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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ㅣ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아우슈비츠의문신가 (2019년 초판)
저자 - 헤더 모리스
역자 - 박아람
출판사 - 북로드
정가 - 13800원
페이지 - 354p
신은 죽었다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오만에 찬 잔학행위, 20세기 최대의 대학살이라 불리는 홀로코스트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난다. 정녕 선동과 세뇌 집단주의가 이같은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인가? 때때로 이같은 역사적 실화들을 보면서 정녕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걸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2차세계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물밀듯 밀려드는 유대인과 소수민족의 팔목에 이름대신 죄수번호를 직접 문신했던 한 남성의 불굴의 생존기이자 목숨건 절박한 사랑기이다. 작가는 실제로 생존했던 이야기속 주인공 랄레를 만나 4년간 심도깊은 인터뷰를 진행했고 랄레의 진술과 엄정한 팩트첵크를 통해 이 팩션을 완성해냈다.
슬로바키아에서 3남매의 둘째아들로 성장한 랄레는 점차 심각해지는 전운의 분위기 속에서 가족 구성원중 1명을 독일을 위한 노역에 차출하지 않으면 가족 전체를 차출시킨다는 독일의 엄포에 가족을 대신해 스스로 노역을 자원한다. 수백명을 우겨넣은 열차칸에 갖혀 수일을 선채로 이동한 랄레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한다. 그곳은 역사상 최악의 킬링필드,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수용소였다. 도착하자마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은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 없는 사람들로 분류되었고, 러시아어와 독일어에 능통하지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랄레는 수용소 건설 노동자로 분류된다. 하루하루 부실한 음식과 무리한 노동의 강도로 체력은 고갈되가고 급기야 아침이 되도 일어나지 못하는 동료들이 늘어간다. 랄레 역시 이대로는 한계라고 생각되던 그때 그의 남은 인생을 뒤바꿀 한번의 기회가 찾아오니....바로 수용소로 전입되는 사람들의 팔목에 번호를 문신으로 새기는 '테토비러'(문신가)로 뽑힌 것이다. 그리고 생사를 넘나드는 막노동꾼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보직을 받게된 랄레 앞에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여성이 그에게 문신을 새기기 위해 기다리는데.....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등등 비극적 홀로코스트를 이야기 했던 영화와 작품들을 만나오지만 70년전의 이 참혹한 비극은 접할때마다 충격과 절망 그리고 인간에 대한 회의로 다가온다. 우리 역시 아직까지도 일제치하라는 상흔이 남아있기 때문일까...실화가 주는 묵직함과 유사한 역사적 피해자라는 동질감 그리고 인간이길 포기한 극한의 잔학성은 이렇게 다시 한번 나의 가슴속 아물어 있던 딱쟁이를 뜯어내고 손톱으로 후벼파는 고통을 남긴다.
어젠 나를 살렸던 동료가 오늘은 싸늘한 시체가되고
아이와 노인은 가장 먼저 화장터의 재가되어 하늘에 흩날린다.
하루 하루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사투속에
미치지 않고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내일의 희망을 위해,
절망의 지옥 한복판에서 오롯이 피어나는 애절한 사랑....
신은 죽었고, 세상은 지옥이며, 더이상 인간은 없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적. 자신을 잠식하는 죽음의 공포와 극단적 고독감 속에서 타인을 향한 감정은 마지막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랄레의 생존과 함께 자신의 손으로 직접 문신을 각인한 소녀 기타와의 비극적이고 숭고한 사랑이 극적으로 대비를 이루며 커다란 감동을 선사한다. 제 한몸도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누군가와 정을 나누고 그녀를 위해 목숨바쳐 헌신하는 모습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핀 한떨기 꽃처럼 더욱 깊은 의미와 진한 향기를 풍긴다. 물론 랄레가 생존을 위해 행했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겐 독일군의 앞잡이짓으로 혹은 간교한 모사꾼으로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고 랄레를 손가락질 하는 이는 없으리라...그 상황에 놓인다면 그 누구라도 랄레보다 더 인도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했을테니까 말이다. 오로지 생존과 사랑하는 연인의 안위. 그밖의 감정은 사치일뿐.
"자기도 영웅이야. 실카와 자기가 살아남는 쪽을 택한 건 나치놈들에 대한 저항이야. 삶을 붙들고 있는 건 저항 행위라고. 영웅적인 행동이야."
"그럼 자기는 뭐야?"
"나는 동족을 해하는 데 동참하라는 제안을 받고, 살아남기 위해 그쪽을 택했지. 훗날 가해자나 조력자로 재판을 받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자긴 나의 영웅이야!." _202p
참혹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는것. 생존이야 말로 참혹한 역사의 기록을 다음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생존이야 말로 모든 대의와 가치를 초월하는 최우선 조건이라 생각된다. 동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야 말로 지옥같은 삶을 이겨내는 힘의 원천이자 생의 원동력인 것이다. 극단의 민족주의와 광기의 암울한 역사. 그 속에서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생존한 생존자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이자 최후의 저항자인 것이다. 그런 숭고한 영웅들의 위대한 여정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벅찬 감동과 함께 진하고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나는 그녀의 팔에 숫자를 새겼고, 그녀는 내 심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