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릴리 프랭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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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타워 (2019년 2판 1쇄)

저자 - 릴리 프랭키

역자 - 양윤옥

출판사 - RHK

정가 - 15800원

페이지 - 509p



엄니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참말 다행이네



화려하게 수놓은 벚꽃위로 아늑한 조명을 받으며 우뚝 솟아있는 도쿄타워 그리고 그 사이에 걸린 초승달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표지에 빠다냄새 물씬 풍기는 저자의 이름. 이 책의 첫인상은 차가운 회색 도시를 따뜻하게 녹이는 트랜디한 러브스토리일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첫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이 책이 그려가는 이미지는 우리의 기억속에 자리잡은 7,80년대 정감 넘치던 그 시골모습이 펼쳐지는 반전 아닌 반전을 보인다. -_-;;; '릴리 프랭키'...도무지 일본 작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특이한 펜네임에 '릴리'라는 단어 때문에 여성작가일거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읽다보니 엥~ 작품속 주인공은 남자 아닌가...여성이 써낸 남자 이야기인가 생각하지만, 남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성인지적 감수성이 풍겨나 아무래도 이상케 생각하면서 완독했더니 그제서야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서 작가의 정체가 드러난다....성인포르노 제작사 SOD의 베스트 AV선정대회의 총재를 역임하는가 하면 아이들의 인기 캐릭터 오뎅군을 탄생시킨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날리는 환락과 동심을 넘나드는 극단적이고 상상을 초월하는 이색적인 경력에 한번 놀라고 그외에도 동화작가, 아트디렉터, 디자이너, 뮤지선, 작사 및 작곡가, 연출가, 사진가, 소설가, 배우 등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다재다능한 재능에 놀라고, 마지막으로 작가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은 이 작품 자체에 놀라버렸다. 



'장난삼아 어머니를 업어보고 너무나 가벼워서 눈물을 흘리느라 세 걸음을 못 갔네.' _366p



언제나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존재, 대가를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헌신하는 가장 고결한 이름, 한번쯤 목 놓아 불러보는 이름 어머니...이 작품은 저자의 어머니가 병환으로 몸저 누은 시기부터 써내려간 어머니(작품에선 '엄니'라고 표현된다.)를 위한 눈물과 후회의 사모곡이다. 본가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던 저자의 가족은 저자가 세 살때 엄니가 아버지의 집을 나와 외가쪽에서 별거하면서 엄니의 손에 자란다. 그뒤 15살에 진학을 위해 작은 시골 탄광 치쿠호를 떠나 도쿄로 상경하고 그렇게 고등학교, 대학교, 백수생활을 전전하면서 십수년간 홀로 방탕하고 무가치한 삶을 이어온다. 변변한 직장도 없이 쪽방촌에서 노숙자 생활을 이어온 저자 마사야의 나이는 어느새 서른, 엄니는 60세 할머니가 되버리고...홀로 힘겹게 아들을 뒷바라지한 엄니는 결국 시골생활을 정리하고 도쿄 아들의 집에 함께 기거하게 된다. 유달리 붙임성이 강하고 손이 큰 엄니 덕분에 아들의 집은 매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그 덕분인지 아들의 일도 순탄히 풀려나간다. 그렇게 아들과 엄니의 몇 년간의 행복한 시간이 지날때쯤....숨어있던 불행이 고개를 내밀면서 모자사이에 이별의 시간이 찾아오게 되는데....



어떤 픽션 보다도 가장 현실적이고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만든다. 진실성이야 말로 가장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기인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이 연상되는 작가의 70년대 기울어가는 탄광촌의 유년시절은 내가 경험했던 80년대와 너무나 닮아있어 그때 그시절의 향수에 흠뻑 젖게 만들고, 홀몸으로 어떠한 일도 가리지 않고 온몸이 부서져라 뼈빠지게 고생해서 아들 대학 보내놨지만 아들래미는 수업일수가 모자라 재적당하고 그야말로 날백수 생활로 황금같은 청춘을 허비하는 모습은 방탕했던 나의 이십대 대학생활을 떠올리게 만든다. 분명 고향에 갈때마다 점점 굽어가는 등과 거칠어져 가는 엄니의 손을 보면서 뭣하나 재대로 이룬것도 없이 방종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책감과 혐오감이 들고 이렇게 살면 안된다는 위기감에 다시금 의지를 다지지만 그 의지도 엄니의 집을 나서면서부터는 급속도로 희석되고, 어느새 전과 같은 잉여인생이 쳇바퀴 돌듯 이어진다. 아...불효자는 웁니다....ㅠ_ㅠ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동질감이 아들 한정인지 딸들도 같은 느낌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자의 '방탕-후회-각성-어게인 방탕'의 부모 가슴에 대못박는 불효자 로테이션이 너무나도 같아서 마음 한구석을 죄책감으로 후벼판다. 더군다나 무뚝뚝하지만 정많은 엄니는 아들에게 그 어떤 싫은 소리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힘든 하루를 버텨내시니...그땐 멍충이 같이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아니...알면서도 청춘이란 객기에 현실을 외면했던거겠지...



그렇게 강인하고 강철같았던 엄니는 어느샌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되버리고, 조금만 기다리면, 조금만 자리 잡히면 꼭 효도라리라 생각했던 그 조금을 기다리지 못하시고 곁을 떠나버린다. 그나마도 평온하고 편안히 가시지 못하고...암 수술과 항암치료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안식을 찾으시니...그 깊은 죄송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작품을 읽으면서 나의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무척이나 떠올랐고 마지막 힘겨운 투병장면에서는 눈물도 꽤나 많이 흘린것 같다. 눈물을 쥐어짜내는 감정과잉의 신파가 아닌 과하지 않고 덤덤하게 그려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오히려 감정을 출렁이면서 가슴 먹먹하고 애틋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다면 전철에서 읽는 건 위험하다." 정말로 중년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감정이 메말라 버렸다고 생각했던 나조차 폭풍 오열 하게 만든 작품이다. 



"인간이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한, 이 슬픔을 면할 수 없다. 인간의 목숨에 끝이 있는 한, 이 공포를 마주쳐야 하는 것이다." _495p


'어머니는 욕심 없는 것입니다.

내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내 자식이 큰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지내주기만을

진심으로 바라고 기원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선물보다

내 자식의 다정한 말 한 마디에

넘칠 만큼 행복해집니다.

어머니란

실로 욕심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머니를 울리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일입니다'  _496p



아...젠장...그렇잖아도 어버이날 본가에서 부모님과 작은 다툼이 있었는데 ㅠ_ㅠ 이토록 사무치게 후회되는구나....정말로 진부한 이야기지만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내야 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끊이지 않고 끔찍한 존속살인 기사가 탑뉴스를 장식하는 가족의 의미가 쇠퇴해버린 이때에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일깨우게 만드는 너무나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강력추천하고픈 작품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니까...어머니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식이기에....먼저 떠나 보냈던, 아직 곁에 계시던 어머님의 무한한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게 만드는 선물이자 축복같은 작품이었다. 



덧 - 작가의 이력에서 가장 놀랐던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 주연으로 출연했다는 것이다. -_-;;;;; 하여 차가운 인텔리 아빠역을 생각하며 검색해보니 상대편 집안의 가나하지만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던 자유분방한 아버지였더라는...뭔가 작품을 읽으며 그렸던 이미지와는 괴리감이 있어 살짝 혼란스러웠다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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