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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후회병동 (2019년 초판)
저자 - 가키야 미우
역자 - 송경원
출판사 - 외쪽주머니
정가 - 15000원
페이지 - 462p
임종환자의 인생 리플레이
[70세, 사망법안 가결],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40세, 미혼출산]의 작가 '가키야 미우'의 신작이 '또' 나왔다! 이렇게 꾸준히 신작이 출간된다는건 소위 잘팔리는 작가라는 반증이 아닌가 싶은데, 일단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과 지금 읽은 이 작품까지 4편의 이야기는 버릴것 하나 없이 정말로 너무나 좋았기에 그녀의 이어지는 신작 출간소식이 마냥 반갑게만 느껴진다. 첨예한 사회문제를 극단적 설정으로 독자에게 생각할거리를 던지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사회적 문제를 벗어나 삶과 죽음이란 인간의 기본적 본질에 대해 좀더 집중하는 작품이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말기암 환자를 담당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 루미코는 특유의 눈치없는 행동과 언변으로 환자와 주변인들의 클레임을 자주 겪는다. 하지만 본인 자신은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 병원내 평판은 점차 떨어지고 자신감은 급격히 꺾여만 간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병원내 공터에 떨어진 청진기를 발견한 루미코는 환자 진찰에 새로 주은 청진기를 사용한다. 그리고 벌어지는 마법같은 일들이 루미코의 남은 의사생활을 바꿔놓는다....
환자의 몸에 청진기를 대고 있는 동안은 환자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환자가 떠올리는 이미지까지 엿볼 수 있고, 더 나아가 환자의 인생중 특정시점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청진기는 그 시점으로 환자를 타임슬립 시켜주는 것이다. (물론 환자의 머리속에서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오직 직진뿐이다. 그래서 갈림길과 만났을때 내가 선택한 길이 시궁창 진흙길일지라도 돌이켜 되돌아갈 수 없다. 그저 그때 그 순간의 선택을 후회하며 걸어나갈 뿐....여기 모든 의학적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어 임종을 앞두고 진통제를 맞아가며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네 명의 시한부 환자가 있다. 하루 하루 육신의 고통은 더해가고 마음은 피폐해져만 간다. 그런데 우연히 그들의 마음속 외침을 듣게된 루미코는 차마 그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단 한번의 기회를 더 주기로 한다. 그들이 선택한 인생의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정말로 오래되었지만 비슷한 소재로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쇼프로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떠오른다. 인생을 뒤바꿀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각의 선택을 했을때 인생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양쪽 모두 보여줬던 이 프로그램은 비록 코믹극화이지만 타인의 인생을 엿본다는 관음증적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쌍방선택지를 보여주는 신선함에 꽤 큰 인기를 끌었고 출연자 '이휘재'를 스타반열에 올리기도 했었다. 이 [후회병동] 역시 [인생극장]과 궤를 같이 한다. 아니 오히려 [인생극장]보다 더욱 애절하고 절박하다. 죽기직전까지 천추의 한으로 남을 후회스러운 선택의 다른 결과를 볼 마지막 기회를 얻으니 어찌 절박하지 않겠는가...-_-
하지만 새롭게 얻은 기회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경험한다 쳐도 현실은 죽어가는 몸뚱이에 병원 침대속 그대로이다. 바로 그 부분이 이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된다. 다른 선택지의 인생이 더 없이 행복했더라도 아니면 지금보다 더한 극한의 고난의 인생이었더라도 결국 그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죽음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이 엿본 인생의 희비와는 관계없이 그들을 짓누르던 과거의 후회를 훌훌 털어버리고 비로소 미련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에 묘하게 공감하고 납득해 버린다.
"죽어 가는 사람의 욕망이 산 자의 그것과 다르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욕망이라는 동력이 삶의 의욕을 만들 듯,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_옮긴이의 말_457p
연명치료를 거부한 환자들이지만...그들이 삶에 대한 욕망까지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삶에 대한 욕망이 하루라도 더 살기 위한 욕망은 아닐 것이다. 판타지 혹은 꿈 같은 타임슬립을 통해 그들이 얻은 것은 그동안 자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일 것이요, 자신이 사라진 이후 남게될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리란 믿음이리라...임종을 앞둔 네 명의 시한부 환자들의 인생을 통해 작가는 비록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들이 걸어왔던 인생을 되돌아 보고 그들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다독여 주고 후회없이 떠날수 있도록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다. 죽음 앞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잔잔한 감동과 울림을 남기는건 바로 그런 마음 때문이리라...
가슴 따뜻해지는 잔잔한 감동 에피소드도 있지만 추리소설 같은 반전과 배신의 긴장 넘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인생 자체가 진정한 스릴러아닌가...더불어 쌩초보였던 루미코가 마법의 청진기로 점차 배테랑 의사로 성장하고 마음을 열어가는 소소한 과정 역시 또하나의 재미요소로 작용한다.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순식간에 독파해 버리게 만드는 몰입감을 자랑하니...이쯤되면 '가키야 미우'도 본인의 믿고 보는 작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