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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소포 (2019년 초판)
저자 - 제바스티안 피체크
역자 - 배명자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67p
과대망상과 정신착란 그 어딘가....
인구급증과 유한한 자원 그리고 거대음모론을 토대로 뛰어난 스릴을 주었던 SF 스릴러 [노아]로 강렬한 인상을 심은 독일 작가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에 그가 주목한 소재는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소포이다. 소포 보다는 택배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긴 한데... 많게는 하루에도 수 차례 받게되는 소포 상자가 한 정신과 의사의 평범한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는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던 일상적 루틴에서 극한의 공포를 자아내는 작가의 비범한 시선이 또 한번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다.
[현재]
아버지의 친구로 어릴적부터 따르던 변호사 콘라트의 사무실 안락의자에 누워 3개월 전을 회상하는 엠마는 콘라트의 질문에 기억을 되짚으며 그때의 일들을 이야기 한다.....
[수 개월전]
정신과 의사 엠마는 학회 세미나 참석 후 자신이 묵는 호텔방에서 다섯명의 콜걸들을 강간하고 살해한 뒤 머리카락을 깎는 일명 이발사로 불리는 연쇄강간살인마에게 강제로 겁탈 당한 뒤 머리카락이 밀린뒤 버스 정류장에서 의식을 잃은채 발견된다. 임신중이었던 엠마는 그 일로 아기가 유산되고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서지만 엠마가 묵었다는 1904호는 호텔에서 존재하지 않는 호수였고, 강간당했다는 그녀의 하복부에는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점, 그리고 어릴적 망상증상으로 정신과치료를 받은 기록으로 인하여 그녀의 주장은 과대망상으로 결론지어진다. 유산과 망상에 의한 정신적 충격으로 집안에서 두문불출하던 엠마는 홀로 집을 지키던중 우편배달부로부터 이웃의 부재로 잠시 소포를 맡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의문의 소포상자를 받는다. 발신인은 없고 수신인에 적힌 이름은 들어본적이 없는 이름...이 소포가 연쇄살인마 이발사가 보낸 소포라고 직감한 엠마는 또다시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며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데....
유년시절 어린아이였던 엠마가 벽장속 괴물 아르투어를 무서워 하며 부모방에 찾아가고 엠마의 말을 믿지 않는 아빠에게 욕만 한사발 먹고 방에 돌아와 울먹일때 정말로 벽장문을 열고 나온 아르투어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의 첫 도입부를 보면서 이 작품이 그리 만만치 않은 작품이란걸 직감했다. 뒤이어 엠마가 구술하는 단편적 기억속 섬망과 끔찍한 경험들이 어지럽게 쏟아질때도 한편으론 다른이들...하다못해 남편도 망상이라 치부하지만 그래도 주인공이 당한 일들은 결국 진실일 것이라 믿었더랬다. 그런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더 걸 비포],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너의 기억을 지워줄께], [비하인드 도어], [나는 너를 본다], [우먼 인 캐빈 10], [브레이크 다운] 등등등등......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모두 다르지만 나약한 여성이 끔찍한 범죄에 노출되고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주변인들을 그녀의 히스테리적 성격에 따른 과대망상, 혹은 편집증, 혹은 정신착란, 혹은 약물섭취 등을 이유로 외면하지만 실상은 그녀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미치광이 스토커는 실제로 있었다...라는 식으로 귀결되는 여성심리스릴러 소설의 공식이랄까? 클리셰가 어느정도 존재하는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 작품 [소포]도 과대망상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엠마를 그리며 이 여성심리스릴러의 공식을 따라가는듯 보였다. 작품의 초반까지는.........-_-;;;
그런데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부터는 작품을 읽는 나조차도 이여자가 정말 미친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녀가 당한 범죄들,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녀가 들은 말들, 그녀가 한 말들....그리고 그녀가 죽여버린 사람들......현실과 과대망상이 어지럽게 혼재되고 그 경계가 무너지면서 작품을 읽는 독자마저 엠마가 느끼는 극한의 멘붕상태로 동기화 시켜버린다. 과장좀 보태서 종종 사회범죄 뉴스에 오르내리는 과대망상에 시달리던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살인이 납득될 정도로 생생한 묘사랄까....
주의!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면 읽어라!
뒷표지의 이 주의사항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걸 체감한다.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긴장감으로 쌓인 정신적 데미지에 피로감이 들정도였다. '이 주인공 진심 미친거 아냐?!' 생각되는...어떻게 보면 기존의 여성심리스릴러의 공식을 역이용한 영리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끝을 알 수 없는 전개와 강렬한 서사 그리고 그 모든것을 뒤집는 기막힌 반전까지....모든 일들은 치밀하게 짜여진 무대위의 연극이었던 것이다.....아....'제바스티안 피체크'느님....ㅠ_ㅠ 여성심리스리러라면 심드렁했던 나조차도 각잡고 보게 만든 정말로 기막히게 끝내주는 정신착란 스릴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