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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안전한나의집 (2019년 초판)
저자 - 정윤
출판사 - 비채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87p
비명과 고통이 흐르는 안전한 나의 집
재미한인이 영어로 써낸 스릴러 작품이 미국 본토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되 나왔다는 것에 호기심이 일었다. 재미한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김씨네 편의점]이란 미드가 인기를 끌고 시즌을 이어가는걸 보면서 타국인들의 눈으로본 한국적 정서와 양식이 생소하고 신기하게 보인다는것을 깨닫게된다. 이 작품 역시 장르는 다르지만 작품속 재미한인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인의 독특한 정서와 미국적 정서가 맞물리면서 그들에겐 색다르게 보여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안의 분란을 담장 너머로 들리지 않게 쉬쉬하고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전통적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진 모르겠다. 다만 타국에서 그들의 냉대와 차별을 극복하고 그 땅에 자리잡기 위해 모든걸 내려놓고 묵묵히 참아야 했던 1세대 한인들의 고통을 조금은 이해하지 않았을까....
폭력은 폭력을 낳고,
행복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재미한인 2세대 서른 다섯 대학교수 경은 아내 질리언과 아들 이선과 함께 어려운 형편이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려 노력한다. 집을 내놓기 위해 부동산 관계자가 경의 집을 찾아온 그날 창문 밖에 저멀리 숲속에서 알몸의 여성이 맨발로 걸어나온는 것을 발견한 경은 이내 그 알몸여성이 자신의 어머니 매라는것을 깨닫는다. 서둘러 뛰쳐나간 경은 어머니의 몸에 심하게 구타를 당한 흔적들을 발견하고 다혈질 아버지가 저지른 폭력이라 생각한 경은 어머니를 집에 모셔놓고 경찰로 재직중인 아내의 장인과 함께 근처 부모님 집을 찾아간다. 엉망이 되버린 집안....그리고 의자에 묶인채 피를 흘리고 있는 아버지....침대에 널부러져 의식을 잃어가는 가정부....그리고 발견된 시체 한구.....그날 부모님 집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누구보다 안전하고 아늑한 나의 집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비극....굳게 닫혀버린 대문 안에서 어떤 고통과 비명이 들릴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안전한 나의 집]이 갖는 폐쇄성이 한 집안의 구성원들을,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들까지 산산조각 부숴버린다. 사실 처음 전개되는 도입부만 봤을땐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집안에 괴한들의 침입으로 평화가 깨져버리고 부모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괴한을 아들이 끈질기게 추적하는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크], [퍼니게임] 같이 미국 영화도로 많이 제작된 낯선이의 방문 그리고 꽁꽁 묶인 가족이 차례차례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류의 스릴러 말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초반부 끔찍했던 그날의 진실이 드러난 뒤에는 이후 정신적, 육체적으로 상처입은 부모님들을 어쩔 수 없이 경의 집에 모셔놓고 부모님과 아들내외의 어색한 동거생활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_- 그런데....이 가족들.....분위기가 상당히 묘하다. 아니 묘하다기 보단 뭔가 불쾌하고 불편한 껄끄러운 분위기랄까...그 불편함의 중심에 애써 잊으려 했던 어릴적 사건을 떠올린 경이 있다.
남들이 존경하는 성공한 교수지만 집안에서는 엄하고 완벽주의적인 전형적 가부장적 아버지 '진'
이웃들에겐 따뜻하고 친절한 여성으로, 남편 진의 말엔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는 전형적 한국적 아내 '매'
밖에서는 세상 행복한척 연기하고, 집안에서는 숨막히는 긴장을 연출하는 부모를 보고 성장한 아들 '경'
이들의 불편한 동거 뒤에 곪을대로 곪아있던 상처가 터져버리고 안전한 나의 집에서 벌어졌던 참혹한 진실이, 그리고 괴한들이 찾아온 그날의 끔찍한 진실이 반전으로 돌아온다. 사실 친구들에겐 그리도 친절하면서 자식에겐 무뚝뚝하기만한 부모님의 이중적인 모습은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온 미국인 경에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모습이었으리라. 더군다나 단란한 아내의 처가를 보면서 느꼈을 괴리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하여 그가 느끼는 불안한 감정들과 일탈적 행동, 패륜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것 같다.
아늑한 집이라는 공간을 끔찍한 공간으로 반전시키는 역설이 참혹함을 부각시키고, 다소 단조로울 수 있는 중반부를 절제된 문장과 경의 섬세한 심리묘사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집안에서 발생하는 전혀다른 타인의 폭력, 그리고 가족간의 폭력이 이야기의 끝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으로 작용하면서 앞선 복선들을 되짚게 만들고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면초가의 상황이 깊고 어두운 암울속으로 끌어내린다. 앞서도 말했지만 굉장히 한국적인 가족의 정서를 낯선 타국에 끌어다 놓고 여기에 한인사회의 독특한 요소와 유색인종으로 경험했던 차별들을 믹스하여 불안감과 서스펜스를 이끌어내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그녀의 차기작이 기대되는건 그런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설음 때문인것도 같다. 비명과 고통이 흐르는 안전한 나의 집으로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