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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2019년 초판)
저자 - 도진기
출판사 - 비채
정가 - 14800원
페이지 - 355p
현직변호사 도진기의 킹리적 갓심으로 바라본 재판 되짚기!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으로 팬을 자처하고 있고 얼마전 [합리적 의심] 출간 팬미팅에도 다녀온 '도진기'작가님의 신작 논픽션이 출간되었다. 부장판사를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중인 법조인이기에 써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논픽션!...[판결의 재구성]이다. 이 책은 작가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후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경향신문에 연재한 [판결의 재구성]의 원고를 단행본으로 손봐서 내놓은 책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역대급 사건들과 매스컴과 사회적 민심으로선 도저히 납득 할 수 없었던 판결, 혹은 사회 문화적으로 열띤 논쟁이 오갔던 첨예한 사안들까지 재판을 통해 논란이 된 사회적 이슈들을 현직 재판관으로서는 말할 수 없었던 비판의 각을 법복을 벗어 던지고 자유의 몸으로 허심탄회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총 3장으로 구성되 있으며 1장은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던...그리고 민심과는 반대되는 판결로 더욱 논란이 되었던 범죄 사건들로 눈길을 사로잡고, 2장에서는 조영남 대작 사건, 마교수의 [즐거운 사라] 음란성 논란 등과 같은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뜨거웠던 이슈들을 소개한다. 남은 3장에서는 재판부에서 범인을 무죄방면 할 정도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숨겨진 이유가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픽션과 논픽션이란 장르의 차이는 있지만 전작 [합리적 의심]과 궤를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꿔말해 논픽션판 [합리적 의심]이라는 말이다. 다만 재판정에서 죄인의 판결을 결정할때 판단의 근거로 사용되는 합리적 의심이 아닌, 재판 결과에 대한 작가의 객관적인 합리적 의심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소설 [합리적 의심]의 소재로 사용되었던 PART 1의 [낙지 살인사건]을 비롯하여 [김성재 살인사건], [캄보디아 아내 보험 살인의혹 사건] 등등 정황상 너무나 유죄가 확실해 보이는 사건들의 재판결과가 합리적 의심을 통해 무죄로 판결된 숨은 저의와 시간이 지나 객관적으로 되짚어본 작가의 추론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으로 설명된다.
"사법부의 결정은 따라야 한다. 이건 우리 사회의 질서이다. 하지만 판결 안의 추론 과정마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늘 옳다는 보장이 없고, 얼마든지 헤집어 볼 수 있다. 유전무죄 비판과 진영 논리들 때문에 오히려 면책되었던 판결의 '내부'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그래야 판결이 졸지 않고, 외곬 논리는 도태된다." _7P
작가의 이 한마디가 이 책이 쓰여진 이유에 대한 변이 되지 않는가 싶다. 사실 우리같은 개미들이야 아무리 첨예한 논란이 되는 역대급 사건이더라도 재판 결과가 나오면 그걸로 끝이다. 민심과 정반대되는 판결일지라도 그저 판사와 사법부와 나라에 욕설을 날릴 뿐이지 그 판결이 어떤 검증을 통해, 어떤 이유로 도출되었는지엔 관심도 없을 뿐더러 확인해볼 길도 요원하다. 어려운 법률용어와 지리한 재판의 과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알기쉽게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의미에서 이 작품은 굉장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친절하기까지하다. 간결한 판결문을 작성했던 법관일 당시 버릇의 연장선일까...군더더기 없는 심플하고 논리적인 글은 눈에 쏙쏙 박히면서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시킨다.
[Part 1]
사람이 죽었다. 살인사건이다. 용의자가 선상에 오르고 부검과 수사를 거쳐 유력 용의자가 체포되어 피고인으로 재판에 오른다. 모든 증거들과 정황들이 피고인이 살인자라고 지목하는 상황....그런데 재판부는 무죄를 선언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바로 합리적 의심 때문이다. 사망자의 사망시간이 정확치 않아 피고인이 회사에 출근한 이후 한 시간여의 시간사이에 다른 누군가가 침입하여 살인했을지도 모른다?...혹은 사망 바로 전날 독극물을 구매한 것이 확인되었고 다음날 새벽 그 독극물을 28차례 주사하여 피해자가 사망했는데, 마지막까지 있던 피고인이 구매한 독극물의 양이 한 사람을 죽이기엔 모자란 양이었기 때문에 독극물에 의한 사망이 아닐수도 있다?...혹은 평소 이빨이 썩어 치아가 아파 재대로 씹지도 못하던 피해자가 만취상태에서 낙지를 통째로 삼키다 질식해서 사망당했고, 피해자의 막대한 보험금은 사망 당시 함께 있던 피고인이 수취했는데, 정말로 자다 말고 일어나 낙지가 너무나 먹고 싶어 자르지도 않은 낙지를 통째로 삼켰을 수도 있다?.....-_-;;;;;
이것이 피고인이 100% 범죄자가 아닐수도 있을 가능성...바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넘기지 못하고 무죄로 판결된 실제 사례들이다. 솔직히 피해자의 가족 혹은 지인들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피를 토해낼 정도로 황망하고 참담한 심정일 것 같다. 파트1에는 실제 사건들의 합리적 의심의 쟁점들을 되짚어 보고 작가가 바라본 당시 경찰 수사나 재판부의 아쉬웠던 부분들을 따져보면서 사회적 기준과 법적 기준의 괴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Part 2]
[즐거운 사라]의 외설논란으로 실제 감옥생활을 했던 '마광수'교수가 끝내 외로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건 아직도 우리 사회가 폐쇄적이고 독단적이라는걸 입증한 사건이라 생각된다. 1992년 [즐거운 사라] 외설논란과 2019년 모 정부부처의 걸그룹 노출 규제 정책준비를 보면서 27년의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마치 평행이론을 보는듯한 기분이 든다. 우리의 의식수준은 분명 진일보 했을진데, 사회의 시선은 일보 후퇴 혹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반면 '조영남' 대작 논란은 이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이었음을 깨달았다. 나역시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조영남'을 욕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파트2에서는 사회적 몰이해와 의식수준의 차이로 인해 논란이된 사건들이 소개된다.
[Part 3]
그렇게 누누히 이야기 하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무엇때문에 고수하고 있는지...99퍼센트 범인이 확실함에도 단 1%의 합리적 의심 때문에 피고인을 눈감고 무죄방면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이 파트3에서 소개된다. 모든 정황들이 피고인을 살인범으로 지목하는데, 피고인은 끝까지 무죄를 주장한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배재한 재판부는 검사측의 손을 들어주고 피고인은 형을 살게된다. 그런데....재판이 끝난 사건의 진짜 진범이 붙잡힌 것이다....-_-;;;;;
참....애매한 문제다...죄지은 사람은 그에 걸맞는 벌을 받고, 죄짓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벌을 받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되기 위해 판사들이 합리적 의심을 들먹이면서 검증에 검증을 거듭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오로지 합리적 의심을 위시하여 주객이 전도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우리 역시 합리적 의심의 눈으로 주시하고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하고 심판의 저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평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재판의 결정권자는 우리와 똑같은 한낱 인간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여러 사건들은 어찌보면 인간이기에 체크하지 못하고 주관에 휘둘려 아쉬운 결과를 낳은 사례집인지도 모르겠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것...그래서 진정한 정의를 이룩하는 것이 우리가 바라고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일단 잡으면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게 만든다. 커다란 논란이 되었던 사건인 만큼 평소 범죄소설에 열광하는 본인 조차도 경악하게 만드는, 본인의 상식 수준을 뛰어넘는 충격적 사건들이 연이어 펼쳐지기 때문이다. 실제사건이 주는 무게감과 현장감은 소설이 주는 스릴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트릭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듯 본능에 따라 참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피고인들과 킹리적 갓심을 들이밀고 너무나 주관적인 판단으로 빤히 보이는 사실들에 눈돌려 버리는 판결들을 보고 있자니 공분의 마음과 피해자에 대한 애도의 마음이 무겁게 깔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나 이시대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고결하고 지엄하신 사법시스템에 (한때 그곳에 몸담았던 한사람으로) 당당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이 작품에 응원을 보낸다...논픽션은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은 날려버려도 좋을 것이다. 신문을 볼때 시사, 사회면은 통째로 스킵하고 연예면만 보는 본인조차도 꽉 붙들고 몰입하게 만들었으니까. '도진기'기획, '도진기' 각본, '도진기'제작, '도진기' 연출, '도진기'출연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는 기분이었달까...