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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평점 :
깃털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2019년 초판)
저자 - 커크 월리스 존슨
역자 - 박선영
출판사 - 흐름출판
정가 - 16000원
페이지 - 428p
탐욕에 눈이 멀어 양심을 내다 판 악질덕후
영국 트링자연사 박물관에서 299마리의 새 가죽을 훔쳐 달아난 '에드윈 리스트' 사건을 수년간의 추적과 자료수집, 인터뷰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논픽션 실화 [깃털도둑]이 출간되었다. 본인은 정식 판본 출간전 사전 서평단에 참여했었고, 운좋게 가제본으로 먼저 읽어볼 수 있었다. 머...깃털 도둑이라는 제목만 봤을땐 상식적으로 조류중에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종이 있고(공작새처럼..) 그 아름다운 무늬에 매혹되 박물관까지 침입하여 새 가죽을 훔쳤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작품을 읽고 나니 차라리 조류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된 절도가 오히려 낫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_-;;;;;
덕후...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소위 매니아를 일컫는 말이다. 요즘엔 긍정적인 의미로 순화되었지만 얼마전만 해도 폐쇄적이고 편집증적인 모습에 비정상적인 광기를 지닌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다. 이런 덕후들은 일단 뭔가에 한번 빠지면 정말로 미쳐버리는데 점찍어둔 컬렉션을 소장하기 위해 불법도 서슴치 않는 집착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에드윈 리스트'가 이 미친 덕후였던 것이다....
트링 자연사 박물관에는 찰스 다윈의 라이벌로 아마존에서 수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각종 생물들을 연구하고 표본을 수집한 박물학자 월러스의 표본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다. 월러스는 아마존의 생태를 연구하며 다윈과 마찬가지로 생물의 선택적 진화를 도출해낸 생태학자인데, 그는 극락조를 비롯하여 집까마귀, 푸른채터러 등 평생모은 수천종의 표본 자료들을 인류의 과학발전을 위해 트링 박물관에 기증한다.
"지구의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데 분명 활용 가치가 있을것입니다. 새 가죽에는 과학자들이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저히 보호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by 월러스
그로부터 100년 뒤...2009년 6월 23일밤...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뒷골목에 한 남자가 트링박물관 창문을 깨고 그 틈으로 숨어든다. 그가 도착한 곳은 조류보관실...서랍에 보관중이던 집까마귀 47마리, 왕극락조 37마리, 케찰 39마리 등등 16종, 총 299마리의 새가죽을 돌돌 말아 트렁크에 훔쳐 넣고 유유히 뒷골목으로 빠져나와 기차를 타고 자신의 하숙집으로 귀가 한다. 그로부터 한달뒤에야 새가죽 도난을 발견한 박물관 큐레이터는 그제서야 도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고 범인을 찾으려 하지만...남아있는 증거는 이미 사라진 뒤...우리의 범인은 사건 며칠뒤부터 이베이 같은 온라인 사이트에 훔친 가죽을 버젓이 올리고 수만달러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지만 영국경찰은 범인의 실마리조차 잡아내지 못하는데.....-_-;;;
나도 절판된 SF서적들을 온/오프라인 헌책방들을 이잡듯이 뒤지며 찾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SF의 불모지였던 과거 찍어낸 초판본도 적고 인기가 없어 바로 절판조치되면 시중에 풀린 도서는 몇 안되니, 영문판을 읽을 능력이 되지 않는한 그 책을 구해야만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빌리면 된다고?...'내'것이 아닌 '남'의 책은 가치가 없다. 그래...그렇게 SF도서 덕후가 되버린다. 구하다 구하다 못구해 눈만 감으면 그 책이 머리속에서 멤돌땐 정말로 도서관에서 대여한뒤 분실 손망처리라도 해서 그 책을 취득해야 겠다고 떠올린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정도로 이성을 잃은적은 없었다.) 남들에겐 그저 재미없는...그래서 더럽게 안팔려 절판된 허황된 공상과학에 왜저리 목숨을 거냐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말을 들은적도 있다.) 그래서일까...트링자연사 박물관에서 인류의 진귀한 생물학 자원 299점을 훔친 도적 '에드윈 리스트'의 행태에 대차게 욕을 하면서도 그 마음만은 공감할 수 있었던건...ㅠ_ㅠ
그래...이제 '에드윈 리스트'가 어디에 빠져있었는지 이야기 할때가 왔다. 사실 논픽션인 만큼 작가는 책의 서두에 이미 '에드윈'이 무슨 덕후인지 밝히고 있으나 혹시라도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길 바란다.
좀 된 영화인데,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흐르는 강물처럼]을 아는지?...아름다운 자연...흐르는 강물속에 들어가 플라이 낚시를 하는 그림같은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다. 플라이(fly) 물가에 사는 곤충이나 벌레 등의 모양으로 만든 미끼를 물고기가 있는 수면으로 날려 물고기를 유인해 낚는 방식을 플라이 낚시라고 하는데, 그중 플라이를 직접 만드는 것을 타잉이라한다. 특히 연어잡이 플라이는 화려하고 복잡한 모양으로 타이어들의 관심을 받는데, 이 연어 타잉에 새의 깃털을 재료로 사용한다. 특히 이미 멸종된 조류의 깃털을 많이 사용할수록 타이어들의 관심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니...희귀조류의 깃털에 플라이 타이어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는 것이다...-_-;;;; 인공염색을 한 깃털을 사용하면 되는것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인공깃털은 진짜가 아니라고...진짜 깃털을 사용해야만 진짜 가치있는 플라이가 되는거라고...(이건 뭐...나랑 똑같잖은가...ㅠ_ㅠ)
플로리스트 였던 '에드윈'은 어릴적부터 플라이 타잉에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고, 세계적 타잉 대회에서도 입상하면서 플라이 타잉계에 입성한다. 자연스레 타잉계에서 부와 명예를 안겨주는 수천달러를 호가하는 깃털들에 매혹되지만...집안사정은 여의치 않다. 그런데 트링박물관에서 그가 애타게 찾아해맨 새가죽이 그것도 수백개의 새가죽이 서럽속에 잠자고 있는 것이다. 너무나 갖고 싶은데...눈앞에 수백개의 새 가죽이 놓여있는데...손델 수 없는 절망감...그렇게 깃털에 눈이 먼 '에드윈'은 음악대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돌이킬 수 없는 절도짓을 실행해 버리는 것이다...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는 생태적 표본들을 말이다...덕후 대 덕후로서 희소성 넘치는 레어에 대한 집작과 열망은 십분 이해하지만, 정말 골때리고 허무한건 경찰의 수사과정과 뒷이야기들이다. 그릇된 욕망이 불러온 대참사...그리고 집단 이기주의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광기에 휩싸이는 사람들을 통해 냉소조차도 나오지 않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혼자 똥을 수집하면 그건 그냥 미친놈이다. 그런데 그 똥 모으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여 참여하고 기괴한 모양의 똥에 열광하면 그건 새로운 문화가 되고, 새로운 시장이 개척된다. 남들은 전혀 이해 못하지만 덕후들의 바운더리 안에서는 신으로 군림할 수 있는 그곳...정말로 골때린 사실은 깃털까지 훔친 플라이 타잉 덕후 '에드윈'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 플라이 낚시는 커녕 강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_-;;; 삼십년...사십년전도 아니고 바로 십년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니...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고 덕후의 세계는 심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