

페이지 - 407p



놀랍도록 섬세하고 깊이있는 감성 미스터리



얼마전 참석한 추리문학마니아 + 한국추리작가협회 조인 정모에서 만나 같은 테이블에서 본인이 구운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미스터리에 대해 이야기했던 '공민철'작가의 추리 단편집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공작가의 작품이라고는 강원도 고한의 추리마을을 주제로 10명의 추리작가가 써낸 앤솔러지 단편집 [굿바이 마이 달링, 독거미 여인의 키스]에 실린 단편 [시체 옆에 피는 꽃](공교롭게도 이 단편집의 표제가 그것이다.) 한 편 뿐이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시체 옆에 피는 꽃]은 내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던 작품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작품집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단편집을 통해 본인이 갖고 있던 공작가에 대한 생각이 크게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른 초반의 나이에 말 수 없고 얌전해 보이는 얼굴 뒤로 이런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는 심안을 숨기고 있었을줄이야....-_- 허헐~



며칠전에 읽었던 [게임 마스터]를 통해서도 언급한바 있지만 몰랐던 작가의 역량 혹은 성향을 가장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작가의 단편집을 읽는거라고 생각한다. 이 단편집에 담긴 9편의 단편들은 '공민철' 작가의 미스터리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또한 잠재된 능력이 얼마나 무궁한지를 알려주는 척도라고 생각된다. 첫번째 단편 [낯선 아들] 단 한편 만으로도 공작가가 공들여 써낸 장편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치게 만들었다.



1. 낯선 아들

살인죄로 복역중이던 아들이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자 고향에 내려온다. 하지만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노모는 아들을 낯선사람 대하듯 한다. 우여곡절끝에 2개월의 시간이 흐르고....아들은 집에 난입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남자를 칼로 찌르고 도주하는데....

- 술자리에서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인상깊게 읽고 이 단편을 썼다는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아들이 고백하듯 독백으로 전개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작품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듯 하다. 아들의 양심 고백이 이어질수록 치매를 겪으며 홀로 힘겹게 살아왔을 노모의 아픈 사연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불편하면서도 각자의 사연이 뼈아프게 다가오는 감성 미스터리였다.


2. 엄마들

한낮의 아파트 공원에서 벌어진 불의의 사고. 그리고 집단이기주의로 인한 조직적인 은폐...그리고 한 아이 엄마의 양심고백....이 고백이 몰고올 후폭풍은.....

- 사실 임대아파트를 배척하고, 통행로를 막아버리는 등의 아파트 집단이기주의 문제점들은 뉴스등을 통해 익히 듣고 보아왔다. 머...이 단편은 그 집단이기주의의  극단적 사례라고 보여지지만 그럼에도 사건과 은폐로 이어지는 동기는 조금은 무리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보았던 환영의 실체도 별다른 설명없이 소비되어 조금은 아쉬웠던 단편이다. 다만 집단에 반하여 홀로 양심고백을 한 엄마의 고립감은 생생하게 묘사되어 숨막히는 단절을 느끼게 만든다.

 

3. 4월의 자살동맹

중딩3학년 같은반 일진에게 오지게 왕따를 당하던 학생의 동생에게서 일진 옆에 붙어 꼬붕으로 같이 왕따를 괴롭히던 내게 편지 한통이 날아온다. 동생이 써내려간 편지속에는 오빠가 얼마전 자살했고, 오빠를 자살로 몰아넣은 나를 옹서할 수 없다고 쓰여있었다. 그래서 답장을 보냈다.

- 편지문으로 구성된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이 떠오르는 단편이다. 지독한 왕따와 그를 괴롭히는 가해자 사이의 기묘한 자살동맹...그리고 왕따의 고통을 복수의 광기로 채워가는 피해자. 독특한 발상의 전환과 편지문의 형식을 차용하여 가속화되는 광기를 효율적으로 드러낸다.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왕따의 속성이 피부에 와닿는다.

 

4. 도둑맞은 도품

옥상에서 발견된 자루에 쌓인 남성의 시체, 시체의 사인은 추락사로 밝혀진다. 하지만 남성의 사망시각에 1층 CCTV에서는 남성이 드나든 기록이 없고, 아파트에서는 반나절동안 엘리베이터 점검이 이뤄진 사실밖에 없는데...이 남성의 죽음의 비밀은?....

- 드러난 사실들을 토대로 사망사고의 진실을 추리해나가는 고딩들의 대화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뭔가 고딩탐정단 같은 느낌의 단편이랄까...그들이 그리는 추리속에 나도 함께 사건에 참전하게 만든다. 머...초반 승강기 힌트에서 사건의 트릭은 얼추 맞출 수 있었다는...ㅎㅎ


5. 가장의 자격

대학생 아들이 불륜 현장에서 불륜녀의 남편에게 발각되 몸싸움을 벌이다 사망에 이르게 만들고, 그 죄로 3년간 복역후 풀려나와 있다가 자해를 시도한다. 집안은 아내에게 맡겨두고 바깥일만 신경썼던 아들의 아버지는 아들의 자해사건을 계기로 아들이 걸어온 인생을 되짚어보며 자신이 아들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아들과 불륜녀의 숨겨진 사실을 알게되는데......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절실하게 떠오르는 작품이다.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들과 그녀들에게 속절없이 휘둘리는 남자들...-_-;;; 뒤집고 뒤집히는 반전의 묘미가 끝내주는 작품이다. 마지막 아빠의 사악한 미소까지...어긋난 사랑이 가져오는 참극이 쉴틈없이 펼쳐진다. 소름끼치는 결말이 끝내주는 작품!!!



6. 사랑의 안식처

딸아이를 사고로 잃은 부부의 집에 괴한이 침입하고 남편이 격투끝에 괴한을 죽인다. 집안을 침입한 괴한은 근처에 사는 전자발찌를 찬 아동성폭행범이었고, 괴한이 처음 침입했던 곳은 부부의 딸아이가 쓰던 방이었다. 재판장에서 부부의 아내는 괴한이 딸이 자는 방을 침입하여 강간하려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싸움을 벌였다고 증언하는데....

- 가족이란 무엇인가?...가족이 쉴 수 있는 안식처를 지키기 위해 그리고 부부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딸을 위한 선택이 가슴을 저미며 처절하게 다가온다. 역시 결말의 한방이 서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7. 유일한 범인

홀로 외롭게 살아오던 노인이 죽은지 한참 지난 상태로 맞은편 이웃에 의해 발견된다. 죽은 노인 옆에는 자신을 처음 발견한 사람에게 지불한다는 유서와 함께 19만원이 든 봉투가 발견된다. 하지만 이웃집 남자는 한사코 그돈을 받길 거부하고, 몇 달뒤 노인의 손녀가 남성을 찾아오는데.....노인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 수수께끼 같은 노인의 고독사에 대한 진실 맞추기가 시작된다. 노인이 죽을 당시에 여러 정황과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그날의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다. [도둑맞은 도품]과 함께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고독사를 비틀어 낸 작품으로 노인이 이웃남자에게 전하는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죽음에 이르는 기발한 발상과 기막힌 정황들은 추리소설의 재미를 충족시킨다.


8. 꽃이 피는 순간

대학교 근처 술집에서 전체 회식이 있던날 나는 출입문 근처에 자리잡고 술을 마시는 선배들의 부름으로 함께 앉아 술을 마셨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가던중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하고, 잠깐의 정적 뒤 술집으로 버스가 들이닥치는데.....

- 남성과 접촉하면 불에 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열꽃이 피는 여학생이 간직한 끔찍한 비밀...그리고 복수가 펼쳐진다. 하지만 그 복수의 방법이 기발할지는 모르겠으나 실현 가능성을 놓고 봤을때 현실성이 떨어져 아쉽다. -_-


9. 시체 옆에 피는 꽃

- [굿바이 마이 달링, 독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읽은 작품으로 패스!~ 분량도 그렇고 앞선 무거운 작품들을 마무리짓는 부록같은 단편이라 생각됐다. 표제작이지만 개인적으론 아홉 단편중 가장 희미한 무게감을 주는 단편이었는데 이 작품이 표제작이네....-_- 가장 잔혹한 느낌의 제목이라서일까?...



냉혹한 사회의 부조리를 가감없이 드러내는 사회파 추리와 기발한 트릭이 돋보이는 본격 추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단편집이다. 둘 다 좋았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와 함께 가슴을 얼어붙게 만드는 인간 본연의 차가운 악의와 그 반대되는 따뜻한 인간성에 대한 호소가 공존하는 사회파 추리가 특히 돋보인다. 작품을 읽으며 캐릭터에 이입하여 그들의 선택에 함께 갈등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작품과 작품 의미를 되새기고 곱씹을수록 뽀얀 사골육수처럼 깊이가 우러나온달까...놀라운 반전, 독특한 재미, 시의적절한 시사성, 불편함과 통렬함, 이야미스 그리고 잔잔한 감동까지...미스터리의 매력을 모두 담아낸 단편집이 아닐까 생각하면서...다음 작품으로는 공작가의 모든 역량을 결집한 장편을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