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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ㅣ 보리 만화밥 9
이종철 지음 / 보리 / 2019년 5월
평점 :
까대기 : 택배 상자 하나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 (2019년 초판)_보리만화방 9
그림 - 이종철
출판사 - 보리
정가 - 15000원
페이지 - 283p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까대라!!
가대기 :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
하루 이틀...아니 반나절 작업만으로도 두손 두발 다 들고 도망쳐버리는 극한의 육체노동. 택배 상하차 알바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만화가 출간되었다. 본인은 택배 상하차 알바는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한창 혈기왕성한 20대때 용돈벌이나 할겸 작은 접이식 상이나 CD진열장등을 창고에 내리고 싣는 까대기 알바를 경험한 적이 있다. 40톤짜리 컨테이너안에 빽빽하게 가득 실린 10~20키로짜리 박스들을 까대고 또 창고에 있던 박스들을 실어나르다 보면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팔근육은 찢어질듯 비명을 질러대며 어디라도 당장 도망가버리고 싶은 충동이 셈솟지만,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쉴틈없이 레일을 타고 쏟아지는 박스더미는 사고 자체를 마비시키고 노동하는 기계로 만들어 버린다. ㅠ_ㅠ 결국 이틀만에 사장의 욕을 들어처먹으며 그만뒀는데...-_-;;; 웃긴건 군대에 입대하고 1종 보급병 보직을 받고 한달에 한번씩 4.5톤 트럭에 가득실은 수백가마니의 쌀가마니 까대기를 입소한 그날부터 제대까지 했다는거....허허....꽃같은 청춘에 짙게 드리운 까대기의 그림자여...머...혈기왕성한 청춘시절에 이런저런 이유로 노가다나 까대기 한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은...요즘은 없을지도 모르려나...;;; 어쨌던...극악의 상하차는 아니지만 나름 까대기 경험자로 이 만화의 출간소식을 접하면서 호기심이 일기도 하고, 십수년전의 꿈에 부풀어 있던 청춘시절이 떠오를것 같기도 한 마음에 책을 펴들었다.
포항에서 태어난 작가는 (배고픈) 만화가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고 성인이 되어 훌쩍 짐싸들고 서울로 향한다. 얼마안되는 가진돈으로 낡디 낡은 셋방을 구하고 만화를 그리려 하지만 다달이 다가오는 월세와 녹록치 않은 생활비에 쪼들리고, 결국 아침일찍 시작하여 오전중에 끝나는 택배 상하차 알바를 구하고 오후에 만화를 그리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극한의 까대기 육체노동을 경험하고, (본인과는 달리) 때려치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고 하루 하루 까대기를 한지 어언 6년....거쳐간 택배회사가 다섯 군데에 이를 동안 자신이 직접 경험한 땀흘린 노동의 가치와 냉혹하고 냉정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돌아가는 택배업계의 실상 그리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족을 위해 '오늘도 참는다'를 되뇌이며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는 택배기사들과 트럭 운전사들의 모습을 그려내리라 마음먹고 그렇게 이 [까대기]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옥천 버뮤다, 명절 물량 폭탄, 김장철 절인배추 상자들, 조그만 충격에도 뻥 터져버리는 무시무시한 김장김치 폭탄, 40키로짜리 쌀가마니 무더기, 비올땐 젖을까봐 불안, 눈오면 길이 미끄러워 불안, 촌각을 다투는 배달 시간....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 택배사의 물량 독점으로 기사에게 배정되는 택배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만 한건당 수수료는 7~8백원 가량....그나마도 배송중 파손을 택배기사가 배상하고 고객의 크레임이 늘면 벌점까지 받게되는 불리하고 열악한 근로조건....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하고 아프다고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이유는 뭐다?....그게 유일한 돈줄이니까...ㅠ_ㅠ 그저 젊었던 청춘시절을 회상해 보고자 집어든 책인데 의도와는 달리 여기에서도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노동의 현실이 날카롭게 훅 치고들어와 폐부를 후벼판다.
택배 상하차, 배달이 정말로 힘들다는건 얼핏 알고 있었지만 만화에서 펼쳐지는 실상은 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한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꿈을 위해 6년의 인고의 시간을 버틴 작가님의 인내심과 열정에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도 피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을 관계자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하나 하나의 택배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벽을 깐다.
벽을 깐다...'

'함께 그 벽을 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